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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n 02. 2023

8월의 시금치마스 - 2

입덧의 끝을 잡고

문자를 보자마자 먹고 싶은 게 생각났다. 깨소금 잔뜩 넣고 참기름 가득 두른 시금치나물이었다. 흙을 털고 뿌리를 살짝만 자른 들큼한 맛이 나는 시금치나물 한 접시 먹으면 좀 살 것 같다. 마늘향이 나는 금방 무친 시금치나물이 나를 살릴 것 같다.

“엄마 아아아... 아무것도 못 먹는다. 시금치 좀 무쳐줘. 흰 밥에 시금치 먹어볼래.”

“야가 와 이라노? 퍼뜩 온나. 엄마가 해주께.”

전화에서 들린 엄마의 목소리에 무너진 나는 엉엉 울면서 시금치를 외쳤다. 오랜만에 듣는 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엄마는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다. 빨리 오라고, 엄마한테 오라고 말하는 엄마 덕분인지 운전하는 동안은 입덧도 참을 만했다.      

 

8월의 한낮에 도착한 친정집은 거실에 켜진 에어컨이 무색하게 부엌에서 나는 열기로 더웠다. 밥이 끓고 된장찌개가 만들어지고 시금치가 무쳐지고 있는 부엌에서 엄마는 땀을 뻘뻘 흘렸다.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에는 밥도 안 먹고 싶다던 엄마였다. 당신 입에 들어가는 밥도 먹기 싫다는 더운 여름날에 뜨거운 불 앞에서 자식 한 입 먹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금방 한 밥에 시금치나물 한 접시를 다 먹은 나는 엄마 베개를 베고 누워 낮잠까지 자고 일어났다. 이거라도 잘 먹어서 다행이라던 엄마는 내가 집으로 가서 시금치나물을 다 토한 것을 아직 모른다. 시금치나물은 토했지만 다음 날부터 우유와 과일은 먹을 수 있었다. 빵도 먹고 콜라도 마시다 보니 2달이 지났고 입덧은 멈췄다.      

 

내 입덧은 2달 만에 끝이 났지만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 만삭까지 입덧을 했다고 했다. 너무 울어서 매일 업었고 화장실 갈 때도 업고 갔노라 했다. 업혀 있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하늘은 자업자득 인과응보를 반드시 보여주시려 내게 예민한 딸과 늦둥이 둘째(41살에 애 낳아보세요. 다 늙어서 내가 왜 그랬을까 소리가 매일 나와요)를 보내주셨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고 고되지만 벅차고 행복한 기분을 매일 느낀다. 안 낳고 안 키웠다면 몰랐을 기쁨을 느낀다. 그러니 나도 엄마를 마냥 힘들게만 한 것은 아닐 거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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