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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r 20. 2023

밥도 안 해 먹게 생겼어요

얼굴에 글이 없던 아가씨는 자라서 얼굴에 밥이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

"책을 읽는다구요? 나이트 다니게 생겼는데..."

미혼시절 소개팅에서 만났던 나이트 입구에서 저지당할 것 같이 생긴 남자는 말했다. 그는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니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마치 소개팅에서 잘 보이려고 거짓말한다는 듯이 취미는 독서라는 말로 교양 있어 보이려 하지 말라며 믿지 않았다.

"금요일 밤에는 나이트 가요. 토요일은 등산가고 일요일에는 북카페 가서 책 읽어요." 하고 말했지만 믿지 않던 책도 안 읽게 생긴 나이트 입구에서 저지당할 것 같은 남자와의 소개팅이 잘 되었을 리 없다.


내 외모를 보고 쉽게 판단하는 건 결혼 전 만난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아줌마가 되었더니 아이 친구의 엄마, 같은 아파트의 비슷한 또래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반찬 걱정을 나누길래 파래무침이 맛있더라고 했다.

"어디서 샀는데? 새로 생긴 반찬가게 갔어? 난 저번에 상가 반찬집에서 샀는데 너무 달아서 반도 못 먹고 버렸잖아."

"만들어 먹었는데"

"만들었다고? 파래를? 어떻게 만들어?"

무채를 썰고 파래를 바득바득 씻어서 식초 좀 많이 넣고 이러쿵저러쿵 만들었다고 했다. 열심히 듣던 엄마 한 명이 그랬다.

"진아 엄마, 밥도 안 해 먹게 생겼는데 파래무침을 만들 줄 알아요?"

나이트 다니게 생겼다고 말하던 그 남자처럼 그녀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누가 봐도 반찬가게 VIP처럼 생겼는데 파래무침을 만든다니 믿지 못하겠다는 그녀와 내가 친해졌을 리 없다.


얼굴에 글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던 미혼 시절에는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저런 책의 제목을 알고 작가이름을 대봐야 인터넷 검색했겠지 하며 믿지 않았다. 책을 두 권이나 썼고 1%도 되기 어렵다는 투고하고 계약하기를 성공했으니 그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연연하지 않겠다.


얼굴에 밥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기혼 시절에는 버젓이 증거가 있는데도 믿지 않는다. 이 만큼 쪘는데 잘해 먹고 자주 해 먹으며 쪘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그녀들은 차라리 갈비찜을 잡채를 해 먹었다면 믿겠다고 했다. 파래무침이라니 그 어려운 걸 어떻게 네가 만드냐고 말하는 그녀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파래무침은 5분도 안 돼서 만들 수 있다. 새콤달콤하게 신 맛을 잘 조절하고 단 맛을 적당히 해서 밥도둑으로 만들 수 있다. 반찬을 투고해서 계약을 할 수는 없으니 만들어서 조금씩 맛을 보여줘야 하나 싶지만 브런치에 올리고 만다. 사진으로 맛은 알 수 없으니 내가 만든 게 최고 맛있다는 글을 쓰며 그녀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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