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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Nov 15. 2022

경단녀 엄마,  N 잡러  되다

엄마, 서평가 되다 - 2

 남 잘 사는 꼴, 남 놀러 다니는 꼴 보기 싫어서 안 한다고 했다. 뭐 하러 남들 사는 걸 보면서 배 아파하냐며 안 하고 살았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기 좋다고 SNS를 권하는 지인에게 모르는 사람이랑 소통 안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관심에 굶주려서 좋아요에 매달리는 한심한 짓은 안 하고 살겠다며 선을 그었다. 네가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이라도 종이 공책에 그렇게 쓰지만 말고 SNS에 올리라고 말했지만 됐다고 했다. 다단계 권하는 사람을 내치듯 말했다. 그렇게 좋은 거 너나 하라며 단호하게 말했지만 살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언제 다시 필사 공책을 먹을지 모를 일이었다. 남들이 보는 게 싫으면 나만 볼 수 있게 온라인에 남겨볼까 싶었다. 어떤 사람은 그걸로 돈도 번다는 말에는 귀가 솔깃했다. SNS로 돈 쓸 줄만 알았던 내가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궁금했다. 단호하게 내치던 SNS 다단계 지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 인스타 하는 거 좀 알려주라.”     

 

 잘 사는 남도 많고 놀러 다니는 남도 많은 그 SNS를 시작해버렸다. 남들이 내 얼굴 아는 건 싫다며 얼굴은 절대 비공개로 하겠다고 했다. 내 사생활은 결코 공개할 수 없다며 읽은 책 정도만 올려보겠다고 했다. 계정을 만들어서 책 사진을 올리고 짧은 글을 올렸다. 해시 테크도 몰라서 #오늘의 도서 라며 띄어쓰기 맞춰가며 올렸다. 글을 올리고 10분 뒤 확인을 했다. ‘좋아요’는 1개, 5분 뒤에 확인하니 여전히 1개였다. 그렇게 수시로 확인하고 저녁에 내가 받은 좋아요는 3개였다. ‘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구나’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 섭섭함이 밀려왔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않았다. 관심받고 싶었고 좋아요도 받고 싶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쪼매만 보소’하며 책 사진을 올리고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독서기록을 올리는 거니까 아무도 안 봐줘도 된다고 말했지만 #해시테그제대로사용하는법 도 찾아보고 책 사진도 예쁘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절대 얼굴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앱과 보정으로 실물과 다르게 예쁘게 나온 사진을 프로필에 올렸다. SNS가 뭔지도 몰랐으니 그저 잘하는 사람의 계정으로 가서 열심히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이렇게, 글은 이 정도, 해시 테크는 뭘 달아야 하는지 꼼꼼히 보고 따라 했다. 부지런히 책 리뷰를 올리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좋아요도 점점 늘었고 모르는 사람의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달려가서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며 서로의 이웃이 되었다.      

 

 SNS라는 모래성을 아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라도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쉬워 보이는 바닷가 모래성 같은 것이다. 조금 쌓다가 그만두면 작은 파도에도 금방 무너지는 모래성이다. 그러나 매일 그 바닷가로 가서 어제 쌓은 모래성에 또 모래를 얹어 단단하게 해 두면 모래성은 계속 높아진다. 그렇게 매일 그 바닷가로 가서 모래성에 모래를 얹고 모양을 다듬고 튼튼하게 해 두면 웬만한 파도에는 잘 넘어지지도 않는다. 모래성이 조금 높아져야 사람들도 그 관심을 가지고 저건 뭔가 싶어서 찾아오게 된다. 경단녀에서 서평가, 대학생, 주식 투자자, 영어 강사,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내가 쌓은 그 모래성 덕분이었다. 모두가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쉽게 높게 쌓을 수는 없고 매일을 가꿔야 하고 돌봐야 한다. 이깟 모래성 쌓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조금 쌓아두면 파도에 쓸려가 버리는 것이다. 모래성을 쌓기 위해서는 내 모래성을 단단하고 높게 쌓기 위해서 시간과 공을 들여 노력을 해야 했다. 금방 만들고 쉽게 만드는 건 금방 무너지고 쉽게 부서진다. SNS라는 모래성이라도 다르지 않았다. 금방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매일을 조금씩 단단하게 시간과 품을 들여 내 손으로 높게 쌓아가야 했다.      

 

 매일의 힘은 놀랍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밥솥 사용법도 몰랐지만 엄마가 되고 매일 아이들 밥을 차려줘야 하니 밥솥에 밥 하는 건 발로도 할 수 있는 경지가 된다. 계란 프라이도 겨우 해 먹던 아가씨는 엄마가 되고 야채 송송 썰어서 계란말이가 계란 프라이만큼 쉬워진다. 그렇게 매일의 힘은 놀라웠고, 기계치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던 내게 SNS 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친구가 생길 정도로 익숙하게 사진을 올리고 리뷰를 올릴 수 있었다. 모래성을 매일 쌓다 보니 높게 단단하게 만이 아니라 예쁘게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내 모래성이 좋다는 사람들도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글이 재밌다는 사람들의 댓글에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집에서 아이만 키우던 평범하고 우울하던 아줌마는 모래 성안에는 없었다. 위트 있고 재밌게 글 쓰는 주머니가 좋아 매일 내 글을 기다린다는 DM을 받은 날은 연애편지를 받은 고등학생이 된 듯이 행복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연애편지보다 더 달콤하고 좋았다. 얼굴도 모르면서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내가 좋다는 말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육아의 고단함도 산후의 우울증도 그 순간에는 없었다. 그러니 매일 가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었다. 오늘도 내 모래성에 누가 왔나 보고 내게 찾아온 그들의 모래성으로 가서 좋아요와 댓글을 남겼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지키는 규칙이 있다면


좋아요를 누를 때는 복을 준다는 마음으로 눌러줄 것

댓글을 달아 줄 때는 본문의 내용을 정확히 다 읽고 달아줄 것

이모티콘만 달거나 입에 발린 댓글을 달지 않을 것      

 

 사람들은 참 뻔해서 자기한테 좋은 말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뻔해서 그 좋은 말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금방 알아챈다. 댓글 하나를 달 때도 “파이팅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대단해요” 같은 말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했다. 본문의 내용을 천천히 읽다 보면 그 사람의 의중이 느껴진다. 진심이 읽어진다. 거기에 맞게 상황에 맞게 댓글을 달아야 한다. 사진과 첫 줄만 보고 댓글을 달면 본문 중에 중요한 내용을 놓치고 만다. 맛있는 음식 사진과 함께 ‘오늘의 행복했던 순간’이란 시작 문장만 보고 “여기 어딘가요?” “맛있어 보여요” 같은 댓글을 다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을 읽다 보면 그게 아니다. 사진 상으로 이렇게 맛있어 보여서 행복했던 순간이었지만 음식이 나오고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음식 맛은 진짜 별로였지만 그 순간 기분 좋은 전화를 받았기에 맛없는 음식은 다 남기고 왔지만 행복했다는 본문의 글을 제대로 읽는다면 이런 댓글을 달수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 남이 쓴 글을 읽지 않는다. 자신의 모래성을 높이 쌓는데만 급급해서 더 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기 위해서 진심을 넣지 않는 것이다. 그런 댓글을 달기는 싫었다. 책 리뷰를 올려도 주로 내 개인사에 빗대어 쓰던 내게도 그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뻔한 댓글, 진심이 없는 댓글은 안 다니만 못했다. 찾아다니며 진심을 전했다. 내게 가벼운 댓글을 달아준 사람이라도 피드로 찾아가 그 사람의 프로필을 꼼꼼히 보고 본문을 다 읽은 다음 댓글을 남겼다. 뻔한 사람들은 진심 어린 댓글에 감동했다. 그리고 더 뻔한 나는 답으로 돌아오는 그들의 진심 어린 댓글에 감동하고 행복했다. 모래성은 쓸데없고 부질없다고 생각하던 내 생각이 틀림을 알았다.      

 

 누군가는 이걸로 유명해지고 이걸로 돈도 번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못 했다. 처음 시작했던 이유도 종이 공책에만 남겨두기 아까운 책 리뷰를 기록하자는 의도였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랬던 내게 DM이 왔다. 평소 좋아하던 출판사에서 보낸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인플루언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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