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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자적 Apr 18. 2019

타이베이의 셋째 날-허우통

오늘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오늘은 바쁜 날이다. 타이베이 시내를 벗어나 근교를 가기로 한 날이다. 마음 같아서는 핑시선을 타고 징통, 핑시, 스펀, 허우통 그리고 지우펀까지 가고 싶다. 그러나 이는 여건상 불가능할 터이니 꼭 가고 싶은 곳 세 곳을 정한다. 자, 오늘의 갈 곳은 허우통, 스펀, 지우펀이다.


 우선 타이베이역에서 루이팡역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1일 무제한 탑승권을 구매하여 핑시선을 이용하기로 한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핑시선 역시 이지카드로 통용되며 핑시선상 두 곳 정도만 갈 경우에는 1일권이 굳이 이득이지도 않았다. 어쨌든 대중교통 자체가 원체 비싸질 않으니 두 개의 차이라고 해봤자 몇백 원 차이다.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자.


 핑시선은 이미 사람들로 빽빽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출근시간 만원 지하철 같다. 우린 첫 역인 허우통에서 이만 내리기로 한다.


 허우통은 고양이 마을이다. 역사 안에서부터 이미 고양이들이 눈에 띈다. 모두 제 집 안방인 양 편히 드러누워 있다. 역을 빠져나와 걸음을 옮기는데 이건 뭐 사방이 고양이다. 열 걸음 걸을 때마다 새로운 고양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고양이 마을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기대를 훨씬 웃도는 고양이 수에 우린 초흥분 상태다.


 거리의 상처 없는 고양이들은 당당하다. 고양이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곳은 아무 데도 없다. 풀밭에도, 벤치에도, 지붕에도, 난간에도, 나무 아래도, 경비실에도, 음식점에도, 카페에도, 상점에도, 계단에도 모두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가 없는 곳은 허우통 그 어디에도 없다.


  이곳 고양이들은 정말이지 아주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나고 자란 게 틀림없다. 이제까지 고양이를 해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짐작할 따름이다. 상처 받아 어두운 곳으로 스스로를 숨긴 서울의 고양이들과는 달랐다. 상처 받은 기억이 무엇이길래 행동양식이 저렇게도 다를 수 있단 말인 지 참 씁쓸했다. 상처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에게 회피로 방어를 일삼게 하는 것 같다.


 이 작고 여유로운 시골마을에서 각자의 반경을 지키며 유유자적하는 고양이들을 보자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우리나라도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참 좋을 텐데, 란 생각에 이곳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인간과 고양이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게 나한텐 그저 신기한 일이고 우리나라에선 매우 어려운 일일 테지만 이곳에선 당연하고도 쉬운 일이었다.


 고양이는 주변에 사람을 거느린다. 고양이가 나타나는 구간은 어김없이 막힌다. 사랑하면 참 잘도 눈에 띄나 보다. 관심은 그 대상을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혀준다. 고양이는 사진을 부른다. 고양이를 볼 때마다 셔터를 누르자니 걸음이 자꾸 지체된다. 새로운 고양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찰칵, 또 같은 고양이가 다른 포즈, 다른 표정을 취할 때마다 도 찰칵, 하자니 그날의 앨범엔 고양이 사진만 백장 가까이다. 똑같은 사진 같아 보여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 다르다. 사랑이란 애정하는 대상의 작은 변화까지도 세심하게 캐치할 수 있는 다정함인 것 같다.


 이런 인간들과는 달리, 고양이들 안중에 인간은 없다. 이곳의 주인은 나고 너희들은 그저 날 예뻐해 주는 아랫것에 불과하다는 듯이. 지나가는 인간들의 많은 시선과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님들은 제 하실 일들을 하시고 제 가실 길들을 가신다. 이런 것쯤에는 아주 익숙해져 계신다는 듯이.


 내가 손길을 뻗으면 고양이는 그 손길을 받아들이지만 그게 다다. 먼저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고양이에게 하는 행동이 우리 교감의 한계치다. 내 행동 이후 돌아오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다. 눈길 한 번도 주지 않는다.


 허우통은 가운데에 개천을 끼고 있다. 그 개천을 사이로 두 마을이 있다. 한 마을을 보고 다른 마을로 가니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고양이가 쏟아져 나온다. 올해 다녀온 터키에서 몇 년 간 볼 고양이는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허우통에서 난 그 몇 년 이후의 또 몇 년 간 볼 고양이까지 다 봐버린 것 같다.


 어느 한 카페에 들어간다. 상주하는 집고양이도 한 마리 있다. 그 고양이는 우리가 카페에 있는 한 시간 반 동안 아무런 미동도 없을 예정이었다. 통유리창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는다. 유리창 너머로 고양이가 좁은 난간 위를 아슬아슬 걸어간다. 비가 살짝살짝 오는 게 운치를 더해준다.


 한적한 시골 풍경에 어우러진 커피는 역시 맛있다. 눈앞 경치에 감탄하는 것은 어제와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어제 정적인 상태로 동적인 대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썼는데 이제 정정해야겠다. 난 정적인 상태로 "무언가를 마시며" 동적인 대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제는 맥주였고 오늘은 커피이고 공통점은 마신다는 것. 이렇게 난 오늘도 여행을 통해 나에 대해 하나 알아간다.


 가족들에게 사진 한 장 보낸다. 이곳에서 내가 느끼고 있는 넉넉함이 그들에게도 조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제 내려와 기차를 타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스펀으로 가기로 한다. 핑시선은 기차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는데 기차 스케줄을 잘못 본 탓에 다음 기차 시간까지 앞으로 사십 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차역 앞에서 국수로 요기하며 시간을 때우기로 한다.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자마자 식당 개인 지 떠돌이 개인 지 신원미상의 큰 개가 우리 테이블 옆에 자리 잡더니 우릴 빤히 쳐다본다. 동물을 사랑하는 우리는 중간중간 고기를 던져 주었고 그 개는 찬찬이 다 먹어치운다. 서두름이란 결코 없다.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가만 기다린다. 아무런 조급함도 없다. 무례함 따위도, 갈구하는 눈빛 따위도 없다. 그저 아련한 눈으로 우릴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자고로 개는 음식 앞에서 환장하는 게 본성 아닌가. 이 개는 아무래도 이 세상 개가 아닌 것 같다.  어떤 행위를 덧대 순리를 거스르는 일도 않고, 늘 마음의 중립과 평화를 유지하는 저 개는 흡사 거의 부처급이다.


 음, 사실 먹는 표정도 뭔가 시원찮은 것 같다. 아무리 표정관리를 한대도 좋아하는 음식 앞에선 긴장이나 흥분 같은 것들이 새어 나오기 마련인데 이 개는 건조해도 너무 건조하다.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 넣어 삼키긴 하는데 정말 원해서 먹는 건지 눈 앞에 있어서 기계적으로 씹어대는 건 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이다. 먹는 듯 마는 듯, 그러면서도 주는 족족 모조리 해치운다. 그 한결같은 뜨뜻미지근한 표정으로.


 이쯤 되니 그냥 내가 자꾸 땅에 음식을 버려댔던 꼴은 아닌가 싶다. 마을이 더럽혀지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심성 착한 저 개는 배도 부르고 이 집 음식이 제 입맛에 맞지도 않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어 내가 버린 음식을 억지로 먹어댄 건 아닌 지. 저 인간은 남길 거면 그냥 곱게 그릇에 남길 것이지 왜 자꾸 땅에 음식을 버려대서 왜 내가 먹게 만들어, 하며 속으로 날 원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개의 표정을 돌이켜 생각하니 진짜 떨떠름했던 거 같기도 하고...


 늘 음식 앞에 보채는 개만 봐온 나는 음식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개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었다는 걸 그 날 알았다. 우리 구름이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절제된 미덕을 허우통의 이름 모를 개에서 봐버렸다. 고결하고 꼿꼿한 정신 하며, 일희일비하지 않는 우직한 태도 하며, 이것들이 개가 지닐 수도 있는 류의 품성이었다니!  


 어쩌면 고양이가 장악한 마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갖기 위해 발버둥 치고 일단 입 안에 쑤시고 보는 게 개의 본능이거늘, 그런 본능에 충실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개가 예쁨을 받는 거기도 한데, 저 개는 예쁨도 받기 전에 일찍이 철이 든 것 같다. 왼쪽 허벅지에 깊게 파인 상처가 그 세월을 가늠케 할 뿐이다.


 시계를 보니 슬슬 열차 시간이 가까워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역으로 향한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 개가 자꾸 눈에 밟혀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그는 그 식당 앞에 멀뚱히 앉아 있다. 다음 타자를 기다리는 건 지, 이 식당을 지키고 있는 건지, 무슨 의중인 지 좀처럼 감이 안 온다. 근데 왜 이 식당 주인은 이 개를 안 내쫓는 거지?


 어쩌면 어쩌면 이 예의 바른 개가 식당 개일 거란 생각이 갑자기 든다. 어릴 때 본 웹툰이었나, 지하철역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김밥장사를 하며 어렵게 돈을 버는 걸 본 주인공은 짠한 마음에 김밥을 산다. 그러고서 몇 걸음 가지 못해 한 어린아이가 울며 배고파하는 것을 본 우리의 주인공은 방금 산 김밥을 그 아이에게 양보한다. 이렇게 끝나면 아름답겠지만 그다음 컷에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건 바로 김밥을 받아 든 아이가 그걸 도로 김밥장수에게 패스한다는...!!! 그 둘은 감성팔이에 능한 모녀 사기단이었다는...!!!!! 자신의 순수함이 농락당한 이 참혹한 사건의 온상에 한껏 약 오른 주인공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모녀 사기단의 짜고 치는 고스톱에 놀아난 그 주인공처럼 가게와 개의 치밀한 유착관계에 내가 당한 건 아닌 지 살짝 의심이 간다. "개를 이용한 손님 적극 유치"라는 비전을 가진 그 식당에 스스로 기어들어가 그들의 "사료비 절감"을 도우며 호구를 자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모두 배불리 먹었고 개 또한 배를 채웠으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 주인공과 모녀보다는 우리가 훨씬 나은 상황일 거라 생각하겠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기차를 타는 사람도,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도, 모두 많다. 누군가 허우통을 떠나면 또 누군가는 허우통을 채운다. 허우통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매번 대체되고 말겠지만, 허우통에 항상 남아있을 고양이들은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이제 진짜 스펀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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