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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Nov 14. 2022

경단녀 엄마,  N잡러 되다

엄마, 경단녀가 되다 - 2

 행복했다. 그 행복은 비록 어린이집 적응기간이라 1시에는 데리러 가야 하는 3시간짜리였지만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와 몸만 나온 침대로 다시 들어갔다. 못 일어나면 안 되니까 알람을 맞추고 잠을 잤다. 엄마 찾으며 울면 어쩌나 걱정은 되지만 그 걱정보다 수면욕이 컸다. 아이들 없이, 아무도 없이 혼자 침대에서 자보고 싶었다. 그렇게 누워서 15분이나 지났을까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화장실에 예민한 큰 아이가 학교 화장실을 못 가서 배가 아프다며 보건실로 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아이를 교사 화장실로 데리고 가보았지만 아이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울더라는 것이다. 죄송하다며 당장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옷을 챙겨 입고 교문 앞으로 가니 울상이 되어 나오는 딸이 나를 보며 눈물을 터트렸다. 배가 너무 아프다고 울기에 집으로 가서 화장실에 가보자고 했다. 딸은 그런 게 아니라고 아까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배가 아픈 게 아니라며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얼마나 아프면 아이가 병원으로 가자고 할까 싶어 다급하게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x레이를 찍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다 보니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지병인 변비가 또 발병한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물을 마시라는 당부와 함께 처방전을 주셨다. 아이는 그 사이 아픈 게 덜해졌는지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수납을 하고 약국으로 가서 접수를 하고 또 수납을 하고 약을 받아 집으로 오니 12시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에게 점심으로 차려줄 만한 게 없었다. 큰 아이는 학교에서 먹고 올 것이고,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먹고 올 것이라는 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는 밥보다 잠이 중요했기에 점심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밥도 반찬도 없으니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주었다. 야호를 외치는 변비 환자. 이제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헐레벌떡 관리동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둘째를 데리러 갔다. 엄마를 보자 눈물이 터진 둘째는 목을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결국 가지고 간 유모차를 한 손으로 끌고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행복했던 15분. 물론 매일이 이렇지는 않았다. 큰 아이는 학교 화장실을 겨우 사용했고 둘째도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면서 편안한 날들도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일들은 자주 일어났다. 옆 반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서 11시에 큰 아이가 돌아왔다. 무탈하게 등원시킨 둘째가 갑자기 열이 난다며 30분도 안 돼서 데리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학원차를 놓쳐서 교문 앞에 있다는 큰 아이를 모시러 가야 했고, 낮잠 잔 지 30분 만에 일어나 앉아서 엄마를 찾으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둘째를 데려와야 했다. 아이들이 집에 없어도 엄마는 늘 대기상태였다. 언제든 데리러 갈 상태, 언제든 집에 오면 맞이해줘야 하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런데도 어린이집 보내 놓고 나면 너는 집에서 놀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있다. 국어사전에 “놀다”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싶다.


[]

동사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이라도 엄마에게는 여유가 없다. 아무도 없을 때를 틈타 집을 치워야 했다. 미뤄뒀던 병원 진료를 가야 했다. 장을 봐서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간식을 준비해야 했다. 오늘은 꼭 해야지 하고 미뤄둔 화장실 청소와 베란다 청소를 해야 했다.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엄마는 없다.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에 가도 마음껏 여유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엄마는 없다.      

 

 가끔은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기도 한다. 수다를 떨며 쇼핑을 하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사 온 물건의 무게 때문인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렇게 쓰기만 해도 될까? 나도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아이들 잘 키우면 돈 버는 거라지만 진짜 돈은 언제쯤 벌 수 있을까?’ 7000원짜리 칼국수에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 내복 몇 장 사 오면서 놀다 왔다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집에서 논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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