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국화를 좋아한다. 노란 국화 빛은 물론이고 풋풋하면서 털털한 국화의 가을 냄새가 좋다.
계절 중 볕이 가장 좋은 날 피는 꽃답게 국화에서는 가을볕 냄새가 난다. 하늘이 가장 파란 때 피는 꽃이라 하늘빛 냄새도 품었다. 좋은 날을 기다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자라는 풀 같은 심성이 있어 국화는 차분하고, 풍성한 가을 같은 심성도 있기에 국화향은 넉넉하고 푸짐하다. 예민하거나 까다로운 구석 없이 낮고 묵직한 향을 낸다. 멋 부리지 않아도 속에서 우러나는 자신감이 있다. 열매 맺을 일 없는 가을에 피는 꽃이기에 나비나 벌을 유혹할 일이 없다. 그래서 국화향은 요염하지 않고 무심하다. 그저 깨끗하고 맑은 얼굴로 핀다.
하지만 무심하게 폈다고 해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국화꽃 한 송이에는 꽃잎 한 장 한 장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채운 정성이 있고 그 끝을 같은 길이로 둥글게 다듬은 마음이 있다. 노랗게 날아다니며 담백한 향을 나르는 국화. 그런 국화가 꽃 중에 가장 으뜸이라고 나는 예찬하기까지 한다.
내가 언제부터 국화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좀 오래된 일이지만 기억할 수 있다. 막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였다. 어머니가 노란 국화분을 들고 오셨다. "내가 한 번도 우리 며느리한테 꽃 사준적이 없어서 국화를 사 왔다. 환하게 이쁘게 잘 키우거라" 하셨다. 수수하고 소박한 국화향이 좋았다. 가을 햇살을 담고 흙냄새를 품은 국화향이 좋아 국화 옆으로 가까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날부터였다. 그날부터 난 국화가 좋았다.
계절은 가버리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거다.
10년 전 가버렸던 가을은 다시 돌아와 국화를 피게 한다.
국화가 피었다. 가을이 다시 왔다. 마트 앞 국화분이 졸졸이 놓여있었다. 봉오리만 소복하게 달린 국화분이었다. 살짝 벌어진 틈새로 노란빛이 보일랑 말랑 하는 것이 며칠 지나면 하나씩 벌어져 꽃송이가 될 듯했다. 앙증맞도록 귀여운 꽃봉이를 단 국화분을 살까 말까, 화분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망설이다 결국 하나를 골라선 집으로 들고 왔다. 어찌 된 게 내 손만 닿으면 화분들은 시들시들 앓고서는 죽어버린다. 예뻐서 사온 화분인데 온전히 잘 키우지 못해 미안했다. 그래서 화분을 사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데 국화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국화는 내게 그냥 국화가 아니니...
막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였다. 2인실에 머물며 퇴원을 기다리고 있었고 옆에 산모도 이제 막 아이를 낳고 한 방에 같이 있게 되었다. 옆에 산모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고 당연히 주고받는 이야기도 많았다. "나 죽는 줄 알았어. 얼마나 아픈지. 둘째는 절대 안 놓을 거야." 친구랑 주고받는 말이 들렸다. "애 낳느라 고생했는데 뭐 선물이라도 없니?" 친구가 물었고 "안 그래도 내가 찜해뒀던 구찌백 사준데"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속으로 '그럼 난 구찌백이 세 개나 되겠네'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난 큰애랑 작은애가 보고 싶었고 엄마 없이도 유치원은 잘 갔는지 궁금해하며 그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노란 국화분을 든 어머니가 보였다. "며느라 애썼다. 고생했다" 하시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손에 들린 국화분은 참 국화다웠다. 갖은 포장으로 화려하게 멋을 낸 꽃다발이 아니라 멋없는 플라스틱 화분에 리본 하나만 달랑 두른, 말 그대로 국화분이었다. 그런 국화분을 들고 있는 어머니와 국화가 퍽 닮았었다. 꾸미거나 멋 부리는 거 없이 마음이 최고다 하시던 그 마음을 닮은 소박한 국화분이 좋았다. 역시 우리 어머니구나. 그래서 어머니가 좋았다. 꽃다발이었다면 화려한 포장에 가려 국화를 제대로 보질 못했을 거다.
곧 겨울이 될 11월인데도 국화꽃은 피고 있었다. 조롱조롱 피지 않은 꽃몽우리가 백개쯤 달려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오십 개쯤 되는 국화가 노랗게 피어있었다. 국화를 보고 있으니 가을을 선물 받은 듯 좋았다.
막내를 낳고 나니 가을이었던 날씨는 겨울이 돼버렸다. 밖은 찬 바람이 불고 서리까지 내리는 추운 날이 되었고 산모인 난 꼼짝없이 방에 갇혔었다. 애 낳고 바람 들면 약도 없다며 찬바람 들지 않게 몸조리 잘해야 된다고 어머니는 당부하셨다. 찬바람이라고는 한 숨도 맡지 못하고 방에만 갇혀 있자니 갑갑증이 났다. 바깥이 궁금하고 바람이 맡고 싶었고 햇살이 그리웠다. 그래도 행여 바람 들까 겁이 나서 밖에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며칠을 참다 답답해서 창문을 빼꼼 열고 머리를 내밀어봤다.
바깥공기가 코에 닿았고 겨울바람이 사납게 들어왔다. 얼른 들어가라 매섭게 불었다. 찬바람에 깜짝 놀라 문을 얼른 닫았다. 이렇게 집에 갇혀 겨울을 나야 될 모양이었고 아주 긴 겨울이 될 거 같았다. 그때 매콤한 듯 풋풋한 냄새가 났다. 현관 구석에 두었던 국화분이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동안 국화는 거기에서 피고 지고, 피고 지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국화를 들여다보니 눈이 환해졌다. 흙냄새 같은 바깥 냄새도 맡아져 코가 시원했다. 털털한 바람 냄새도 났다. 가을이 다 가버린 12월! 국화를 앞에 두니 가을이 가다 말고 다시 온듯했다. 애달프게 찾던 바깥바람을 국화가 담고 있었고 국화만 볼 수 있다면 나는 가을을 붙잡아 둔 거였다.
국화는 내 곁에서 12월이 다 가도록 향을 풍기며 가을을 가져다주었다. 노란 꽃을 보며, 초록잎을 보며, 가을향을 맡으며 갑갑하던 마음을 달랬다. 난 그 겨울을 어머니 덕에 집에서 꽃구경을 하며 가을놀이를 하며 지낼 수 있었다. 답답하던 그 마음을 국화가 아니었으면 뭘로 채우고 달랬을까? 촘촘한 국화꽃 새로 코를 묻은 채 국화향에 취할 수 있었다. 풀냄새 같은 수수한 향이 콧속을 파고들면 어수선하고 심란했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초겨울이라 바깥바람은 야단스레 불었고 덜거덕덜거덕 창문은 요란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난 계절도 잊은 채 국화분 하나로 가을을 오려다 집에 붙여두었다.
국화가 없었으면 어찌 그 겨울을 보냈을까 싶다. 한 병실에 머물며 구찌백을 선물 받기로 했다던 옆의 산모가 부러운 마음이 좀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구찌백보다야 국화꽃이 백배는 더 낫다.
세상 구경 중에 가장 좋은 게 꽃구경이라는데 긴 겨울 동안 방에서 꽃구경하는 호사를 누렸으니 그만한 사치가 어딨을까 싶다. 바람이며 가을이며 흙냄새를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구찌백이랑 국화를 바꾸자 한데도 고개를 저을 거다. '난 국화가 더 좋아. 구찌백 너나 해'
국화야 천천히 지거라, 천천히 가거라 내 곁에서 날 외롭지 않게 겨울을 같이 보내준 국화가 지는 게 아쉬웠다.
10년이 지나도 국화꽃피는 계절은 다시 온다. 볕이 좋은 가을날이 왔다. 꽃집마다 국화분을 내놓고 "가을 사 가세요" 한다. 그 앞을 지나면 국화향이 날 따라온다. 국화분을 들고서 곱게 서계시던 어머니 모습을 담고서 같이 따라온다. 그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오늘은 국화분을 사버렸다. 국화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나서 좋다. 수수한 꾸밈없는 그 냄새가 어머니를 닮아서 좋다.
국화를 보면 어머니를 보는 듯 반가워서 좋다.
가을아 다시 와줘서 고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