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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y 16. 2023

임금님(나) 수라상(by 친정 엄마)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나이

돌도 씹어 먹을 나이도 지났고 물만 먹어도 살찌는 나이도 지났다. 지금 나는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나이 45세다. 남편과 아이들 입맛에 맞춰 반찬을 만들고 밥상을 차려준다. 그러다 보면 내 입맛은 없어져 남은 반찬에 밥을 비벼먹고 치우기 바쁘다. 10년 넘게 그렇게 남을 위해 밥상을 차리면 알게 된다.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걸


일주일에 한 번 수업 가는 유치원은 엄마네 집 위에 있다. 가끔 들러 밥을 먹기도 하고 김치를 받아가기도 한다. 연락 없이 가면 엄마가 없을 때도 있고 밥이 없거나, 반찬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미안해하며 화를 낸다.

"니는 전화를 해야지. 내 집에 없는데"

"니는 전화를 하지. 밥이 없는데"

"니는 전화를 해서 반찬 하라 해야지. 니 물거 없는데"

엄마 화내는 거 듣기 싫어서  며칠 전에 전화했다. 화요일에 갈 거니까 밥이랑 반찬 해놓으라고 했다.

엄마는 김치도 해놓을 테니 들고 가라고 했다.


주차장에 차 들어오는 거 보고 밥솥에 밥 안쳤다고 했다. 된장찌개에 두부보다 조 더 많이 넣어 들큼했다. 다시마 쌈 싸 먹으라고 꼬리꼬리한 젓갈 있었다. 부추김치랑 배추 겉절이는 달았다. 설탕 너무 많이 들어갔다니 설탕 하나도 안 넣었다고 했다. '와. 엄마 비법은 뭐지? 과일 갈았나?' 잠깐 생각하는데 엄마가 매실액 많이 넣었다고 했다. (백종원이 그랬다. 할머니들이 설탕 쓴다고 뭐라고 하면 "매실액도 설탕이에유. 그게 다 설탕물이에유")국물 김치에 사과 들어가서 달았다 (매실액 많이 들어 갔다. 이것도.)생선 두 마리 엄마가 손으로 다 찢어줬다. 완두콩밥을 머슴이 먹어도 다 못 먹게 퍼줬다.


밥 다 먹었다. 곧 수업해야 하는데 배가 터지도록 먹어서 움직이기가 힘든데 엄마는 좀 누웠다 가라고 한다. 침대 옆으로 누워서 다방커피까지 마시니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다. 임금님도 안 부러웠다. 곧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 하지만 수라상 차려주는 엄마가 있어서 좋다. 돈 많이 벌어서 수라상 거하게 차리라고 좀 찔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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