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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l 05. 2023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5세 아들을 다급하게 유치원 버스에 태운 후 5세 아이들에게 헐레벌떡 달려가는 유치원 출강강사다. 11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승진도, 연봉인상도 없는 일이다. 연금도 보험도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프리랜서라 서러운 날도 있지만 매일 친구를 만나는 사람이 어딨겠냐며 일을 장점만 보려 한다.

'어린이 여러분~~~'하고 말하고 사람이 TV에 보이면 저 사람 유아교육의 'ㅇ'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속으로 욕을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여러분이 아니라 친구라고 해야 한다. '우리 친구들'하고 불러줘야 한단 말이야. 친구란 말을 입에 붙이려고 초보 강사 시절에는  가방 친구, 신발 친구, 모자 친구까지 불러댔다. 그 시절에는 잠꼬대로 엄마한테 그랬단다.

"엄마... 창문 친구 좀 닫아줄래요."


친구 많이 없던 나는 유치원 수업 다니며 친구가 생겼다. 새 학기에는 이름을 다 못 외우니 '친구야'하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들도 서로의 이름을 잘 모르면 그렇게 부른다. '새 친구, 저 친구, 이 친구'라고. 그리고 5세 아들은 7월이 되어 가지만 자기 반 친구 이름 하나 모른다. 그저 "친구가, 친구는, 친구가 그랬어"정도만 한다. 그렇게 친구의 이름도 부르지 못하는 5세 아들이 다친 손에 밴드를 붙여왔다. 다쳤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상처에 붙여진 밴드를 누가 붙여줬나 물었더니,

"엉. 성생니미친구가 붙여줬어."

"이슬반 선생님이?"

"아니 . 쌩. 니. 미 친구라니까"

아들이 짜증을 숨기지 않고 세게 발음했다.

옆 반 선생님 이려니, 원감 선생님 이려니 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며 알았다. 아들이 새로 오신 부담임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했다. 밴드를 붙여준 사람은 부담임 선생님이겠지. 친구 이름도 모르는 아들이 '이슬반 부담임 선생님'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길었겠지. 그러니 '썽.쌩.니.미친구'라 그녀의 애칭을 정했으리라.


체험학습을 간다며 도시락을 싸 보내라 했다. 아들을 위해 주먹밥과 소시지꽃을 만들었다. 활짝 피어라, 맛있게 개화하라며 뜨거운 물에 펄펄 끓였다. 담임 선생님과 선생님 친구를 위한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내 아들의 친구 같은 선생님을 위해 맛있게 드시라며 정성을 넣었다. 헐레벌떡 유치원 버스에 아들과 도시락을 실어 보냈다. 유치원으로 수업 가기 위해 다급하게 집을 나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내 친구도 유치원생, 내 아들도 유치원생, 선생님도 내 아들 친구니까 우리는 친구라고 해도 되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유치원생의 친구고 내 아들이 유치원생이고 선생님은 내 아들의 친구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꼬여도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고 사랑하자는 아름다운 해피엔딩이라면 어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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