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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l 15. 2023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병어를

해도 너무 하다 싶게 비가 온다. 하늘 어딘가 새는 곳이 있을 만큼 무섭게 비가 쏟아진다. 습하고 꿉꿉하고 기분 나쁜 끈적거림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아침밥을 안 먹으면 학교도 가지 말라던 아빠는 늘 밥에 진심이었다. 제철음식을 꼭 챙겨 먹어야 하고 솥밥을 끼니마다 먹어야 했다. 찬밥이나 전기밥솥에 있던 밥이 오르면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비가 오면 빨갛게 조린 생선조림을 먹자 했다. 일주일에 5일은 생선을 먹고살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무를 가득 넣고 빨갛게 조린 생선조림을 먹자 했다. 생선은 뭐라도 상관없었다. 갈치, 고등어, 납세미 뭐라도 괜찮은 듯했다.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보내준 생선으로 조림을 했던 날이다. 너무 맛있어서 납작하고 낯설어 생선의 이름을 물었는데 이름은 더 낯설어서 기억을 못 한다.



"병태? 병호? 엄마 이거 이름이 뭐라고?"

병어를 샀다. 원래는 3마리 만 원이라고 했다. 마트 수산물 코너 아줌마는 5900원 스티커 붙여주며 말했다.

"새댁. 병어는 비린내가 엄써서 조리 묵어도 맛있어요. 무나 감자 넣고 조리 무봐요."

병어는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다. 일주일 넘게 비가 그치지 않으니 생선을 좀 조려 먹고 싶어졌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그 생선을 찾고 싶지만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먹어본 적이 없는 병어를 산다. 이름만 아는 생선을 사서 갈치, 고등어, 납세미를 조리듯이 감자를 가득 넣고 매콤하게 조려 본다.

딸은 병어조림을 한 입 먹고는 이름부터 물어본다. 이런 생선은 처음 본다며 맛있다고 하지만 처음 듣는 생선의 이름을 자꾸 틀리게 말한다.


다행이다. 나는 병어의 이름을 알고 병어는 마트에서 파는 생선이니 딸이 먹고 싶다고 하면 또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병어조림을 했다. 식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감자 하나 남은 거 서로 먹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맛있는 건 어쩜 이름 모를 생선이 아니었을지도. 밖은 비가 퍼붓듯이 오지만 집에는 식구들이 무사히 모여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웃었던 순간이었겠지. 생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비 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 대신
생선을 샀다.


딸이 병어란 이름은 기억 못 해도 비 오는 날 먹었던 생선조림과 식구들의 따뜻함을 기억하면 좋겠다. 비 오는 수요일엔 생선조림을 떠올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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