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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pr 11. 2023

LA갈비 한우로 주세요

LA 안 가본 내가 더 잘 만들었다

소고기 싫다. 소갈비 별로다. 설렁탕 안 먹는다. 소로 만든 모든 음식에 입맛이 돌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즐겨 먹고 치킨은 없어 못 먹지만 소고기를 안 좋아한다. 고기 중에 소고기가 제일 싫다. 친정아빠가 안 드셨기 때문에 어릴 때 많이 어봐서인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 몬 살았나?"

시어머니는 물으셨지만  80년대 건축붐이 일어서 집 짓는 업자였던 아빠덕에 잠깐 잘 살았다. 엄마랑 아빠는 밤마다 장부를 펼치고 몇 천만 원과 몇 백만 원을 이야기했다. 커튼집, 페인트집 사장님들은 늘 선물상자를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파인애플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도 상자로 선물이 들어왔다. 친구들은 커튼과 침대커버가 세트로 된 내 방을 부러워했다. 아빠가 아파서 1년 넘게 입원하고 일을 못하게 되었던 고등학교 시절 이전에는 부잣집 막내딸인 줄 알았다.


소고기는 냄새도 싫었다. 아빠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했고 언니와 엄마는 소고기를 좋아했다. 주로 먹는 음식은 가장인 아빠와 가장보다 성질 더러운 부잣집 막내딸인 줄 알았던 쏘가지를 부리던 나를 위한 돼지고기였다. 그래서  결혼 전에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LA갈비라니. 그건 미국식으로 케첩 양념을 하는 건가 했다.


결혼하고 소고기만이 고기라고 생각하는 남편과 그의 아버지는 한우를 특별히 좋아했다. 특히 시아버지는 호주산 미국산은 고기도 아니라며 치우라고 하셨다. 어느 명절에 들어온 LA갈비는 처지곤란이었다. 음식 못 하는 시어머니는 갈비탕을 끓여 먹겠다고 하셨지만 갈비라고 하기엔 불고기용 고기처럼 얇았다. 저걸로 갈비탕을 끓이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갈비찜을 해보겠다고 했다. 한우 갈비를 하듯 한 번 데치고 양념에 재워서 구웠다. 이 갈비는 국물 없이 빠싹하게 구워야 한다고 했지만 난 LA에 가본 적이 없으니 부산갈비다 하며 국물을 많이 잡았다. 감자와 대파도 듬뿍 넣었다. 소고기 안 좋아해서 내 입에 소고기는 국거리나 꽃갈비나 갈비나 등심이나 다 같은 맛이다. 식구들은 맛있다며 엄지 척을 했다. 고기가 얇아서 먹기 좋다며 시아버지도 좋아하셨다.

몇 년 전 명절처럼 아버지 잘 드시던 생각이 나서 혹시나 이건 좀 드시지 않을까 싶어 정육코너로 가서 말했다. 환자에게 수입고기 안 좋을 것 같아 큰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LA 갈비 한우로 주세요"

"푸훗. 어무이 LA갈비는 원래 수입이에요. 한우가 오데 있다고..."

하며 젊은 총각들은 웃었다. 부끄러웠지만 어쩌란 말인가. LA도 못 가봤고 LA 갈비도 못 먹어봐서 한우에도 그런 부위가 있는 줄 알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사람들이 미국식으로 도축된 갈비를 그렇게 불렀다는 걸 검색하고 알았다. LA갈비를 사서 한우 갈비처럼 국물을 많이 잡고 흐물흐물하게 조렸다. 소고기 안 좋아해도 소고기 요리 잘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안 가봐도 영어 잘하는 사람도 있다. 주눅 들지 말자, 쫄지 말자 하지만 주눅 들고 작아진다. 당당하게 말해서 웃음을 사도, 모르면 배우면 되는 거지 하면서 웃어넘기자. LA 가본 당신이 나보다 LA갈비를 맛있게 만들 수는 없을 거라며 자신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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