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안에 드는 반찬들이 있다. 김치 깐 고등어조림은 그중에서도 상위권이다. 통통한 고등어를 쌀뜨물에 씻어서 김치를 바닥에 깔고 양파 가득 대파 가득 넣고 마늘은 심하게 많이 넣고매운 고추를 두 개 정도 넣었다. 그렇게 엄마가 고등어조림을 만들면 나는 옆에서 훈수를 뒀다. 고춧가루 더 넣으라고, 달게 하지 말라고 했다. 상추는 있냐 물으면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성된 고등어조림 국물은 칼칼한 김치찌개 같으면서 고등어 기름이 섞여서 고소했다. 상추 한 장을 손에 올려 금방 한 밥을 넣고 고등어 살이랑 김치 한 점을 넣는다. 국물을 안 넣으면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며 엄마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푹 떠서 쌈 위에 부었다. 입이 터지게 큰 상추쌈은 고등어맛, 김치맛이 섞인 환상의 콜라보였다.
열 손가락 상위권에 있는 반찬이지만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남편덕에 결혼하고는 열 번도 못 먹었다. 엄마집에 가야 먹을 수 있는 반찬이라 그리워했다. 신혼 초에 겁 없이 만들었던 고등어조림은 내 입에도 비리고 맛없었다. 남편은 냄새부터 빼자며 밥도 안 먹고 향초를 켜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생선 요리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며 나를 다독이며 "우리 라면 먹을까?" 하던 남편에게 미안했다.
마트에서 고등어가 싱싱해 보이면 그 앞을 서성였다. 짝사랑하는 남자애 보려고 학원 다니던 고등학생처럼 쭈뼛거리며 고등어를 훔쳐봤다.
'먹고 싶어. 김치 가득 깔아서 해 보고 싶어'
그런 마음을 못 이기는 날은 고등어를 샀다. 이렇게 싱싱한데 비린내 안 날 거라며 고등어한테 최면을 걸었다. 최면을 제대로 못 배워서인지 무를 깔고 김치를 깔고 맛술을 넣고 고등어를 우유에 담갔다 만들어도 비린내가 났다. 이제 고등어조림 포기하라는 남편은 후레이크먹으면 된다며 저녁을 포기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렇게 실패했다. 고백은 못 하고 짝사랑만 하던 그때처럼 마음이 쉽게 접어지지 않았다. 마트에서 고등어 한 마리 3천 원이라고 했다. 3천 원이면 실패해서 버려도 미련 없지 않겠냐며 내가 나를 설득했다. 조림하게 한 마리만 손질해 달라고 했다. 짝사랑에게 건네지 못한 편지처럼 고등어를 고이 모셔왔다. 김치를 깔았다. 양파와 대파도 가득 넣고 마늘도 평소보다 많이 넣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본 레시피보다 설탕을 조금 더 많이 하고 간장을 많이 넣었다. 뚜껑을 덮고 고등어조림에게 최면을 걸었다.
'비리지 마. 제발 비리지 마. 그만 비리란 말이야.'
보글보글 끓어오르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맛을 봤다. 아. 최면은 하다 보면 느는 거다. 고등어조림이 안 비리다. 국물이 칼칼하고 달달하고 맛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미원이라도 넣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제 자리로 넣었다. 남편을 위해 소시지를 구웠지만 굳이 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남편한테는 비릴 수 있으니 비상용 소시지도 담았다. 한 냄비 가득 끓인 고등어조림은 국물만 조금 남고 없다. 한 접시 가득했던 소시지는 반도 넘게 남았다. 고등어가 소시지를 이기다니,최면이 드디어 통했다니 기뻤다. 상추에 싸 먹으니 맛있다며 남편은 국물 버리지 말고 내일 밥 비벼 먹자고 했다.
이제 좀 쉬어야지 하고 소파에 앉으니 고등어를 온몸으로 먹은 듯 냄새가 난다. 프라다를 입은 악마처럼 고등어를 입은 아줌마가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명품 고등어조림 냄새를 음미하고 있다.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야 하겠지만 오늘의 이 영광은 폭풍성장한 최면에게 돌린다는 수상소감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