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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n 01. 2023

8월의 시금치마스-1

불치병

불치병에 걸리고도 일상을 살아가던 사진관 주인과는 달랐다. 아파도 티 내지 않는 주인공처럼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었지만 힘들었다. 잠들기 전에는 내일이 두려웠고, 아침이면 시작되는 오늘이 두려웠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했다. 만삭까지 힘든 사람도 있고 두어 달 힘들고 마는 사람도 있으니, 후자에 속하기를 빌뿐이었다. 증상이 호전되는 주사가 있고 알약이 있다고 하지만 뱃속에 생명을 품은 채 엄마라는 이름을 기다리며 쉽게 처방을 내려달라고 못 했다. 주사가 태아에게 미치는 무해함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입덧방지 알약은 태아에게 좋지 못하다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던 나는 주사도 알약도 처방받지 않았다. 술을 진탕 마신 다음날 하루 종일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못 먹지만 출근은 해야 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려면, 장시간 수업을 하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니 우유라도 하나 마시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웩웩거리며 속을 다 비운 후에 다시 출발했다.      

 

다이어트 양약, 한약, 원 푸드 다이어트를 아무리 해봐도 1kg 빠질까 말까였는데 입덧 다이어트 한 달 만에 4kg가 빠졌다. 바지를 입으면 허리가 돌아가고 눈에 띄게 얼굴에 살이 빠져서 보는 사람마다 걱정을 했다. 시댁에 가면 한약을 좀 먹어보자고 하셨지만 한약은 냄새도 못 맡겠다고 했다. 임산부에게 좋다는 붕어 즙이며 호박 즙을 해주겠다는 시부모님의 마음은 알지만 우유도 토하는데, 밥솥에서 나는 밥 냄새도 역겨운데 그걸 어찌 먹느냐고 남편을 붙들고 짜증을 냈다. 출근할 때가 아니면 방바닥에 누워서 한 달을 지냈다. 침대에 누우면 파도가 높은 날 배를 탄 기분이었다. 덥고 습한 8월의 임산부는 매일이 지옥이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없어.”

“그래도 생각해 봐. 빵 좀 먹을래?”

“아니”

“과일 좀 사 와 볼까? 수박은 좀 먹지 않을까?”

“싫어”

“그럼 뭐 먹을래? 그래 안 먹으면 애기한테도 안 좋을 텐데.”

“의사 선생님이 엄마가 안 먹어도 태아한테는 지장 없다고 했거든. 좀 내버려 두라고.”

이게 다 너 때문이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화를 내봐야 우리가 합의해서 생긴 일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신경 써서 물어보다 날벼락을 맞으니 기분이 상해 문을 닫고 게임을 시작했다.      

 

입덧도 심하고 마음도 아픈 임산부가 기댈 곳은 엄마뿐이었다. 그래도 쉽게 전화를 하지 못 한 건, 몇 달 전 결혼을 하며 엄마에게 모진 말을 많이 하고 신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혼수를 사고 결혼식을 준비하며 최선을 다해 엄마와 싸우고 대립했다. 꽃무늬 그릇을 사고 빨간색 커튼을 달라는 엄마와 다시 안 볼 사이처럼 싸우고 화를 냈다.

“꽃 접시 엄마나 써라. 내가 쓸 거 사는데 왜? 엄마가 결혼하나?”

“네가 살림을 해 봤나? 엄마가 써봤으니까 그러지. 무늬 있는 게 낫다. 말 좀 들어라.”     

서로를 할퀴고 상처를 주며 결혼을 준비한 모녀는 식장에서도 애틋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싸웠으니 아빠 대신 앉은 외삼촌 옆자리의 엄마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고 섭섭 키는요. 속이 시원합니다. 서른 넘은 딸이 시집가는데 좋기만 합니다.”

예식장에 온 손님에게 이렇게 말하던 엄마의 눈이 하루 종일 빨갰다는 건 결혼식 후 사진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예식 시작 전 신부대기실에서도, 단체 사진에서도, 폐백실에서도 엄마의 눈은 빨갰다. 사진마다 눈이 빨간 엄마를 봤지만 미안하단 말도 먼저 전화도 하지 않았다.


임신했다는 소식도 남편을 시켜 말하라고 해야 했다. 나는 아직 엄마한테 화났다고, 엄마가 잘못한 거니까 사과를 해도 엄마가 해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전화를 걸어도 잘 받지도 않고 틱틱 거리는 딸이 어려워 문자만 보내던 엄마는 그날도 문자를 보냈다.

‘잘 먹고 있느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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