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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n 21. 2023

부자들이나 먹는 거야.

 운동회 하는 날 바나나를 가져온 친구는 껍질을 까서 들고 다니면서 먹었다대놓고 바나나 사 왔냐고 한 입만 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부러워서 침만 흘리며 엄마를 괴롭히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바나나 한 개만한 개만바나나 아아아~~~"

하고 노래를 불러도 운동회는 가을 제철에 나는 밤과 땅콩을 먹는 거라며 목 막히면 물마시라고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과일 먹고 싶으면 깎아 온 사과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알고 있었다시장 따라가서 바나나 사달라고 조르는 내게 엄마는 한 개에 천원이나 한다며 비싸다고 했다아빠가 술이 잔뜩 취해 몸을 못 가누는 날이면 얻어먹던 게 바나나였다시장에서 사도 비싼 바나나를 집 앞의 과일 가게에서 비싸게 사왔다며 엄마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다

"이 비싼 거를 뭐 하려고 사오는교"

엄마가 술 취한 아빠를 붙잡고 뭐라고 하든 말든 나는 옆에서 껍질 까는 것도 재미있다며 아껴먹던 바나나였다.       

 

 외할아버지는 남해의 어촌마을에서 작은 배를 가지고 있었다할아버지의 집은 대문을 열면 바다가 보였다창문을 열면 파도소리가 너무 커서 그 좁은 방에서도 크게 말해야 하는 오션뷰였다할아버지는 배를 띄워 물고기 잡아 아들 다섯 명과 딸 하나를 키웠다할아버지가 잡은 물고기를 먹고 자란 외삼촌 다섯 명과 우리 엄마 한 명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어릴 적 입맛 그대로다가족모임을 하면 삼촌들과 엄마는 물고기를 선호했다질리지도 않는 지 소고기보다 물고기를 즐겼다. 그들의 고기 먹으러 가자는 말은 물고기 먹으러 가자는 말이었다     

 

 어려서는 해산물과 생선이 귀한 적이 없다택배가 잘 안 되는 그 시절에도 할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 먹이겠다고(말씀은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밖에 없는 딸 먹이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개불이며 해삼낙지와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들을 남해에서 부산까지 여러 루트로 보내주셨다사과상자 크기의 아이스박스가 남해에서 내려오면 그 날은 하루 종일 비린내가 났다엄마와 아빠는 도마를 마주하고 개불을 가르고 해삼을 잘랐다물고기의 내장을 빼내고 먹기 좋게 포장해서 냉동했다해산물은 냉동이 안 된다며 빨리 먹으라고 했다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개불과 해삼낙지를 그때는 거절했다그도 그럴 것이 엄마아빠가 손질해 주는 해산물은 너무 컸다지금의 횟집에서 먹는 것처럼 감질나게 작게 잘라주지 않았다개불은 크게 삼등분해삼은 반만 잘랐다낙지는 그냥도 먹는 거라며 칼질 몇 번 해주고 먹으라고 했다덜 자란 입맛은 살아 움직이는 자연산 해산물이 싫었다그래도 꼭 한번 먹어보고 싶은 해산물이 있었다.이름도 참 고급스러웠다전복이라니개불이나 해삼은 이름부터 촌스러웠다이름만 들어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전복은 달랐다먹어보지 않아도 화면으로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전복이라면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선주의 외손녀였지만 전복을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엄마를 졸랐다그러나 엄마는 쉽게 잡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TV에서는 늘 전복이 고급이라고 했다너무 귀하고 고급이라 다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했다그러니 그 귀하고 고급이라는 전복 좀 먹어보자고 했다

"고동이나 무라할배 고동 보낸 거 맛있다."

"고동 말고전복 무보고 싶다할배한테 잡아 달라캐라."

"전복은 몬 잡는다전복은 잡혀도 팔아서 돈해야지비싸서 부자나 묵는 기다."     

 

 할아버지가 보내 준 어른 주먹만 한 고동은 이제 전복보다 값을 더 쳐준다고 해도 찾기 어렵다자연산 개불과 해삼이 쌓여있고 산 낙지가 가득한 사과상자 크기의 아이스박스를 돈 주고 사려면 특별한 날에 큰 돈 쓸 마음이어야 한다친구들이 따라다니며 한 입만을 외치던 바나나는 이제 싼 과일선주의 외손녀도 못 먹던 전복은 이제 저렴한 해산물마트에서 살아있는 싱싱한 전복 5개에 7900원이다이렇게 싸도 되나그렇게 먹고 싶던 전복인데 말이다. 5마리 전복을 씻어서 버터에 구웠다아무리 전복이 싸졌다고 해도 전복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다감자랑 브로콜리마늘을 전복보다 많이 해서 버터에 튀기듯 구웠다어른에겐 술안주아이들의 순한 반찬이 완성되었다전복도 안 잡아주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날 보면 늘 너는 왜 아들로 안 태어났냐고 나무라듯 말하셨다너희 엄마는 딸만 둘이니까 네가 야무지게 커서 엄마 잘 챙기라고 하셨다그물 구멍을 메울 때는 옆에 앉히시던 장덕만 할아버지.

"요래 오래 할배처럼 해봐라하시며  숨겨놓은 양갱이나 사탕을 외삼촌들의 자식이 아닌 내 입에 쏙 넣어주셨다지금은 부자들이나 먹는 자연산 개불해삼과 낙지를 보내셨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부유하게 컸다는 걸 이제야 안다.     

흔한 바나나저렴한 전복.

다음은 뭘까?

싸구려 샤넬값싼 벤츠는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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