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4학년 딸이 합창부를 하는데 동요대회 오프닝 무대에 선다고 했다. 딸이 노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대회마다 학부모가 따라다녀야 했다. 주말 대회는 학교에서 차량 지원을 안 해주니 모셔다 드리고 모시고 오라고 했다. 대회는 2시지만 리허설해야 하니 11시까지 모셔오라 했다. 학부모는 대기실에 있을 수 없다는 건 2시까지는 알아서 시간을 때우라는 뜻이었다. 해운대 공연장 옆에는 큰 백화점이 있으니 거기로 갔다. 마침 서점이 보이기에 내 책을 찾았다. 재고는 두 권. 누워있을 거란 기대는 안 했지만 서가 꼭대기에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꽂혀 있을 줄은 몰랐다. 두 권을 빼서 직원에게 가서 물었다.
"이 책 매대에 눕혀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쓴 책인데 이렇게 꼭대기 서가에 꽂혀 있으면 사람들이 펼쳐 보지도 않을 것 같아서요."
부끄러움도 모르고 부탁했다. 직원인 줄 알았던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의 직책으론 할 수 없다며 1시간 뒤에 출근하시는 대리님께 말하라고 했다.
아르바이트생을 만났던 11시 10분에서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나고 서점으로 갔다.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 대리님은 바쁘게 책을 진열하고 있었다. 내 책 두 권을 뽑아와서 대리님께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 책 쓴 작가인데요. 책을 매대에 좀 눕혀 주실 수 있을까 하고요. 신간인데 서가 꼭대기에 있으면 손이 안 가니까요. 좀 부탁드립니다. 부산 작가가 쓴 책인데 부산에 있는 서점에서 좀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리님은 눈도 안 마주치고 일하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바쁘시겠지만 좀 부탁드린다고 한 번 더 읊조렸다. 누군가 그때의 나를 봤다면 눈빛으로도 저렇게 비굴할 수 있구나 했을 것이다.
"네, 지금 하는 일 끝나고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때서야 대리님은 딱하다는 듯이 나를 봤다.
공연장으로 가기 전 서점에 다시 들렀다. 1시 10분에 내 책은 매대에 있었다. 무려 2층에 누워서 서 있었다. 대리님이 보이면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고 싶었는데 안 계셨다. 그저 눕혀주십사 했는데 눕혀서 세워주시다니요. 매대도 황송한데 손이 잘 닿고 눈길이 잘 가는 2층이라니요.
'대리님 고마워요. 대리님 사랑해요. 대리님 승진하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점을 나왔다.
이제는 유명해진 어느 작가도 그랬다고 한다. 책이 나오고 전국의 서점을 돌며 MD들을 만나서 책을 눕혀달라고 했단다. 이제 그는 너무 유명해졌고 나는 그를 벤치 마킹한다. 그러나 전국을 돌 차비도 체력도 없는 45세 아줌마는 서점이 보이면 들어가서 내 책을 찾아서 눕혀달라고 한다. 간절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말투로 최대한 굽신거리는 눈빛으로 애걸복걸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