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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엄마, N잡러 되다

엄마, 서평가 되다 - 1

by 주머니

무보수의 직업 주부에게 좋은 점은 시간이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급하게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종종거리며 퇴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가고 나면 여유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장점이 단점처럼 느껴지던 그 시기에 책을 만났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한심하고 무능력한 나에게 싫증이 나기 시작할 무렵에 책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책을 먹는단 표현을 할 필요가 있느냐 싶겠지만, 그때는 정말 책을 먹고살았다. 매일을 읽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다. 밥은 안 먹어도 책은 읽어야 살 것 같았다. 답답하고 무료하고 슬프고 억울한 마음이 들면 약 대신 책을 찾았다. 책이 밥이었고 살 길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읽었던 자기 계발서와 긍정심리서는 너무 뻔하고 교과서 같아서 와닿지가 않았다. 일찍 일어나고, 감사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말이 와닿지 않아 그만 읽어야 할까 싶었다. 이렇게 읽다 보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저자들은 말했지만 몇 권을 읽어도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경단녀였고 아이들은 어렸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책에 나온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다 이겨내고 결국 성공했다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책을 안 읽고 할 일도 없었고 엄마가 책을 읽으니 큰 아이가 따라 읽는 모습에 억지로라도 책을 들고 있었다. 남편도 책을 읽고 있으면 잔소리를 덜 했다. “..........? 아, 책 읽고 있었네.” 하며 자기가 알아서 챙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책 읽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본인은 안 읽어도 책 읽는 사람은 보기 좋아하고 방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서 자유로운 곳이 책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고, 책을 먹기 시작했다.

하루에 1권을 읽기도 하고 한 달에 20권을 넘게 읽기도 했다. 나는 꽤 많은 작가들을 알고 책을 좀 읽고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관심 없던 분야였던 철학과 자기 계발서도 읽기 시작했다. 소설과 시를 좋아하던 문학소녀였다며 학창 시절을 회상하던 아줌마는 성공학서와 부자학 서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부자가 있다는 걸 알았고 돈은 대놓고 티 나게 좋아하면 천박하다고 배웠는데 잘못 배웠다는 걸 알았다. 부자학서를 읽으면 당장 부자가 되고 싶었다. 심리학서를 읽고 나면 남편의 행동 원인이 그래서였나 싶어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했다. 정말 조금씩 티 나지 않게 개미 눈물만큼 달라지고 있었다. 가족들이 먼저 알았다. 자주 웃고 덜 화내고 있었다. 1년 정도는 책에 빠져 살았다. 둘째를 낳고 나서 6개월부터 책을 먹고살았다. 모유 수유하고 재운 다음에는 책을 잡았다. 한 달에 20권 정도 읽으면 일 년이면 200권이 조금 넘었다.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다 읽지 못하고 죽을 책들이 아까웠다. 그렇게 책에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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