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에서 10년을 머물렀다. 그러니 짐이 늘 대로 늘어나 버릴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저건 꼭 버려야지 점찍어뒀던 게 있었다. 바로 이불 보따리다. 그게 말이 이불 보따리지 실은 먼지만 앉은 짐덩어리였다. 보자기에 꾹꾹 욱여넣어 꽁꽁 싸맨 이불 덩어리는 눈엣가시였고 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게 보기 싫어 다락으로 올렸다. 구석에 놓여있던 시간만큼 먼지도 쌓여, 끄집어 내리니 사방으로 퍼지는 먼지는 분무기로 뿜어대듯 날아다녔다. 그 먼지를 보며 이걸 왜 버리지 않고 다락으로 올리나 싶어 '으이그 이 짐덩어리! 무겁기는 오지게도 무거워....' 연신 툴툴거렸다. 눈 딱 감고 갖다 버릴까 싶다가도 남편이 다락으로 올리자는 말을 했기에 마음대로 버리지도 못해 더 불만이었다. '이 쓸모없는 것을 왜 버리지도 않고 끌어안고 있어' 탐탁지 않았다.
보얀 먼지를 풀면 안엣것은 더 과간이었다. 이불청도 없이 솜만 덩그러니 있기에 이불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솜이불이 제멋대로 접히고 말려 보따리에 구깃구깃 묶여있었다. 겨울이 가까워 오던 날 어머니가 마련해준 이불이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자취하는 아들에게 해줄게 이불뿐이라 속상해하며 건네주셨겠지 싶었다. 자취방을 옮길 때마다 끌려 다니느라 이불 귀퉁이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고 이불 구석구석은 누릿한 얼룩과 칙칙한 때가 엉겨 붙어 있었다. 세월에 찌든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결국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실어 이 집까지 끌고 왔다. 이사를 오고서도 이걸 어찌해야 되나 감당이 안되어 풀다 말고 도로 묶어 구석에 쑤셔두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셨을 때 "어머니 저걸 어떡해요?" 좀 처치해달라는 눈빛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아이고 이거 호청 사다가 입히면 말끔하지. 담에 올 때 이불 홑청 사 오마" 하셨다. 이불 홑청을 입힌다고 저게 이불이 되려나 싶었지만 "네" 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속으론 '저 꼬질꼬질한 게 이불이 될라고?' 반쯤 믿고 반쯤 믿지 않으며 '어찌 되겠지...' 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어머니가 이불 홑청을 사 오셨고 꾸깃꾸깃 접힌 보따리를 풀어헤치셨다. 얼마 만에 나오는 것인지 모를 솜이불이 방바닥에 늘어지게 펼쳐졌다. 어머니는 구겨진 걸 벌리고 접힌 것은 펴며 손으로 이불을 주무르며 주름도 편편하게 만드셨다. 움츠리고 오므리고 있던 이불이 슬슬 기지개를 켜더니 고르고 반듯해졌다. 이불을 들고 문 열고 나가셔선 계단 난간에 걸쳐 먼지를 터셨다. "탁" "탁" 먼지가 한 톨도 붙어있지 못하게 매매 때리셨다. 먼지야 부스러기야 어서 떨어지고 날아가라는 듯, 묵은 때를 벗기는 듯 옴팡지게 박박 터셨다. 그러고도 모자라 남아 있을지 모를 먼지를 떼내시려 이불을 사정없이 쥐어흔드셨다.
그리고 쨍쨍한 여름 볕에 널어선 솜이불이 먹은 퀴퀴한 군내도 볕에 말리셨다. 이불을 태울 듯이 볕은 땡땡하게 내리쬤고 까랑까랑한 볕에 군내들은 버티지 못하고서 날아갔다. 눅눅했던 이불이 바삭바삭하니 볕에 잘 말랐다.
앞으로 뒤로 뒤집어가며 볕에 말리고 먼지 털며 죽었던 숨을 살리고 보송보송하게 숨을 넣으셨다. 그러기를 며칠하고 나니 솜이불이 제법 까슬까슬한 게 생김새가 예전과는 달랐다. 얼룩이야 어쩔 수 없지만 얌전해지고 말끔해진 것이 보기 좋았고 꽤 쓸만하게도 보였다. 어찌 손을 좀 보면 이불이 될 듯도 했다. 어머니는 솜이불을 바닥에 누이고 구깃구깃한 것을 손으로 펴고 눌러 반반하게 만드셨다. 삐뚤게 튀어나온 귀퉁이는 손으로 매만져 반듯하게 만드셨고 착착 펼쳐 다듬으니 이제야 이불이구나 싶게 보였다. 미리서 빨아 말려둔 이불청을 들고 오셨다. 이불청을 뒤집어 솜이불 위에 얌전히 올리셨고 네 귀퉁이가 맞게 자리를 잡으셨다. 홑청 크기가 솜이불이랑 맞아떨어졌다. 긴 바늘을 들고 바늘귀에 긴 명주실을 꿰어 이불청과 솜이불을 맞대고 듬성듬성 바느질하셨다. 이불 홑청만 붙어있으면 되니 촘촘히 할 필요 없다며 실이 건너가는 간격이 크게 벌어지도록 한 땀씩 꿰매셨다. 어머니는 손으로는 바느질을 하고 입으로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셨다.
어머니 어릴 적, 전쟁 중이던 동네는 어수선했다고 하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인사하며 지나던 마을 사람이 오늘은 딴 세상 사람이 되어 땅에 묻히던 게 전쟁이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 총알이 집으로도 날아들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불속에 숨었다고 하셨다. 총알이 솜이불은 뚫지 못한다며 어머니의 어머니가 이불 밑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었고 가만히 숨죽이고서 총소리가 끝나길 기다리며, 가슴 졸이며 조마조마했다고 하셨다. 그런 세월을 살아보지 않은 난, 어머니 이야기가 낯설면서도 딱해서 "아이구... 어떻게 사셨어요 어머니"하고 한숨 쉬며 이야기를 거드는 게 다였다.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 손으로 이불을 쓱 매만지셨다. 그런 세월을 보낸 애처로움이 어머니 손끝에 걸려있었다. 길었던 실이 짧아지면 매듭지어 잘라버리고 바늘귀에 또 한 줄의 실을 새로 뀌어 바늘을 아래로 밀어 보내고 위로 잡아당기며 한 땀, 한 땀 떠가셨다. 바느질 자국이 반듯하니 직선으로 나갔다. 마지막 바느질이 끝나고 가위로 실을 싹둑 자르셨다. 바느질하지 않은 쪽 구멍으로 이불솜을 끄집어내어 겉과 속을 뒤집으셨다.
이불청을 입혀 놓으니 꾀죄죄하고 궁상스럽던 솜이불은 온데간데없이 말쑥한 새 이불이 되었다. 이리 멀쩡 해진 게 신기해서 '이게 그 구질구질했던 솜이불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보송보송한 새 이불을 아들 침대 위로 올려주셨다. 오래, 오래전 어느 날도 어머니는 이 이불을 집 떠나는 아들품에 안겨주셨을 거다. 추운 겨울날 덥고 자며 감기 걸리지 말거라, 아프지 말거라, 잠이라도 따뜻하니 자거라... 그런 맘으로 이 솜이불을 건네주셨으리라. 그리고 세월이 지나 다시 어머니 손이 닿은 솜이불은 낡은 때를 벗고 새 이불이 되어 다시 아들 옆에 눕게 되었다.
자취를 하던 시절 아들은 저 이불을 안고 겨울을 났을 거다. 이불은 썰렁한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서 그 사람을 기다려 줬을 것이고, 어두운 밤이면 이제 왔냐며 어머니 같은 눈길을 보내줬을 거다. 서늘한 찬기운을 막아주며 등 대고 누울 자리도 되줬겠지. 추위도 바람도 한기도 함께 보냈을 거고 살 냄새, 땀냄새도 고스란히 받아주며 젊은 날을 나누어 가졌을 거다. 봄이 오면 짐 싸지고 겨울 오면 풀어지며 어머니인 듯 끌어안고 어머니품인 듯 잠들었을 거다. 한해, 한해 시간의 먼지를 먹다 보니 누추해지고 낡아져 어느 날부터 더 이상 꺼낼 일 없는 짐덩어리가 됐겠지... 그래, 그런 이불이니 어찌 버릴까...
어머니가 가시고 더는 홑청을 갈지 않았다. 꼬질꼬질 때가 묻어도 어머니가 해준 바느질이다 싶어 뜯어내기 싫었다. 그것마저도 어머니 손길이 닿았던 것이다 싶어 버리는 게 아까웠다. 미련하다 청승맞다 하겠지만 내 마음이 그런 걸 어쩔까... 때가 타고 먼지를 먹어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손댈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올여름 큰맘 먹고 이불청을 갈았다.
어머니가 바느질하시던 모양으로 긴 명주실을 바늘귀에 꿰어 이불 위에 앉아 바늘을 아래로 밀고 위로 당기며 바느질을 해갔다.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네 귀퉁이는 단단하니 바느질했고 옆쪽은 듬성듬성 바늘땀을 멀리하며 홑청이랑 이불을 꿰매었다. 긴 실이 짧아지게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했고 혼자 앉은 거실은 조용했다. '바느질 소리는 왜 들리지 않는 걸까. 좀 소란스러우면 좋으련만...' 괜히 한숨 쉬며 바늘을 앞으로 뒤로 보냈다. 그 조용한 적막 새로 어머니랑 주고받던 이야기가 들릴 듯 말 듯했고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 손도 보일 듯 말 듯했다. 바늘은 자꾸 뿌예지고 실은 자꾸 흐릿해지고... 그러다 이불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