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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단지 Oct 08. 2021

네! 그런 여자가 제 시어머니입니다.

"아이고 여기 좀 쓸어야겄다"

어머니께서 빗자루를 들고 현관 앞 계단을 쓰셨다. 그걸 보고 있자니 맘이 편치 않았다. 빗자루든 시어머니를 어느 며느리가 괜찮다 할까. 내가 살림이란 걸 참 못하는 사람이구나를 조금씩 알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솔직히 잘 못하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었다. 그저 2살, 4살 아들 둘 키우는 걸 버거워 하고 있을 때라 바지런한 살림은 딴 나라 이야기였다.


살림 경력 40년! 노련한 살림꾼인 어머니 눈엔 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스레인지는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묶은 기름때를 벗기고선 반질반질한 새 것으로 만들어놓으셨다. 빗자루를 들고 계단이며 현관 앞을 쓸었고 대문 앞도 삭삭 비질하셨다. 현관에 보얗게 앉은 먼지도 걸레 들고 쪼그려 앉아 슥슥 훔쳐내셨다. 수건이랑 속옷도 대야에 담아 푹푹 삶아선 뽀얗고 보송보송하니 만드셨다. 수저랑 수저통도 뜨거운 물에 바글바글 삶아 소독해선 물때도 말끔히 없애고 반짝반짝하게 하셨다. 행주를 들고 싱크대 구석구석 얼룩도 지우셨고 행주도 락스를 살짝 푼 물에 담가 삶아선 새하얗게 걸어두셨다. 빨래통에 쌓인 빨래는 세탁기로 들어갈 것도 없이 손으로 조물조물해선 애들 옷에 묻은 얼룩까지 말끔히 지워주셨다. 이러니 어머니가 오셨다 하면 집이 말끔하니 환하고 깨끗해졌다.


처음엔 집에만 오셨다 하면 이리 청소를 해대는 어머니가 불편했다. 걸레 들고 있는 시어머니를 보는 며느리는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오시기 전 미리서 화장실 청소도 했고 방마다 청소기도 돌렸고 이불 먼지도 탈탈 털고 현관에 있는 먼질랑 싹 쓸어버리고 신발까지 가지런히 정리해뒀다. 나름 집 정리를 했는데도 어머니 눈에는 뭐가 자꾸 띄었다. "네가 뭔 살림을 하겄냐?"는 말이 날 타박하는 말로 들려 싫었다. '제가 할게요 어머니...'라고 말하기에는 어머니가 너무 바빠 보였다. '할게 저렇게나 많았나? 저것도 해야 되나?' 싶은 일들을 어머니는 척척 하고 계셨다. 어떤 날은 '며느리 불편해 할거 뻔히 아시면서 저렇게나 하시나?  그냥 가만 계시면 안 되나?' 싶은 게 좀 짜증도 났었다. '하루, 이틀 밤만 주무시면 가실 건데 그걸 못 보시고 저리 설치시나. 일부러 보라고 저러시나?'  하는 심통스런 맘이 들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나더러 못한다느니 좀 잘해라느니 그런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나 혼자 제 발 저려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오시기 며칠 전부터 쓸고 닦고 청소하느라 그야말로 일 폭탄이 떨어졌었다. 그래서 솔직히 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이 반갑지 않았다. 이번엔 오셔서 또 얼마나 청소를 하시려나... 시름시름 앓듯 말도 못 하고 어머니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세월이 가면서 어머니 맘도 알게 되고 내 맘도 열렸다.  "네가 뭔 살림을 하겄냐?" 이 말이 날 구박하는 말이 아니라 딱해서 하는 말이란 걸 알아듣게 됐다. 말 그대로 '네가 살림이란 걸 알겄냐' 이 말은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그 말이 다였고 못마땅한 마음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언짢은 기색이 섞인 것도 눈치가 섞인 것도 아닌 말이었다. 꽁하게 들은 내 잘 못이었다. 걸레질을 하시면서도 잔소리 한번 안 하셨고 구박 한번 없으셨다. "애 키우느라 바빠서 이런 것까지 하겄냐. 내가 있을 때 해줘야지" 그 말은 빈말이 아니라 참말이었다. '퍽이나 그리 맘 좋은 시어머니가 있으려고? 살림 못하는 며느리를 괜찮다 하는 시어머니가 있으려고? 내 몸 고달게 손수 청소하며 며느리 편들어주는 시어머니가 있으려고?' 하겠지만 그런 시어머니가 있었다. 그게 내 시어머니였다.


같이 10년을 살고 15년을 살면서 어머니랑 나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여자가 되었다. 서방 험담도 같이하고 아픈 속도 같이 달래며 살가워지고 가까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고 같이 살수록 내 편인걸 알게 됐다. 어떤 어머니인지 같이 살다 보니 세월이 말해줬고 그 속을 알아보게 됐다. 같은 여자로 어머니는 애들 키우며 사는 날 딱하게 보셨고 난 긴 세월 견디며 산 어머니를 딱하게 보았다. 아침 먹으려 밥상에 나란히 앉으면 이야기하느라 밥은 뒷전이었고 한 시간이 지나도 여적지 밥은 남아 밥그릇에서 식다 못해 마르고 있었다.


이야기 속 어머니는 전쟁통에 아비 잃은 슬픈 아이였고  새들 배 굶기는 게 서러운 딱한 새댁이었고 아픈 새끼 들쳐업고 맨발로 뛰어다니던 애처로운 어미였다. 듣고 있자니 어머니가 참 안쓰러웠다. 같은 여자인 어머니 삶이 참 모질고 억세어서 "전 무조건 어머니 편이에요" 내 마음은 찰떡처럼 어머니한테 달라붙게 되었다. '나'라도 어머니 등을 쓰다듬어주는 손이 되어드리고 싶었고 등이라도 붙이고 누울 이부자리가 돼드리고 싶었다. 어머니 새끼들한테 쏟던 그 마음을 이젠 남의 새끼인 나한테도 나눠 주시나 싶어 맘이 짠했다.


그래서 더는 진 빠지게 청소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온다 하시면 집 청소는 뒤로하고 소고기부터 사서 불고기 양념을 해서 재웠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잡채 하려 당면도 미리 물에 담가놓고 어머니 드실 토마토랑 사과도 장 봐왔다. 국이 있어야 밥 드시니 쌀뜨물을 받아다 시래깃국 끓일 준비도 했고 어머니가 맛있다고 하시던 두부조림 할 양념도 개어놓았다. 늘 그러시듯 어머니는 청소하느라 바쁘셨고 이젠 나도 그런 어머니를 더는 말리지 않았다. 주시는 마음 잘 받는 것도 잘하는 일이며 내 맘대로 해석하곤 어머니가 주시는 대로 받았다. 그냥 어머니 하고 싶은 거 편하게 하시게 그만하시라는 말도 더는 하지 않았다. 대신 든든히 배 채워드리고 싶었고 속 든든히 해드리고 싶었다. 많이 드셨으면 해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것들로 저녁상을 차렸다.  "어머니 오신다고 고기 많이 샀으니 손자들 먹일 생각 말고 어머니 많이 드셔요"하며 어머니 코 앞으로 불고기 접시를 밀어드리고 쌈 싸드리고 숟가락에 얹어드리며 한 젓가락이라도 더 드셨으면 했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오시자마자 걸레부터 드셨다. 앞 베란다 청소를 하신 댔다. 거긴 잘하시지 않는데 그날은 집을 더 매만지고 더 쓸고 닦고 하셨다. 얄팍하게 썰어 말린 문어를 사 오셔 선 고추장 양념에 버무리셨고 연근도 간장에 반질반질하니 졸여선 반찬통에 그득그득 담아두셨다."애들 기침하면 먹이거라. 이거 한 숟가락 먹으니 기침을 영 안 하고 잘 듣더라"며 물약도 세병이나 사 오셨다. 지나는 말로 "뭘 세병이나 사 오셔요? 먹고 없으면 담에 오실 때 또 사 오시면 되지" 했었다. 그런데 그다음이 없었다. 어머니가 너무 멀리 가버리셨다. 가시면서도 겨울에 기침하고 감기 달고 살 손주들이 걱정되고 맘에 걸려 '아프지 말거라. 어여 먹고 나아야지' 라며 할머니 약손 대신 약을 주고 가셨나보다. 그다음이 없다는 걸 어머니는 아셨던 걸까? 그 물약 세병을 주고 선 다시는 오지 않으셨다.


지금 돌아보니 어머니는 이 집에 다시 오지 않을 준비를 하셨던 거였다. 엄마들은 집 비우기 전 준비를 한다.  

애들은 목욕시켜 얼굴을 말끔하니 해두고 때 묻은 옷들도 씻어선 빨랫줄에 졸졸이 널어 말려두고 구석구석 청소해선 며칠씩 집에 먼지 쌓여도 표 안나게 해두고 반찬도 넉넉히 만들어 냉장고에 채워둔다. 그렇게 집 비울 채비를 한다. 어머니도 이 집을 떠날 준비를 하셨나 보다. 오래오래 이 집 비울걸 아셨나 보다. 못 올 것이니, 더는 쓸고 닦을 일이 없을 것이니 그렇게나 청소를 하시고 냉장고를 채우셨나 보다. 집 비우고 가실 거면 내게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그러면 나도  어머니 보낼 채비를 좀 했을 건데... 그렇게 주고만 주고만 가셨다. 집구석구석 청소해 말끔히 해두시고 먹을 것 장만해 냉장고 채워두시고 애들 아프면 먹을 약까지 준비해두시고 학교 가는 아이들 꼭꼭 안아주고 잘 갔다 오너라 눈 맞추며 인사해주고 며느라 사랑한다 안아주고...

그래 이만하면 어머니는 준비를 다 하신 거지...


혼자 앉아 아침밥을 뜨고 있다.  오늘도 뜨던 밥이 다 식도록 멍하니 앉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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