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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y 18. 2023

우린 세 마리 반이고 너흰 두 마리잖아.

대식가네 너란 엄마

대학 때 만났다. 잘 웃고 유쾌하고 명랑만화에 나오는 아이 같았다. 티 없이 사랑만 받고 큰 느낌?이었지만 내게 갑작스러운 고백을 했다.

"우리 집에 빚이 3억이야. 하하하. 아빠가 꽃농사하는데 빚이 3억이야. 내가 갚고 시집가야 해 호호호."

부산에서 농사짓는 아빠를 둔 친구도 처음 봤지만 빚이 3억이라며 해맑게 웃는 친구도 처음이었다. 친구는 매사에 밝았다. 대학 때 친구집에 놀러 갔다. 아빠는 시골에서 농사 지으시느라 부산집에는 가끔 오신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 계신 시골에 가서 주로 농사일을 도우신다고 했다. 남동생이랑 둘이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우리는 라면을 먹었나?, 볶음밥을 해 먹었나?(그것도 내가 했다) 다 먹고 설거지 내가 한다고 하니 마다하지 않았다. 동생 도시락이 보여서 내가 설거지 해줄까 물으니 또 해맑게 웃으며 그러라고 허락해 줬다.


유쾌하고 밝고 긍정적인 친구네 부모님은 이제 연 매출이 3억 가까이 되는 부농이 되셨다. 꽃농사 그만두고 시작한 특수작물로 대박 터졌다. 결혼을 20대 중반에 했고 결혼하고 아들 둘을 3년 터울로 바로 낳은 친구는 신랑 회사 때문에 경기도에서 몇 년살 아서 못 보고 지냈다. 부산 와서도 서부산 끝에 사는 나와 동부산 끝에 살던 친구는 자주 못 만났다.


이제 좀 보고 살자 할 때쯤에 내가 둘째를 낳았다. 애 키우느라 또 못 보고 살다가 코로나 중에 자주 보며 살았다. 산에도 가고 마트도 자주 갔다. 친구네 중3과 초6은 많이 먹는다고 했다. 초3과 4세를 키우는 나는 그래봐야 뭐 하며 흘려 들었다. 마트에 가서 불고기를 한 팩 사면 친구는,

"너만 먹어? 왜 한 팩만 사?"

라면을 5개 번들로 한 봉지만 사면

"남편만 먹어? 왜 한 개만 사?"

계란을 15개짜리 사면

"내일 또 올 거야? 왜 그것만 사"

그랬다. 그러면서 친구는 많이 안 샀다. 우유를 900ml 두 개 묶음을 사거나 요구르트 한 팩 사는 게 다였다. 그것만 사도 되냐 물으면

"응, 오늘 간식은 이거면 돼."

그랬다. 오늘 간식으로 설마 이걸 다 먹냐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이런 마트에서 자기네 집 식재료는 살 게 없다고 했다. 창고형 대형마트에 가야 살 게 있다며 내일 갈거라 했다. 얼마나 먹기에 그러냐 하니 불고기 두 팩 사면 자기 먹을 건 없다고 했다.(참고로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오고 불고기팩은 주중에 먹는다) 라면 5개 번들은 아들 둘이서 한 번에  끓여서 밥도 말아먹는다고 했다. 비빔밥에 계란은 인당 3개씩 넣는다고 했다. 대식가 아들들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 또 해달라고, 더 해달라고 했다. 친구는 아들들이 최고 많이 먹은 기록들을 말해주었고 나는 입을 못 다물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많이 먹어 속상하다며 하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간 친구는 대학때와 같았다. 유쾌하고 명랑만화처럼 사는구나 싶어 좋아 보였다.

닭다리 한 팩을 사서 찜닭을 했는데 남편 하나, 나 하나, 딸 두 개 먹고 아들은 계란프라이 먹었다. 3조각 남은 닭다리 보며 친구가 보면 이것도 한 끼에 못 먹냐고 타박할 것 같다. 치킨 두 마리 시켜도 모자라다는 대식가네 친구가 보면 도대체 뭘 먹고 그렇게 쪘냐고 할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잘 봐, 닭다리가 7개야. 닭이 3마리 반이라고. 이걸 어떻게 한 끼에 다 먹냐고. 너희는 겨우 두 마리를 한 끼에 다 먹어놓고는 말이야."

하며 명랑만화 주인공 친구처럼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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