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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출생의 비밀

빈부격차를 맛보게 한 고구마 맛탕

by 주머니

⓵엄청난 재산을 가진 먼 친척이 있고 돌아가시면서 모든 재산을 우리 가족에게 상속했다.

⓶사실 친부모님은 따로 있다.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잠깐 지금의 부모님께 맡겼지만 곧 데리러 온다. 나의 친부모님은 백억 부자다.

어릴 때 내가 하던 기대 같은 상상이었다. 엄마가 돈이 없어서 새 옷을 못 사준다고 하면 먼 친척을 상상했다. 세뱃돈으로 미미의 집을 사고 싶다고 하니 돈을 다 뺏어가는 엄마와 플라스틱을 몇 만 원이 주고 왜 사냐고 나무라는 아빠를 보며 친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먼 친척은 다들 우리보다 가난했다. 기다려도 친부모님은 나타나지 않았고 오랜만에 아빠나 엄마의 지인들을 만나면 그랬다. 너는 어쩜 이리 아빠를 닮았냐고. 지 엄마 쏙 뺐다고.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모님이 있는 친구를 사귀게 된 날 나는 그 친구의 집까지 갔다. 피아노 학원은 다니지 않지만 그 앞 문방구에서 쪽자(부산에선 달고나를 쪽자라고 했다)와 쫀드기를 즐겨하던 나는 늘 예쁜 원피스에 새 신발을 신고 피아노 학원 다니는 친구와 몇 번 마주쳤다. 친구는 내가 하는 쪽자를 유심히 봤다. 침을 바늘에 발라가며 하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아쉬웠고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니가 계속 보고 있으면 우짜노. 그라니까 안 되제. 니 때문이다. 어짤건데?"

미안할 것도 없으면서 친구는 그럼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가게 된 친구네 잔디 마당에는 하얀색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1층부터 3층까지 다 자기들이 쓴다고 했다. 엄마랑 아빠랑 친구랑 세 명이서 한 층씩 쓰나 보다 했다. 친구네 엄마는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사모님 같았다. 홈드레스를 입고 올림머리를 하고 집에서 화장도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이 잘 산다고 생각했던 나는 친구네 집에 있은 지 5분도 안 돼서 알았다. 우리 집도 3층까지라고 하지만 3층은 언니가 쓰는 옥탑 방이 하나 있다. 1층에는 세를 주고 마당은 시멘트 바닥이었다. 그리고 그 시멘트 마당에는 늘 빨래가 널려 있었다. 5분 만에 빈부격차를 느끼고 있을 때 친구 엄마는 고구마 맛탕을 내왔다. 고구마를 어슷하게 썰어서 튀긴 다음 물엿에 졸인 거라고 했다. 너무 맛있어서 물어봤더니 레시피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 친구 엄마는 어느 집 딸내미가 이리 야무지냐고 칭찬해 줬다.

집으로 달려와서 나도 고구마 맛탕 해달라고 했다. 친구 엄마에게 들은 레시피를 설명해 주며 해달라니 엄마는 그 귀찮은 걸 왜 하냐며 고구마 삶아준다고 했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맛탕 먹고 싶은데 엄마는 왜 안 해주냐고 친구네 엄마는 잘만 해주는데 엄마는 뭔데 안 해주냐고 화를 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는 조용히 엄마에게

"야 돈주라. 즈그 엄마 찾아가고로. 영도다리 밑에 가믄 느그 엄마 아빠 있으니까 가서 해달라 캐라."

하며 살짝 웃었다. 언니한테는 안 그러면서 아빠는 나를 놀리며 즐거워했다. 공부 못하니 고무신 공장 가자, 친부모 찾아가라, 초코 우유 먹으면 얼굴 까매진다는 말을 중학교 때까지 믿었던 내 우둔함이 아빠를 그렇게 즐겁게 했겠지만 말이다.

평소였다면 아빠의 한 마디에 조용했겠지만 나는 이미 빈부격차를 느끼고 왔다. 삶의 비극을 겪은 초등생은 참지 않았다.

"돈도. 내가 가께. 영도다리로 가께. 진짜 내 주 왔는갚네. 맛탕도 안 해주고. 내가 친부모 찾아 가께."

지르고 말았다. 아빠의 얼굴은 곧 화를 낼 조짐이 보였다. 질러놓고 어쩔 줄 몰랐던 나는 그 자리에 얼음이 되었고 엄마는 내 손을 끌고 나갔다.

"고구마가 있어야 해 주지. 가자. 사러 갔다 오자."

엄마와 시장에 가며 친구네 집을 설명했다. 엄마는 그 집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동네에서도 유명한 부잣집이라고 했다. 그 집 아빠가 시내에서 금은방을 하는데 10개 넘게 한다고 했다. 직원만 20명이 넘는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그 집 엄마가 얼마나 예쁘고 상냥하고 맛탕도 잘하던지 모른다고 했다.

"돈만 있어봐라. 낸들"

작게 말하는 엄마가 나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닌 듯 해 대꾸하지 않았다.

고구마와 찬거리를 사서 집으로 오니 아빠는 없었다. 현장에 갔거나 술 마시러 갔을 거라며 엄마는 아빠한테 대들지 말라고 했다. 저녁에는 밥을 먹어야 하니 맛탕을 내일 해준다 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에는 아무도 없다. 신문지가 덮인 스탠 국그릇에는 고구마 맛탕이 한가득 있다. 누가 봐도 튀긴 게 아닌 삶은 고구마로 한 맛탕은 모양도 엉망이고 포크로 잡으면 으스러져서 숟가락으로 퍼 먹어야 했다. 금은방 10개를 하는 아빠도 홈드레스를 입은 엄마도 없지만 좋았다. 영도다리로 가서 친부모를 찾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맛탕을 배부르게 먹고 소파에 드러누워서 낮잠을 잘 집이 있고 똑 닮은 부모님과 살며 매일 싸우는 언니가 있어서 안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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