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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이 아니면 안 될까요?" 라는 질문

당신의 '컨셉'이 당신의 '층'을 결정합니다

by 잇쭌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은 분들이 밤잠 설쳐가며 하는 고민 1순위는 단연 '입지'일 겁니다. 머릿속에 그린 완벽한 그림은 '햇살이 잘 드는 1층 코너' 자리지만, 현실의 임대료 시세표를 받아들면 깊은 한숨이 나오죠.


그러다 조심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1층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데, 2층이나... 3층도 괜찮을까요?"


이 질문의 행간에는 '1층이 정답이지만, 어쩔 수 없이 타협한다'는 아쉬움이 묻어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몇 층인가'의 문제는 예산에 맞춰 타협하는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비즈니스 모델과 컨셉이 맨 처음 요구하는 '전략적 선택' 그 자체여야 합니다. 1층의 문법으로 5층에서 장사할 수 없고, 지하의 문법으로 1층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은 과연 몇 층에 서야 할까요?



1. 1층: 속도와 충동, 그리고 '쇼케이스'의 무대


1층은 명실상부한 '얼굴'입니다. 가장 비싼 임대료를 내는 대신, 길거리를 지나는 모든 유동인구에게 24시간 나를 노출시키는 '가장 비싼 광고판'을 얻는 셈이죠. 이 비싼 '광고비'를 감당할 수 있는 컨셉은 정해져 있습니다.


'속도'가 생명인 곳: 스타벅스, 맥도날드 같은 F&B 공룡들을 생각해보세요. 아침 출근길, 고객은 '가장 빨리' 커피를 사서 '가장 빨리' 나와야 합니다. 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는 없습니다. 1층의 '압도적인 접근성'은 높은 회전율로 직결됩니다.


'충동'을 자극하는 곳: 갓 구운 빵 냄새가 길거리를 유혹하는 베이커리, 화려한 비주얼로 발길을 멈추게 하는 도넛 가게. 이들은 1층의 열린 문을 통해 고객의 '오감'을 직접 타격합니다. 이 감각적 유혹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2층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브랜드'를 선언하는 곳: 쉐이크쉑이나 블루보틀이 한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 왜 그 비싼 강남대로 1층 한복판을 고집했을까요? 그들은 "우리가 이 정도의 A급 입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수 있는 브랜드다"라는 '선언'이 필요했습니다. 1층은 가장 강력한 브랜드 쇼케이스입니다.


당신의 컨셉이 이 셋 중 하나가 아니라면, 1층은 그저 매달 당신의 이익을 태워버리는 '비싼 난로'일 뿐입니다.



2. 2~3층: 가치와 '발견의 즐거움'을 파는 곳


1층의 임대료가 부담스럽지만, '맛'이나 '분위기'에 확실한 자신감이 있는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2, 3층을 봅니다. 이곳은 고객이 '약간의 수고(계단 오르기)'를 감수할 의향이 있는 '합리적 목적지'입니다.


2층 매장의 성공은 단 하나의 질문에 달려있습니다.


"1층에서 아낀 임대료 500만 원을, 고객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2층은 그저 '장사가 안돼서 밀려난 1.5류' 가게가 될 뿐입니다.


'더 좋은 가치'로 돌려주세요: 아낀 임대료로 더 좋은 식재료를 쓰세요. "1층의 평범한 파스타보다 2천 원 비싸지만, 1++ 한우와 유기농 채소를 쓴다." 이것이 고객이 기꺼이 계단을 오르는 '이성적인 이유'가 됩니다.


'더 나은 공간'으로 돌려주세요: 1층 15평과 같은 값으로 2층 30평을 얻었다면, 테이블 간격을 넓혀 '쾌적함'을 선물하세요. 1층의 소음과 번잡함에 지친 고객들은 '여유로운 대화'라는 가치를 위해 2층으로 올라옵니다.


홍대나 성수동의 '숨겨진 맛집'들이 왜 2층에 많은지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물리적인 1층 간판 대신,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리뷰라는 '디지털 1층 간판'을 통해 고객을 끌어올립니다.



3. 고층부 (4층 이상): 완벽한 '경험'을 위한 목적지


4층 이상, '고층부'는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이 0%인 공간입니다. 이곳은 100% '의도된 방문'만 일어나는 완벽한 '목적지'입니다.


고층부의 컨셉은 '압도적인 경험' 혹은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 둘 중 하나여야 합니다.


'뷰(View)'를 파는 곳: 롯데월드타워 81층의 레스토랑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의 메뉴판 가격에는 서울 시내를 발아래 두는 '전망 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층에서는 결코 제공할 수 없는 '하늘'을 파는 것이죠. 루프탑 바(Rooftop Bar) 역시 '높이' 자체가 컨셉의 핵심입니다.


'이름(Chef)'을 파는 곳: 도쿄 긴자의 수많은 미슐랭 스시 장인들은 왜 허름한 빌딩 7, 8층에 숨어있을까요? 고객은 건물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셰프의 이름' 하나를 보고 옵니다. 청담동의 프라이빗한 오마카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가시성'을 완벽히 포기하는 대신, '희소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합니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라는 배타성이 곧 브랜드의 가치가 됩니다.



4. 지하 (B1): '몰입'을 위한 아늑한 세계


지하는 '어둡고 칙칙하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공간 마케팅에서 지하는 '단점'이 아니라 '극단적인 장점'을 가진 공간입니다. 지하의 본질은 '완벽한 통제'와 '몰입'입니다.


'빛'을 통제합니다: 지하는 '어둠'이 단점이 아니라 '조명'이 무기가 되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외부 빛이 완벽히 차단되기에, 한낮에도 완벽하게 로맨틱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나 와인 바가 지하를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소리'를 통제합니다: 1층의 소음에서 완벽히 분리됩니다. 동시에, 라이브 재즈 클럽이나 시끄럽게 떠들며 고기를 굽는 가게처럼 '소음'을 발생시키는 업종에게도 지하는 축복입니다. 민원 걱정 없이 '몰입'과 '자유'를 즐길 수 있죠.


'규모'를 통제합니다: 빕스(VIPS)나 애슐리 같은 대형 뷔페가 지하에 자리 잡는 이유입니다. 1층에서는 불가능한 '넓은 면적'을 비교적 저렴하게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컨셉은 몇 층을 '요구'하나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1층이 아니면 안 될까요?"


그 대답은 당신의 지갑이 아니라, 당신의 '컨셉'이 가지고 있습니다.


'속도'와 '충동'을 팔려거든 1층을 사수해야 합니다.


'합리적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면 2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압도적 경험(뷰, 전문성)'을 팔려거든 고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완벽한 몰입(분위기)'을 설계할 것이라면 기꺼이 지하로 숨어야 합니다.


더 이상 예산에 맞춰 층을 '타협'하지 마세요.


당신의 컨셉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전략적인 층'을 '선택'하세요.


1층의 비싼 햇빛이 당신의 컨셉에 필수적인가요?


아니라면, 그 햇빛 값 대신 당신의 '컨셉'에 더 투자하세요. 그것이 현명한 경영자의 선택입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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