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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단지 Jan 05. 2022

햇살 한 줌에  담긴  한 움큼의 행복

작년겨울 마지막 날.

그래 보았자 5일 전.

초록빛 가득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뼘 정도 넓이의 햇살이 빼꼼히 들어와

길게 드러누운 자리였다.


따스스, 따스스 햇살이 내려앉은 소리를 들으며

사부작, 사부작 나는 햇살을 주웠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한 장, 두 장... 햇살을 담았다

찍은 사진을 갤러리에서 펼치자

바사삭, 바사삭 햇살이 만져졌다.

이게 뭐라고. 혼자 식 웃었다.


몇 줌 되지않는 햇살을

책에도 뉘어보고 꽃잎에도 앉혀보고 찻잔에도 담아보고

그러느라 차는 미지근히 식었다.

그래도 햇살을 곁에 두고 마시는 차는

따스하기만 하고 포근하기만 했다.

홀짝홀짝 차를 마시다 집으로 돌아오던 오후.

별것 아닌 시간이 가슴 꽉 차게 행복했다.


그러니까 그건 햇살 같은 행복이었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상냥하고 보드라운 것들이었다.

시시하고도 소박한 순간,

아무렇게나 와선 잠깐 사이 사라지는 시간,

분명 옆에 있건만 보지 못한 때,

그래서 온 줄 모르게 가버린 틈.

그날은 그 틈에서

혼자 웃다가, 가만히 있다가, 숨을 쉬다가

그러다가 여유마저 얻어버렸다.


빡빡하고 빈틈없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무어 때문인지 왜 그런지도 모른 채.

창을 비집고 들어온 한 뼘의 햇살 속에서

나는 한 뼘의 여유를 만들었고

그 새로 코를 내밀어 살 것 같다며 단 숨을 쉬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그 틈이 날 쉬게 해 줄 줄이야.


아마도 난 틈 없이 살아왔던 모양이다.

그 틈이 날 쉬게 하는 줄도 모르고

바쁘다며 틈 없이 급하게만, 급하게만 살았나 보다.

틈을 만들자.

아니 구태여 만들 필요까지 없다.

알아차리기만 하자.


노른자가 터지지 않고 예쁘게 굽히던 날,

주문한 택배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날,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에 겨우 올라탔던 날,

김이 솔솔 나는 붕어빵 한입으로 겨울바람이 차지 않던 날,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도망가지 않고 "야옹" 해주던 날,

겨우 눈뜬 월요일 아침 알고 보니 일요일이라 다시 눈감던 날...


희한하게도 하루에 한 번씩은 그런 일이 있었다.

엉망진창인 하루였대도 한 번은 좋은 일이 끼여있었다.

분명하게 보이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있었다.    


여기저기 그런 틈 같은 행복이 살폿살폿 앉았는데도

보지 않고 지나버렸을 거다.

바쁜데 언제 그걸 보냐며

발밑에 깔린 햇살을 그냥 밟고 걸어갔을 거다.

그러고선 내가 밟은 게 뭔지, 지나온 게 뭔지도 모른 채 불평하며 살았을 거다.


올해는 별것 아닌 햇살을 주워볼까 한다.

자그마한 마음으로 햇살을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다.

햇살처럼 작은 순간들을 잊지 않고 모아보자.

날마다 비추는 햇살 같은 날들을 기록해보자.

분명 보지 못한 틈이 있을 거고

알지 못한 행복이 있을 거다.

가볍도록 시시할 거지만 분명 좋을 거다.



햇살 담은 사진을 한 장 친구에게 보냈다.

너랑 같이 있던 자리, 오늘은 혼자라며 내 곁도 내주었다.

이러면 옆에 없어도 곁에 있는 거지.

그럼 같이 있는 거지 뭐.

너무 별것 없어 볼품없지만

나는 또 웃었다.


별것 아닌 햇살이,

그저 매일 같은 나날이

연한싹을 틔워 꽁꽁 언 땅을 들추어 올라오게 하고,

봄바람을 불러와 봄을 열어준다.

그런 일을 햇살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한다.

아마 이 햇살만 잘 담아도

서늘하고 답답한 마음은 풀어질 것이고

더는 툴툴거리지 않을  같다.   

    

내일 다시 와도 햇살은 저 자리에 있을 거다.

날 기다리지 않은 햇살이지만

날 기다린 듯 예쁘게 봐줄 거다.

이 햇살이 겨울을 녹이고 봄이 오게하

내게도 봄날을 불러와줄거니까.

그게 햇살 한 줌에  담긴 한 움큼의 행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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