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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l 17. 2023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남편이 한 입 먹자마자,

"으으으~~~ 이게 뭐야? 왜 오이를 삶았어?" 한다. 못 먹을 걸 먹은 사람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11살 딸과 5살 아들에게 권하지도 못하겠다.

오. 이. 나. 물. 먹어보라고 말은 했지만 어린이들은 시금치, 콩나물 정도만 겨우 먹는데 오이나물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하드코어다.


여름엔 아이스 커피

여름엔 시원한 오이


나라고 모르지 않는다. 얼음 동동 커피가 맛있고 냉장고에 막 꺼낸 차갑고 싱싱한 오이는 껍질 살짝 벗겨 길게 잘라서 쌈장에 찍어만 먹어도 맛있다. 여름은 그렇게 시원한 게 당긴단 말이다. 어쩌자고 그런 오이를 식용유에 새우젓, 젓국 간장 넣고 참기름 듬뿍 뿌려서 볶았단 말인가. 오이를 왜 나물로 만들어서 남편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아이들에게 권하지도 못하는 건지.


20대에 카페에 갔을 때 코코아를 시켰다. 미지근한 코코아가 마음에 안 들어 더 뜨겁게 데워달라 했다. 다시 온 코코아도 미지근해서 더 뜨겁게 펄펄 끓여 달라니 전자레인지 밖에 없어서 더 뜨겁게는 못한다고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물보다 얼음 더 많이 달라고 해서 얼음을 아자작 아자작 씹어먹었다. 뜨거운 음식은 혀가 데일 정도로 뜨겁게, 차가운 음식은 속이 놀랄 정도로 차갑게 먹던 중간이라곤 없던 20대였다.


40대의 주부는 저번 주 마트에서 산 오이가 아깝다. 세일하는 오이였으니 바로 먹었어야 하는데 냉장고에 일주일 있었더니 무르고 흐물흐물하다. 어쩌나, 버릴 수는 없다. 아무도 안 먹겠지만 오이를 어슷하게 썰어서 나물로 만든다. 호박 나물 같은 식감에 오이향이 얼핏 나는 오이나물 완성이다. 내 입에는 괜찮다. 약고추장(며칠 있다 올릴 거예요. 찾아와서 읽으세요) 넣고 계란 프라이 넣고 참기름 듬뿍 들러서 오이나물 잔뜩 넣어 비벼먹었다.

'와, 맛있다. 내가 다 먹어야지.'


그러니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영원한 사랑이 없고 늙지 않는 부모도 없고 자라지 않는 아이도 없다.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기만 했던 오이나물을 먹으며 세상을 이치를 깨닫는다. 60대에는 또 뭘 먹을 수 있을까? 그때는 어쩌면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걸 마셔야겠다. 호호 불면서 후루룩 시원하게 마실 60대도 꽤 멋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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