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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단지 Oct 19. 2021

우리할머니 노래가 최고지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저녁 먹고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저 노래 제목이 뭔지, 누가 불렀는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거라곤 어머니가 저 노래를 무척 좋아하셨고 자주 부르셨다는 거다. 어머니는 착착 개어놓은 옷처럼 반듯하고 단정하셨다. 살림도 반들반들했고 음식도 깔끔했고 손까지 야무지셔서 바느질도 잘하셨다. 그래서 얌전할 것 같은 어머니였지만 의외로 흥이 넘치게 많으셨다. 밥 할 때도 빨래 할 때도 흥얼흥얼 노래를 자주 하셨다. 내가 기운이라도 빠져있으면 "며느라 그럴 땐 큰 소리로 노래 한 곡 불러봐. 그러면 노래 따라 기분도 좋아져"라고 하셨고 "어머니 노래부를 기분이어야 노래를 하죠"나는 시큰둥했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어머니는 나 따라 한번 해 보라며 노래를 시작하셨다. 혼자 부르는 노래인데도 어머니는 흥이 나셨고 목소리에는 들뜬 기운이 잔뜩 묻어있었다. "며느라, 며느라 따라 해 봐" 하며 어머니는 자꾸 부추기셨다. 못 이기는 척 몇 마디 따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이 슬슬 붙어 고개도 흔들흔들 어깨도 들썩들썩 거리게 됐다.


어머니한테 노래란, 좋은 때건 나쁜 때건 옆에서 내 기분 맞춰주는 바람인 거 같았다. 철마다 맛을 달리하며 딱 그 계절에 어울리는 정감을 가져오는 바람처럼 노래는 그때, 그때마다 어머니의 마음 장단을 잘도 맞춰주었다. 어쩌면 노래는 어머니를 살게 해 준 노동요 인지도 모른다. 힘든 일 잊고 노랫가락에 몸을 실어 모내기하는 농사꾼처럼 '일을 시작하자' 작정하지 않아도 노래 따라 몸을 움직이다 보면 일이 되어지고, 노래가 끝날 즈음엔 일도 뚝딱 끝나고 하루도 저무는 그런 노동요지 않을까 싶다.  사는 세월이 고달파 내 발로 못 가면 노래에 실려 흘러서라도 가자 싶어 노래에 인생을 실으셨을지도 모른다. 흘러 흘러가거라. 가다, 가다 보면 어디라도 닿겠지. 세월이 가 닿는 끝이 있겠지... 그렇게 마음의 반쯤 떼어 노래에다 실어버렸는지 모른다.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른 게 아니라 시름을 달래려 노래를 부르셨을 거다. 살아내기가 혹독해서 내속에 있던 것들을 떼어내 한숨 한 포기, 근심 한 포기, 설움 한 포기로 노래에다 심으신 거 같다. 그래서 노래를 좋아하신 게 아닐까...


어머니는 노래교실을 다니셨다. 그래서 노래도 배우셨고 잘 부르신다고도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르는 노래는 음도 잘 맞지 않고 박자나 리듬도 영 어설펐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이 한 구절을 부르실 때도 내 귀에는 '산토끼 노래가 저랬었나? 저런 음이었나? 박자는 왜 저렇지? 내가 아는 노래가 아닌가?', ' 깡총깡총 뛰어야 할 토끼가 저 노래를 듣고 뛰기나 하려나?' 싶게 다른 노래로 바꿔 부르셨다. 아이들도 할머니 따라 음이 올랐다, 내렸다, 박자도 느렸다, 빨랐다 하며 셋이서 똑같이 들쑥날쑥이며 노래를 불렀다. '뭐 좀 다르면 어때!'  흥에 취해 신이 난 어머니 산통을 깨기는 싫었다. 듣기 좋아야만 노래인가 신이 나면 노래지.


어머니는 손자들이랑 노래 부르는 게 좋으셨고 두 손은 토끼 귀 마냥 머리에 붙여서 접었다, 폈다 하셨다. 양쪽 어깨는 들썩들썩거리는 게 어머니가 토끼처럼 곧 뛸 듯 신나게 부르셨다. 그렇게 셋이서 산토끼 노래를 부르며 거실 여기저기를 뛰어다녔고 할머니 토끼는 손주 토끼들 쫓느라 다리를 잡고 팔을 잡으며 정신없이 폴딱거렸다.  


어떤 날은 설거지를 하다 끼고 있던 장갑을 냅다 벗으셨다. TV에서 나오는 노래가 어머니를 불렀던 거다. '이 노래를 놓치면 안 되지' 싶으셨는지 방으로 얼른 가 TV 앞에 서셨다. 노래교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터라 몸 구석구석엔 흥이 아직 남아있었고 그 흥이 쉽게 가라앉지 않으셨나 보다. 오늘 노래교실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며 어머니도 슬슬 시동을 거셨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나오더니 노래가 시작됐다. 입고 있던 원피스랑 어머니는 한 박자가 되었다. 노래 따라 원피스도 같이 춤을 췄다. 그날따라 원피스는 더 나풀거렸고 실룩실룩 엉덩이도 장단을 잘 맞췄다. 손주들이랑 며느리가 보는대도 주저하는 거 없이 흥에 취하셨다.  


노래가 끝나고 이것 보라며 어머니가 사진 한 장을 들고 오셨다. "느 할머니 드레스 쫙 빼입고 무대에서 노래했어" 우리 할머니가 정말? 의아해진 우리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는 장미만큼이나 붉게 물들어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이리 고우셨나 싶게 참하게 보였다. 옆에 있는 다른 어머니들도 빨간 드레스를 입고 활짝 피어있었다. 왼쪽, 오른쪽... 반주 따라 몸을 살랑살랑 흔드는 추임새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마이크를 꼭 잡은 어머니는 무척이나 들떠보였다. 그 많은 사진 속 풍경에서 내 눈엔 오로지 어머니만 반짝거렸다.


어머니가 아가씨였을 적 동네 우물가를 지날 때면 어머니를 보고 휙휙 휘파람 불어대는 사내들이 많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눈길 한번 주는 것 없이 새초롬하고 쌀쌀맞게 치마를 휙 감아 매고서는 가던 길을 갔다고 하셨다. 난 어머니 젊은 날을 모르지만 지금도 저렇게 쌈박하고 감칠맛 나는데 소싯적엔 여러 남정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셨을 거 같다.  뽀얀 얼굴에 고운 살결, 아마 복숭아처럼 복스러웠으리라 싶다. 얼굴엔 주름도 별로 없이 이마가 반짝거리고 볼도 매끄럽게 윤이 나는데 그땐 얼마나 이쁘셨을까? 아마 내가 우물가에 앉아있던 사내라도 그런 어머니 모습을 본다면 휘파람을 안 불고는 못 배겼을 거 같다.


아이들과 나란히 머리를 맞대로 사진을 들여다보던 나는 뒤로 물러나 물끄러미 어머니 뒷모습을 봤다. "너희 할머니가 이런 할머니여" 하며 손주들에게 멋쟁이 할머니라 자랑하는 어머니가 퍽 귀엽게 보였다. "우리 어머니 최고네. 이여사 한곡 더 하시죠" 어머니를 부추겼고 어머니는 빼는 것 없이 "에잇 손주들 앞에서 할미가 한곡 더하지" 하며 일어나셨다.


그러고서 부르시던 노래가 "내 나이가 어때서...." 이 노래다. 그날 어머니가 부르시던 노래가 귓전에 다시 맴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의 끝마디가 길게 늘어지다, 점점 흐려지면 "내 나이가 어때서" 다음 마디가 따라왔다. 그리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지" 여기가 클라이맥스였다. "딱!" 이 부분에서는 그냥 슬쩍 끊는 "딱"이 아니라 정말 "딱" 떨어지게 끊어치셨다. 그리고 입으로만 "딱!" 이 아니라 몸도 "딱" 스러운 추임새로 순간 멈추고선 스르르 풀리며 마무리를 지으셨다. 아이들은 "우리 할머니 최고"하며 장단을 맞췄다. 그건 노래를 잘 불러서 나오는 최고가 아니었다. 노래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의 문제였다. 저 노래가 최고인 것은 우리 할머니가 불렀기 때문이었다. 남이 아닌 우리 할머니가 불렀으니 못 부른 것도 잘 부른 것으로 들리고 어설퍼도 멋들어지게 들리는 거였다. 음정, 박자가 죄다 틀린다 해도 우리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가 최고였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다시 듣게 된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지" 익숙한 가락에 귀가 쫑긋했다. 먼 곳을 보며 걷던 아이들과 나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서로 눈이 맞았다. '이거 할머니가 좋아했던 노래잖아.' 이 눈빛이었다. 세월이 가도 어머니가 안 계셔도 잊히지 않는 게 있었다. "우리 할머니 이 노래 잘 불렀는데..."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이다.

앞서가던 아저씨가 저만치 멀어졌고 우리는 콧노래를 나직이 불렀다. 하나의 점으로 사라졌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금 돌아와 밤마실 길을 느릿느릿 만들었고 부를 일 없던 노래도 부르게 했다. 그래 어머니가 잘 부르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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