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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자적 May 15. 2019

강화도

오늘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전에 약속했던 출발 시각을 모두가 엄수했다. 그런 일은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침 8시쯤 출발하자고 전날 미리 말하긴 했었지만, 뭐 대충 8시 반이나 9시쯤 출발하겠거니 예상했었는데, 아니 어쩌면 안 갈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두가 알아서 준비를 했고 8시쯤 되니 비슷하게 준비가 끝나갔다.


 거의 다 준비를 끝마칠 때쯤 구름이가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현관문 앞으로 갔다 다시 거실로 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우리 동태를 살핀다. 몇 년 전쯤부턴가 구름이는 우리가 일하러 가는지, 놀러 가는 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탑재하게 되었다. 평일날 아침 출근할 때는 저 멀리 소파에 앉아 아는 체도 안 하고 심드렁하게 누워 있더니, 주말에 놀러 나갈 때는 그걸 귀신같이 알고 자기도 나가겠다며 난리부르스다. 가끔 강아지들이 이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을 소유하고 있는 게 참 놀랍다.


 구름이는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는 능력 외에도 본인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고기류를 먹을 때는 달라고 난리 치는 반면 매운 음식이나 아이스크림, 영양제를 먹을 때는 거들떠도 안 본다. 물론 냄새의 유무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래도 신기하다. 애정하면 모든 게 신기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평소 제일 신기해하던 게 하나 있다. 우리 아파트에는 차량 입차 알림 시스템이 있는데, 우리 구름이가 이 입차 알림을 정확히 인식한다는 것이다. 인터폰 화면에 알림이 뜨면 구름이는 그것을 빠르게 캐치하고 낮은 목소리로 근엄하게 짖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아빠가 올라올 때까지! 이만하면 정말 천재견이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난 그렇게 느낀다.


 구름이에 대한 얘기라면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처럼 나도 하루 종일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구름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너무 작아 잘못하면 부서질까 손으로 살살 만지던 그 날이 여전히 생생하다. 처음 강아지를 키우는 거라 구름이가 목마르진 않나, 배고프진 않나, 어디가 아픈 건 아닌가, 심심하진 않을까, 등의 온갖 걱정과 염려 속에 구름이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신경 쓰던 그때. 가족들에게 개수발녀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건 나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로부터 약 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구름이는 여전히 아기 같고, 난 아기 같은 구름이를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남들보다 과하게 돌보고 있다.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고 다른 가족 구성원보다 조금 더 센티멘탈한 정도랄까.


 좌우간 구름이의 자발적 외출 선호와 관련하여 아직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평일에 "구름아 나갈까?"라고 하면 내가 절대 손 뻗을 수 없는 침대 밑 깊숙한 곳으로 바로 줄행랑이면서, 주말에 꼭 넷이 다 같이 나가려 할 때는 자기도 꼭 데려가라며 잔뜩 흥분해 있다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 틈으로 쏜살같이 나간다는 것이다. 특히 주말 아침에 교회 때문에 다 같이 나갈 때는 들어가라고 다그칠 수밖에 없는데 문을 닫으면 안에서 한참을 서글프게 운다. 우리 집이 23층인데 한 20층 내려갈 때까지는 구름이의 구슬픈 곡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아프다. 내가 산책하자고 할 때는 그렇게 숨어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나오지 않더니, 데리고 나갈 수 없는 순간에는 가겠다고 저러니 참 아이러니다. 근데 또 저녁에 숨으려는 걸 억지로 데려나가면 또 신나 돌아다닌다. 마킹도 한 17번 정도 하며 말이다. 너 정말 심리가 무엇이니. 나름 우리 집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통하는 나도 이건 잘 모르겠다.


 하여튼 구름이의 이런 일관성 없는 행동양식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은 건 지, 그냥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은 건지, 아니면 넷이 나가면 분명 재미있는 데를 갈 게 확실하니 따라 나가는 거고, 내가 혼자 나가자 하면 동물병원에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예 산책을 거부하는 건 아닌가 추측할 따름이다. 난 절대 알 수 없는 구름이만의 기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오늘도 구름이는 우리 가족이 나들이 가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리고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혼자 정신없이 바쁘다. 나가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구름이 모습이 귀여워, 이미 데리고 나가기로 결정했지만 그 속내를 철저히 숨긴 채, 구름이의 간절한 몸부림을 지켜보다가 나가기 직전 구름아 가자, 라며 목줄을 챙긴다. 그러면 구름이는 그때서야 오늘 자신이 나간다는 것에 확신을 갖고 더 흥분하며 밖으로 따라 나간다. 나간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나가고 싶어 할 때의 흥분과 나간다는 사실을 인식한 채 나가고 싶어 할 때의 흥분은 비슷한 듯 하지만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 끗 차이지만 분명 다르다.


 아빠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엄마랑 동생과 나는 구름이의 쾌변을 위해 1층에서 내려 잠시 산책을 하기로 한다. 똑똑한 구름이는 아빠 차가 주차장에서 곧 나올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쾌변은 뒷전인 듯하다. 구름이는 재빨리 주차장 출입구 쪽으로 가더니 그곳에 자리잡고서 나오는 차들을 모두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들어 일일이 냄새도 맡는다. 아직 우리 차가 검정색인 것까진 파악하는 능력은 없는 것 같다. 하얀색, 회색, 남색 등 나오는 온갖 차들에 모두 관심을 보인다.


 때마침 우리 차가 나온다. 차가 멈추자 구름이는 차로 가까이 가 킁킁거린다. 차 본체에서 우리 냄새라도 난단 말인가. 우리 차임을 안 구름이는 한껏 흥분해 들썩들썩 춤을 추더니, 차를 타자 이제 헥헥거리기 시작한다. 예전엔 차 타는 걸 무서워해 차만 타면 숨넘어갈 듯 헥헥거리고 침 흘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철이 들었는지 일이 분 그러다가 금방 얌전해진다. 내 무릎에 앉아 편한 자세를 찾는다. 난 그녀의 가녀린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고정해준다.


 그렇게 사람 네 명에 강아지 한 마리가 강화도로 떠난다. 앞으로 한 시간 정도 갈 예정이다. 우린 차에 올라서기 무섭게 미리 준비해온 간식, 고구마, 빵, 과자, 딸기 같은 것들을 클리어해 나간다. 다 먹고 이제 할 일이 없어지면 잠을 좀 청하고, 그러다 보면 벌써 도착이다.


 우선 동막해변으로 간다. 강화도 나들길 코스가 스무 가지 정도 있는데 우린 그중 해변가를 품은 코스인 8코스를 골랐다. 원래 8코스 종점이 동막해변쯤인데 우린 동막해변에 주차를 하고 해변을 좀 보다가 반대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해변엔 이미 보더콜리 3마리 정도가 뛰놀고 있었다. 우리도 구름이를 풀어주었지만 쫄보 구름이는 뛰놀긴커녕 우리 뒤만 졸졸 쫓아다닌다. 풀어줘도 자유를 만끽할 줄을 몰라하는 것 같아 이럴 때 보면 살짝 아쉽다. 멀리까지 우왕좌왕 돌아다니진 않더라도 우리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까운 주변을 차분히 탐색하는 게 구름이만의 스타일이겠지?


 동막해변은 갯벌 해변이라 갯벌이 넓게 퍼져 있다. 오전이라 사람도 없고 참 조용하다. 나들길 코스 안내가 생각보다 잘 되어 있지 않고 걷는 사람도 없어 초반엔 조금 헤매었다. 10분 정도 찻길 옆 갓길로 아슬아슬 걷다가 코스를 제대로 발견하고 그리로 걷기 시작한다. 저수지와 갯벌 사이의 자연 그 자체의 길을 오로지 우리 다섯 식구끼리만 걷는데 참 여유로웠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구름이를 풀어주었는데 자꾸 저수지 쪽으로 가려한다. 실수로 발만 살짝 잘못 디뎌도 저수지로 떨어질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자꾸 마음이 불편해 결국 구름이의 자유를 불허하기로 한다. 엄마는 쟤도 본능이 있고 위험한 데까진 안 갈 거라고 풀어주라고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냥 안전하게 가는 편을 선택하겠다.


 그렇게 걷기를 삼십 분. 코스가 깔끔하게 다듬어 있진 않고, 돌길도 나오다 보니 이대로 세네 시간 걷는 건 무리일 거란 생각이 든다. 구름이가 걷기에도 불편한 길 같아 중간중간 안고 걷기도 하다 보니 금방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큰길까지만 걸어 나가고 거기서 택시를 타고 다시 동막해변으로 가기로 합의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정도로 트래킹을 급 마무리한다.


  원래 계획은 트래킹을 세 시간 정도 한 후 기똥차게 점심을 먹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트래킹이 빨리 끝나 점심 먹고 들릴 계획이었던 전등사를 먼저 가기로 한다. 전등사를 가니 강화도로 관광 온 사람들은 죄다 여기 있는 것 같다. 아까 트래킹 할 때는 아무도 없더니 여긴 입구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절이라 당연히 구름이는 못 들어갈 것 같아 차에 놓았는데, 안에 들어가니 강아지 몇 마리가 제법 눈에 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구름이도 데려올 걸 그랬다.


 당연히 평지일 줄 알았던 절이 경사로에 자리 잡고 있다니 뭔가 속은 느낌이다. 중간중간 난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란 느낌으로 포기하고 싶어 진다. 아니 내가 이집트 가서도 피라미드를 수백 미터 너머에서만 보고 끝까지 안 올라갔는데 이 절을 꼭 봐야 하나 싶어 진다. 그래도 오랜만에 등산하는 마음으로 살살 걸어 올라가니 얼마 안 가 절이 모습을 드러낸다. 석가탄신일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 지 연등도 많고, 뭔가를 바쁘게 설치하고 있고 몹시 어수선했다. 무언가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뒷편으로 산책로도 있는 듯 했지만 혼자 차에 남아있는 구름이가 자꾸 눈에 밟혀 대충 구경을 마치고서 내려가기로 한다.


 전등사 주차장 옆쪽으로 나무랑 의자랑 해서 쉴 수 있는 그늘진 공간이 조그맣게 있었다. 우린 구름이와 함께 여기서 바람을 쐬며 잠시 머무르기로 한다. 바람이 솔솔 부니 시원하다. 셀카의 장인인 동생을 필두로 사진도 많이 찍고, 그녀의 셀카 코칭을 겸한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앞서 예약해둔 식당으로 향한다. 점심 메뉴는 꽃게다. 간장게장과 꽃게탕! 네이버 리뷰가 좋아 예약했는데 사람도 적당히 많고 음식도 깔끔하니 맛있었다. 참고로 밥 먹을 때는 말하는 게 아니다. 모두 게 하나씩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정신없이 먹다 보니 한 시간도 안되어 다 먹었다. 우리보다 일찍 온 옆 테이블을 가볍게 이기며 먼저 일어나는 게 우리 집 클라스다. 진정한 가족이라면 식사만이 유일한 목적인 양 별말 없이 약간은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자, 식사도 만족스럽게 했으니 이제 커피가 들어가줘야 할 때이다. 아침부터 커피가 먹고 싶었는데 오후에 조양방직을 가기로 해서 계속 참고 있었다. 이제 진짜 커피를 먹어줘야 할 때이다. 요새 핫하다는 조양방직을 간다니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폐공장을 최대한 살려 꾸몄다 하여 오래전부터 기대가 컸다. 와, 강화도 온 사람들은 전등사가 아니라 조양방직에 다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넓디넓은 카페에 사람이 꽉 차있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선 한 십 미터 정도 되어보이는 줄을 서야 한다. 블루보틀은 5시간도 기다린다는데 이삼십 분을 못 기다릴까. 넓은 공간에는 옛날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골동품, 빈티지스러운 전시물 등이 어우러져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커피가 비싸긴 하지만 생각보다 맛있어 괜찮았다. 핫한 곳에 왔으면 역시 인증샷이죠. 동생에게 전수받은 셀카 족보로 사진을 몇 개 찍어본다. 뭔가 살짝 달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엄마는 집에서 가져온 신문을 읽는다. 아빠는 핸드폰으로 골프 영상을 본다. 동생은 아까 찍은 사진을 보정하고 있다. 나는 카페 곳곳을 둘러보거나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맘에 드는 디저트류가 없어 그냥 커피만 시켰는데 왜 벌써 배가 출출한 지, 아까 오전에 길에서 사 먹은 따끈따끈한 꽈배기가 생각난다. 내가 평생 먹어본 꽈배기 중 가장 맛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 모를, 다신 못 찾아갈 곳이라 생각하니 더욱 극심하게 그집 꽈배기가 먹고 싶어 진다.


 카페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성공회강화성당이 있다 하여 마지막으로 잠시 들르기로 한다. 한옥식으로 만든 성당이라 인상적이었다. 카페도 그렇고, 관광지도 그렇고, 강아지가 들어갈 수 없는 곳들이 많아 구름이를 차에 잠시 놓을 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구경하는 내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성공회강화성당 역시 이런 곳이구나, 하며 빠르게 둘러본 후 구름이를 데리고 나와 그 주변을 잠시 산책시킨다. 구름이도 익숙한 동네가 아닌 새로운 곳으로 가면 좀 더 신나 하는 것 같다. 낯선 개의 향기라도 나는 걸까. 다시 서울로 먼 길 떠나기 전 용변을 보게 한 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특별하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오랜만에 다 같이 서울 근교로 나오니 마음이 가볍고도 따뜻했다. 서울에선 누릴 수 없는 한적함도 마음껏 맛보았다. 구름이도 간만에 밖에서 에너지를 몽땅 불사질렀는 지 집에 오니 퍼져 잔다. 구름아, 수고 많았어. 여기저기 계속 많이 돌아다니자꾸나. 저도 이만 꿀잠 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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