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자적 Jul 09. 2019

이집트(상)-이집트는 현실이다

오늘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이집트를 간다니 여기저기서 걱정이 많다. 그 위험한 데를 여자 혼자 가도 되냐, 거기 치안이 최악이라는데 괜찮겠냐, 인도보다도 더한 데가 이집트라는데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냐 등등.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몇 번씩 같은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살면서 이집트 한 번쯤은 가봐야 되지 않겠어?, 란 생각으로 별생각 없이 티켓팅을 하긴 했는데 검색을 하면 할수록 안 좋은 글들과 영상만 접하다 보니 이집트 여행 결심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50만 원 이상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카이로 아웃 티켓도 예매했고, 지금 취소하기엔 기회비용도 너무 많다. 이집트 여행 진행에 따른 또 다른 기회비용이 내 목숨이 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에이 뭐 설마 별 일이야 있겠어?, 란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집트 여행을 감행하기로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내 안전을 담보로 겁도 없이 전장에 뛰어든 것 같지만 사실 난 안전에 대한 대비책을 최대한 마련한 안전제일 주의자다. 그 근거로는 첫째, 공항과 숙소를 이어주는 왕복 픽업 서비스를 미리 예약했다. 우버를 사용하면 더 싸긴 하겠지만 이집트 우버 역시 믿을 수 없다 판단했고, 그나마 숙소에서 연결해주는 픽업 서비스가 가장 안전할 거 같아 이를 선택하게 되었다. 우버보다도 2배에 달하는 값을 치르고서.


 둘째, 동행을 미리 구했다. 아시아인 여자 혼자는 아무래도 위험 요소가 많을 것 같아 미리 동행을 구하고, 시간이 맞으면 같이 다니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셋째, 1일 카이로 시티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놨다. 기자에서 카이로 시티까지 나가려면 또 택시든 우버든 뭔가를 타야 했고, 시티에서도 어떤 험할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국어 가이드 업체는 내가 원하는 루트나 일정이 아니기도 했으므로 영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팁을 포함하면 1일 10만 원 이상의 꽤 높은 가격대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이걸 미리 예약했다.


 넷째, 숙소는 기자 피라미드 바로 앞이었다. 걸어서 20초나 되려나? 슈퍼도 가깝고 그 동네에선 나름 번화한 큰길에 자리 잡고 있어 무서울 건 없었다.


 이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떠난다, 이집트로.




  착륙을 5분 정도 남기고 저공비행을 하며 바라본 이집트의 첫인상은 내가 본 그 어떤 것보다도 이국적이었다. 초록색의 들판이나 아스팔트 덮인 도로가 가장 흔한 도시의 모습이라면, 하늘 아래서 본 이집트는 온통 잿빛이었다. 아무리 카이로 시티라 하여도 대부분이 모래와 흙으로 뒤덮인 비개발 지대였다. 쭉 뻗은 좁은 고속도로만이 유일하게 회색빛이 감돌았다.

 

 푸른 생명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버림받은, 아무도 살 지 않는 외딴 지역처럼 느껴졌다. 떠밀려서도 가기 싫은 그 이상한 곳을 난 제 발로 기꺼이 들어가고 있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그 순간, 기자 피라미드가 매우 가깝고도 선명하게 보였다. 얼마만큼 크길래 이 높은 곳에서도 저리도 거대하게 보이는 걸까. 그 거대함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멀리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기자 피라미드의 압도적인 힘은 나의 늦은 자책과 불안을 잠재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난 카이로와 첫 대면식을 치렀다.




 공항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열 명 가까이 되는 삐끼들이 어디서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고 내게 달라붙는다. 싸게 해 준단다. 그러나 난 이미 여러 블로그를 통해 이런 것들에 단련된 지 오래다. 너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너희들에게 당할 정도의 순진한 사람은 아니란 말이다. 난 필사적으로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앞으로 직진한다.


 저쪽에 호텔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든 픽업 기사 무리가 여럿 있다. 내가 묵는 호스텔 이름을 찾으려고 연신 두리번거리지만 아무리 봐도 못 찾겠다. 아직 안 온 건가. 내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불안을 바깥까지 노출하고 싶진 않아 최대한 침착을 유지한다. 다시 한번 팻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지만 내가 가는 호스텔의 이름은 없다. 정말 없다.


 그렇게 5분이 지나는 동안, 픽업 기사 대부분은 각자의 정해진 여행자와 금방 만나 그대로 사라져 갔다. 저들은 저렇게 막힘없이 각자의 파트너를 만나 유유히 사라져 가는데 내 님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마치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 이도 저도 못한 채 학교에 발이 꽁꽁 묶인 초등학생이 된 것 같았다. 남은 몇 안 되는 팻말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본다. 어, 저기 뭔가 내가 가는 호스텔과 비슷한 이름이 적혀 있다. 완벽히 똑같진 않지만,  저 사람도 아직 자기 짝을 못 만났고, 나도 나의 짝을 못 만났으니 지금으로선 우리 둘이 짝일 확률이 굉장히 높아 보인다.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간다.


-기자 피라미드 뷰 인 맞아요?

-네, 네.

-아 근데 팻말에는 파노라마가 들어가 있어요? 혹시 예약자 명단 같은 거 볼 수 있을까요?

-어, 그런 거 없는데 그럼 제가 프런트에 전화해줄게요. 통화로 확인해보세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준다. 이집트인이 읽어주는 내 한국 이름의 영어 발음을 두 번 정도 듣고 있으니 내 이름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다. 비로소 안심을 한다. 그에게 짐을 내준 뒤 그의 뒤를 따라간다.


 이집트에선 어떤 것도 쉽게 믿어선 안 된다고 배웠다. 뭐든 최대한 의심해보는 게 좋다.  


 내가 이렇게 집요하게 예약 확인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픽업 서비스를 예약한 후 받은 회신 메일엔 몇 가지 주의사항들이 적혀 있었는데, 기자 숙소 이름들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명칭을 정확히 확인하고 탈 것이며, 반드시 기사에게 예약자 리스트를 요청하여 내 이름이 잘 쓰여 있는지 보라는 것이었다. 워낙 이런 걸로도 사기 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근데 이런 말을 한 자기네들조차 이를 지키지 않았으니 당연히 나로선 의심이 갈 수밖에.


 그리고 사실 처음부터 이 호스텔을 선택했던 건 아니다. 원래 한 달 전쯤 호텔을 미리 예약했었는데, 이집트 도착을 불과 이틀 앞두고 무슨 이유에선 지 긴급 잠정 휴무에 돌입한다며 알아서 다른 숙소를 찾아보라고 한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담? 내가 메일함 체크라도 잘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제때 보지도 못했다면 당일 호텔 로비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당일 숙박 가능한 숙소를 찾기는 또 얼마나 어렵고 막막한 일었을까.


 말 나온 김에 이집트의 무책임함에 대해 하나 더 논해보겠다. 바로 앞서 말한 카이로 시티 가이드 투어. 한국어 종일 가이드가 5,6만 원 상당인데 비해 두 배의 값을 주고 신청했던 투어 말이다. 신청한 지가 언젠데 하루 전날까지 그 흔한 안내 메일 하나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몇 번씩 문의 메일을 보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더니 전날 밤이 다 되어서야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인원 부족으로 투어가 취소된 건 아닌 지, 이 업체 자체가 사기는 아닌 지 수도 없이 구글링을 하며 이 업체의 실존을 확증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아직도 울화가 치민다. 내가 내 돈 주고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해야 하는지... 투어가 단체인 지, 몇 명이서 하는지, 정확히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는지, 모이는 장소가 따로 있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지만 그와 관련된 정보는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가이드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집트는 참 알 수 없는 나라다.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저 이집트니까, 라는 말이 모든 상황을 무마시킬 테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 그렇게 우린 10년은 더 되어 보이는 낡은 차를 타고 기자로 간다. 공항에서 기자까지는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차창 너머로 스쳐가는 이집트의 풍경은 비행기에서 본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리는 더럽고 낙후해 있었다. 거리의 모든 차들이 우리나라의 8, 90년대를 연상시켰다. 기어가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랍고 인상 깊었던 건 바로 클랙슨 소리! 클랙슨 소리가 진심 사방에서 끊이지 않았다. 단 일 초의 정적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한 사람이 그치면 다른 사람이 시작하고 이게 무슨 릴레이나 돌림노래도 아니고 세상에 세상에 이런 소음공해는 내 생애 처음이었다. 이게 무슨 기이하고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고, 말과 낙타가 차와 함께 자유롭게 오가고, 교통체증이 심하고, 규칙 따위는 지킬 생각이 없는, 아니 규칙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통체계가 헬인 이집트에서 어쩌면 클랙슨 소리는 디폴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별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누르는 듯한 클랙슨 소리가 더 많아 보이는 건 왜일까. 이 곳에선 클랙슨이 엑셀과 브레이크만큼이나 운전하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처럼 비쳤다. 이 곳에 비하면 서울은 양반이었다. 서울의 교통이 그립긴 처음이었다.


 이집트의 이런 노골적인 민낯에 불쾌하긴 했지만 것보다 날 불편하게 한 건 기사님의 운전방식이었다. 사고가 안 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차선 변경과 과속을 신나게 하더니, 그 와중에도 심심하지 않게 리듬을 보태던 경적 연주까지! 흥이 아닌 화를 돋던 그 경적 소리가 아직도 환청처럼 들린다. 비행시간에 지쳐 졸릴 만도 했지만 덕분에 난 졸 수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1시간이 흐르고, 그는 내가 머물 기자 호스텔 정문에 정확히 날 내려 주었다. 로비로 들어서자 프런트에 있던 직원분이 날 맞아준다.


-웰컴, 마이 프랜드.


  내가 왜 갑자기 너의 친구인 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그는 나에게 웰컴 드링크도 주고, 숙소의 루프탑 등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었다. 숙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었는데 3층까지 내 캐리어도 직접 옮겨주고 많은 친절을 베풀어줬다. 마지막에 자기네 호스텔과 연계된 여러 투어들을 소개해 주지만 않았다면 참 마무리가 훈훈했을 텐데 말이다.


 괜찮다고 아무리 말했지만 계속 그는 그 투어의 장점들을 내게 세세히 설명했다. 내일은 이미 예약해둔 투어가 있음을 밝히면 우리의 이 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러자 그는 피라미드로 가는 길이 오르막도 심하고 생각보다 멀어서 낙타나 말로 피라미드를 도는 걸 추천한다며 또 다른 투어상품을 소개했다. 난 동물을 이용한 투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 내 소신을 숙소 직원에게 밝히게 될 줄이야.


 숙소 안에서조차 구매 강요가 이렇게 판을 치다니. 이집트에선 진짜 이불 밖은 죄다 위험한 것 같다.


 배정받은 방으로 간다. 더블룸이라 방 크기도 넓고, 깔끔하다. 침대에 눕는다. 아, 나가기 싫다. 이 방을 벗어나면 뭔가 위험에 닥칠 것만 같다.


 오늘 일단 피라미드는 봐야 하는데, 근데 숙소에서도 충분히 잘 보이는데, 이만하면 된 거 같기도 하고. 이집트로 온 목적의 전부가 피라미드였는데 어쩌다 보니 목적의식을 다 잃었다. 난 오늘 무엇을 하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타이베이의 넷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