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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l 08. 2023

남편은 정신과에 갔습니다.

 작년 여름에 시아버지는 쓰러지시며 남편에게 전화했다남편과 시아버지는 부자지간노사지간, 5분 거리에 사는 사이였다보통 이런 관계는 아들이 아버지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편은 안 그랬다아버지를 제일 좋아했고 가깝게 지냈다회사(직원 3명의 작은 가게규모)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퇴근하면 매일 전화했다둘은 사이좋은 부자였고친구였고회사동료였다나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얼마나 잘해줬기에 그렇게 사이가 좋은지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했어기대도 안 했고 원망도 안 했어같이 놀아주지도 않았고 뭘 잘 사주지도 않았지만 난 그게 좋았어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그러니 기대에 못 미친 적이 없지늘 잘했다괜찮다고 했어.“

이런 부모가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시아버지는 혼자 계시다 쓰러지셨다그 위급한 상황에서 119가 아니라 아들을 부를 정도로 믿고 의지하셨다남편은 아버지를 자기 차에 실어서 울면서 응급실로 갔다고 했다의식 없는 아버지를 업고 응급실로 들어가서 울면서 살려 달라 했다며 남편은 내게 울며 말했다응급 수술을 했지만 수술을 마친 의사가 드라마처럼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비는 넘겼다’ 하지 않았다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며 깨어나도 정상적인 생활은 힘들 거라고 했다시아버지는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한 달을 누워 계셨다남편은 어느 날 숨을 못 쉬겠다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시아버지도 심장질환으로 쓰러졌으니 유전인가 싶어 심장 관련 검사를 모두 받았지만 정상이었다위층에 정신과가 있으니 가보라며 심장전문의는 말했다. 

                                                                   

'공.황.발.작.'

이라고 했다. 100킬로 넘는 남편은 나약하고 여린 바람 앞에 촛불 같았다. 정신과에 다녀도 숨을 못 쉬고 잠을 못 잤다. 밥을 못 먹으니 한 달 만에 90킬로가 되었다. 중환자실에 계신 시아버지보다 남편이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무섭고 두려웠다. '쟤 없으면 우리 애들은 어쩌라고. 쟤 없으면 난 심심해서 어쩌라고. 쟤 없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도 그랬겠구나 싶었다. '아버지 없으면 우리 가족 어쩌라고(사장님 없으면 작디작은 회사는 문 닫으니까요). 아버지 없으면 난 심심해서 어쩌라고. 아버지 없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숨을 못 쉬고 못 먹고 못 잤을 남편이 딱하고 불쌍했다.     

 

 의식이 돌아와서 일반병실로 옮기신 시아버지 간병을 위해 시어머니가 병원으로 들어가셨다나는 반찬을 했다적게는 3많게는 5개씩 이 삼일에 한 번씩 만들었다. 일주일에 10개 넘게 만들면 힘들고 서러워서 울면서 만들었다간병하는 시어머니 입에 맞는 반찬을 만들며 고되고 힘든 날은 글을 썼다숨이 안 쉬어지고 잠이 안 오고 밥이 먹기 싫어도 나까지 병원으로 갈 수는 없었다아픈 시아버지나 간병하는 시어머니 생각하면 반찬 조금하는 걸로 엄살 부릴 수는 없으니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썼다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반찬친구 생각이 나는 반찬남편 덕분에 먹게 된 반찬아이들 위해 만든 반찬을 쓰며 아픈 마음에 연고를 발랐다반찬이야기를 글쓰기 플랫폼(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하자 댓글이 달리고 믿기 힘들 만큼의 조회 수가 나왔다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 치료제가 되어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남편이 정신과 약을 먹은 지 1년이 다 되어간다하루 세 번 먹던 약을 하루 한 번만 먹는다시아버지는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휠체어 타고 오른손은 못 쓰시지만 며느리 알아보시고 입에 맞는 반찬은 맛있다고 하신다이제 시어른들을 위한 반찬을 가끔씩 한다힘들게 반찬 안하니 좋지만 글 쓸 일도 줄었다고되게 반찬 하던 시절에 기록해둬서 다행이었다힘들었지만 반찬하면서 생각났던 어린 시절가족친구들 이야기가 좋았다반찬하지 않았다면 기억해내지 못했을 어린 시절을 꺼내 먹으며 이런 맛저런 맛 추억할 수 있었다다시는 맛 볼 수 없을 아이들 어린 시절을 마음껏 즐기겠노라 다짐했다반찬 만들며 고되고 힘들기만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95킬로를 넘기고 다시 바지가 작아지기 시작한 남편에게 밥이 많으면 남기라고 했다대파 가득 넣고 계란 2개 넣어서 밥 한 공기 반 넣어서 볶음밥 했다토요일이라 늦잠자고 일어나 아침 늦게 먹은 아이들은 점심 안 먹고 싶다고 했다지금 안 먹으면 밥 없다고 하니 그럼 라면 끓여달라고 한다병원 문 닫기 전까지 가야하는 남편을 위한 점심을 차린다남편만 먹을 거라 후추 잔뜩 넣었더니 이 많은 걸 어찌 다 먹느냐하던 남편이 다 먹었다다 먹고 정신과로 가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정신과 들렸다 아버지 보고 올 거라기에 그러라고 했다숨 잘 쉬고잘 먹고잘 자서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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