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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y 29. 2023

조강지찬

진미채든 일미채든

조강지처 버리면 천벌 받는다. 드라마마다 그랬다. 요즘 유행하는 #닥터차정숙 도 조강지처 버리고 바람피운 남편이 점점 찌질해진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잠깐 세 살던 아줌마네 딸은 나보다 어렸다. 남편이 멀리서 일해서 가끔 집에 온다고 했다. 엄마는 수상하다며 그 아줌마를 꾸준히 의심했다. 엄마의 의심은 들어맞았고 아줌마와 어린 딸이 야반도주한 다음날 어떤 아줌마가 우리 집에 찾아와 울고불고했다. 보증금 돌려달래서 아빠는 그렇게 못한다고 계약한 사람이 와야 한다고 했다. 울고불던 아줌마는 조강지처라고 했다. 남편 데리고 와서 보증금 달라고 하니 아빠가 돌려줬다. 세간살이 다 버려달라고 엄마한테 부탁했다. 엄마는 젊은 게 수상했다며 같이 울고 불며 가전제품은 가져가라고 했다. 전화기가 무슨 죄냐며 고물로라도 팔라며 챙겨줬다. 설탕이며 식용유 남은 건 집으로 들고와선 그랬다. 조강지처 버리면 천벌 받는다고.


조강지처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다. 천벌도 받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조강지처가 남편을 먼저 버리기도 한다. 조강지처를 버려도 천벌 받지 않고 잘 사는 사람도 있다.

내연녀보다 예쁘지 않고 젊지 않은 조강지처는 어쩌면 그래서 무서움을 택한 지도 모르겠다. 자신 없는 외모와 속절없는 나이 앞에 할 수 있는 건 무서움뿐이었을지도. 천벌을 받는다는 소문을 내서라도 조강지처를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했다. 사람들은 조강지처에 벌벌 떨지 않는다. 내연녀에게도 사연이 있고 조강지처도 자기 관리 안 하면 버림받는 게 정의가 아니겠냐 한다. 반찬도 변했다. 어린 내게는 조강지찬이었다. 천국의 맛이었다. 이것 하나만 있다면 밥 한 그릇은 금방이었다. 누룽지에 이것만 먹으면 장염을 앓다가도 금방 나았다. 제일 맛있는 반찬이라며 좋아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세상이 변하는 동안 나도 변했다. 달고 질긴 진미채는  별로였다. 나물이 좋고 찌개가 좋았다. 어릴 때 엄마가 좋아하던 반찬들이 엄마 나이가 되니 좋았다. 김치만 맛있어도 밥 한 그릇 먹었다.


어릴 때는 조강지찬이었던 진미채였다. 달고 쫄깃쫄깃하고 매콤한 진미채를 얼마나 좋아했나 모른다. 너만 있다면 세상 끝까지 함께 하며 밥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45살은 그 시절 조강지찬을 업신여긴다. 질리는 맛이라고, 입맛이 변했다며 멀리한다.

11살 딸이 있는 45살은 진미채를 무친다. 끓는 물에 데쳐서 나쁜 건 걸러지길 빈다. 고추장은 조금만 넣고 달게 무쳐낸다. 딸은 진미채를 달게 먹는다. 11살 딸은 최고의 반찬이라며 진미채를 추켜세운다. 조강지찬이라 매일 먹고 싶다는 11살 딸에게 너도 45살 되면 조강지찬이 바뀔 거라는 미래는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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