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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pr 09. 2023

일요일은 짜파게티 먹는 날인데

천사가 만든 반찬과 악마가 마시게 해 준 술


금요일 저녁에 술 약속이 생겼다. 주말에는 병원에 계신 시아버지와 간병 중인 시어머니 반찬을 해서 가야 한다. '가지 말까? 가고 싶어. 오랜만에 술자리에 빠지고 싶지 않아' 내 안의 악마가 가라고 꼬셨다. 내 안의 천사는 그렇다면 숙취로 반찬 하느라 힘들지 않게 몇 가지는 해놓고 가라고 했다. 천사의 속삭임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계란 장조림과 소고기 무나물을 했다. 술 마시러 간다는 생각에 1시간 넘게 반찬을 해도 행복했다.


10시가 조금 넘어 영상통화가 왔다. 둘째가 엉엉 울며 엄마 보고 싶다고 외쳤다. 내 안의 천사는 빨리 그 자리를 일어나서 아이에게 가라고 외쳤다. 그 옆에 악마는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아이 아빠가 곧 알아서 재울 거라며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말라고 했다. 아까는 천사의 말을 들었으니 이번에는 악마의 말을 들어야 공평하다. 엉덩이를 붙이고 꼼짝도 않고 술을 마셨다.


30분 뒤 남편에게 톡을 보내니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다고 했다. 나는 늦게 들어가도 되느냐고 물었고 남편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악마의 말을 듣길 잘했다며 꽐라가 돼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다. 책이 출간되고 인스타에 내 책의 리뷰가 뜰 때면 누군가 나보다 먼저 좋아요를 눌러줬다. 그 누군가와 같이 술을 마시며 고맙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 책이 나오고 혼자 잔치를 했다고 했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쓰며 행복했다고 했다.(돈행녀,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와는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너와 나의 성씨가 같고 부모님의 고향이 같으니 이제 피붙이 같은 사이라고 꼬셨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열심히 할 거라며 피의 맹세를 했다.


토요일에 일어나서 겉절이와 고추무침을 했다. 미리 하면 물이 생기니 병원에 가기 전에 바로 했다. 천사의 말을 듣고 미리 두 가지 반찬을 해놓아서 편했다. 악마의 말을 듣고 끝까지 술자리에 남아서 누군가와 피로 맺은 자매가 되어서 좋았다. 내 안의 천사와 악마에게 감사했다.


그러니 천사만 좋은 것도 악마만 나쁜 것도 아니다. 시아버지 병원에 계셔서 슬프고 힘들지만 남편은 살이 빠지고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반찬 하기 고되지만 어른들 입맛에 맞는 반찬을 만들며 이렇게 연재도 한다. 천사와 악마는 그래서 같이 있나 보다. 천사라고 환대 말고 악마라고 구박하지 않기로 했다.  일요일은 짜파게티 먹는 날이라 씻지도 않고 라면 먹었는데 잘 씻고 병원에 간다. 우리 며느리 최고다 자랑스럽다 하시는 뭉개진 말도 좋고, 내가 하는 당신 아들 욕을 알아듣고 웃으시는 것도 좋다. 악마는 시아버지를 아프게 하시고 천사는 그 안에서도 웃음을 준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쁜 게 없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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