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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pr 25. 2023

미취학 아동 노동착취현장

맹모삼천지교

남편은 키에 비해 발이 크다. 키는170 겨우 넘는데 신발은 290이나 300을 신는다. 왕발도 그런 왕발이 없다. 그런 남편은 군면제였다(아무튼 반찬 매거진에서 '월남에서 돌아온 군면제 내 남편'을 읽고 오세요.) 군면제 사유는 양쪽 다리 길이의 차이였다. 어려서는 보조기를 차고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남편과 내가 결혼하고 나서야 학교 선생에 대한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이런 애를 맡겨놓고 한 번 찾아오지도 않냐고 전화를 하기에 봉투를 들고 찾아갔었다고. 그런 놈도 선생이라고 갈아먹어도 시원찮다고 했다. 남편이 조금 딱했다. 보조기 차고 다니던 초등생이 어른이라는 선생에게 구박받았을 모습이 보여서 다리를 꾹꾹 만져줬다.

"다리 말고 발, 발, 발. 다리 길이가 달라서 결국은 발이 아프거든. 발, 발, 발을 좀 만져줘"


그때부터였다. 나는 남편 발을 마사지했다. 동남아 마사지샵의 전문가처럼 크림을 발라서 꾹꾹 누르고 주먹으로 앞뒤로 밀어가며 마사지했다. 냄새나는 발을 만지기 정말 싫었지만 안전화 신고 하루종일 현장에서 일해서 아프다고 하면 안 할 도리가 없었다. 밥을 해주는 것보다 발을 만져주는 게 더 좋다는 남편을 위해 그렇게 산 지 11년이 넘었다.


10대가 된 딸과 5살 아들은 아빠가 침대에 엎드리면 왕발을 만져준다. 딸에게는 물론 금전적인 보상이 따른다. 30분에 천 원, 1시간에 오 백 원 준다면 1시간 한다던 숫자도 돈도 모르던 미취학 아동은 이제 십 대다. 10분에 천 원은 줘야 마사지를 해준다. 아직 숫자도 돈도 모르는 미취학 아들은 누나가 하면 따라 하기 바쁘다. 크림을 넘치게 발라 아빠 발을 마사지한다. 발은 두 개뿐이라 내가 낄 자리는 없다.


아, 맹모삼천지교여.

자식의 교육은 이토록 중요한데 나는 왜 어쩌자고 저들 앞에서 남편의 발을 만져왔던 것일까? 돌이킬 수 없는 배움의 결과를 보며 나는 선배로써 말한다. 조금 더 힘을 주고 발가락도 하나씩 다 만져주라고.

엎드려 있는 남편의 "으흐흐흐흐 으흐흐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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