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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가게 앞을 '스크롤' 하듯 지나칠까

0.5초 만에 마음을 뺏는 '숏폼 공간'의 비밀

by 잇쭌


출근길 지하철, 저는 가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봅니다. 고개를 든 사람을 찾는 것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손안의 작은 화면, 15초짜리 숏폼 비디오의 세계에 빠져있습니다.


영상이 지루할 틈도 없이, 1초 만에 '재미없음'으로 판정받고 다음 자극을 향해 스크롤됩니다.


컨설턴트라는 직업병일까요. 저는 이 무심한 '스크롤링'이 비단 스크린 속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습니다. 수많은 가게의 간판과 쇼윈도를 훑는 그들의 눈빛은, 숏폼 피드를 넘기는 손가락처럼 빠르고 냉정합니다.


'여긴 별로.'


'여긴 나중에.'


'여긴...' (이미 시선은 다음 가게로)


우리의 가게가, 우리의 정성 들인 공간이, 고객의 눈앞에서 속절없이 '스크롤' 당하고 있습니다.


이 참을성 없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의 무관심을 탓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이 새로운 '본능'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그들의 뇌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을 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이성'을 설득하는 일이 아닙니다. 0.5초 안에 '본능'을 사로잡는 일입니다.


우리의 공간을 한 편의 '숏폼 비디오'처럼 재설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첫 0.5초: '이유'가 아닌 '감각'으로 유혹하라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게으르고, 특히 피곤할 땐 더더욱 그렇습니다.


논리적으로 '이것이 왜 좋은지' 따지는 '이성의 뇌(전전두엽 피질)'는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반면, "오! 좋은데?" 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본능의 뇌(변연계)'는 빠르고 강력합니다.


숏폼은 이 본능의 뇌에 즉각적인 자극을 쏘아붙입니다.


우리 공간도 그래야 합니다.


"저희는 유기농 재료만 씁니다"라는 이성적인 문구는, 문을 열고 들어와 메뉴판을 정독할 '이성적인' 고객에게나 유효합니다. 일단은, 문을 열고 들어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능을 자극해서 말이죠.


스타벅스가 '리저브 로스터리'라는 거대한 공장을 만든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그곳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닙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거대한 로스팅 기계가 내뿜는 압도적인 스케일(시각), 매장 전체를 감싼 짙은 커피 향(후각), 원두가 관을 타고 이동하는 기계음(청각).


이 거대한 '감각의 소용돌이'는 고객의 본능을 0.5초 만에 압도합니다. 뇌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 정말 대단한 곳이야"라고 먼저 반응해버립니다. '커피값이 비싸다'는 이성적인 불평은 그 감각적 쾌감 뒤로 밀려납니다.


거대 자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골목을 걷다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1등급 한우 인증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고소한 빵 냄새(후각), '치이익-'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청각), 노릇하게 구워지는 곱창의 '비주얼(시각)'.


이 모든 것이 자본 0원으로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0.5초 숏폼 전략'입니다. 고객의 이성이 "오늘 저녁은 가볍게 먹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비밀입니다.


슬롯머신의 법칙: 예측 불가능한 '설렘'을 설계하라


숏폼을 멈출 수 없는 더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영상이 무엇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영상(보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이것이 바로 슬롯머신과 도박이 작동하는 '변동 강화 계획'입니다. 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훨씬 더 강력하게 중독됩니다.


10번 찍으면 커피 한 잔을 '반드시' 주는 쿠폰.


물론 고맙지만, 설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공간이 고객에게 '설렘'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미국 서부의 '인앤아웃 버거(In-N-Out)'는 이 전략의 고수입니다.


그들의 힘은 메뉴판에 없는 '비밀 메뉴(Secret Menu)'에서 나옵니다. '애니멀 스타일', '프로틴 스타일' 같은 이 암호 같은 메뉴는, 아는 사람만 주문할 수 있습니다.


이 메뉴를 주문하는 순간, 고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비밀을 아는 내부자'가 됩니다. "나는 이 집단의 비밀을 안다"는 특별한 소속감, 그것이 바로 슬롯머신이 '잭팟'을 터뜨리는 순간의 쾌감입니다.


서울 을지로의 어느 이자카야는 밤 9시가 되면 주방에서 종을 울립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외칩니다. "오늘 가장 크게 웃어주신 3번 테이블! 저희가 비밀 안주 하나 서비스합니다!"


서비스를 받은 3번 테이블은 물론, 받지 못한 모든 테이블의 뇌에서도 도파민이 분출됩니다.


"혹시 다음엔 우리?"


이 예측 불가능한 '즐거운 변수'가 매장 전체의 공기를 바꿉니다. 고객들은 이 '기대감'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재방문합니다. 10번 찍는 도장 쿠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중독', 아니 '설렘'의 설계입니다.


경험의 공유: 고객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무대


숏폼 콘텐츠는 단순히 '소비'되지 않습니다. 챌린지와 밈(Meme)을 통해 '공유'되고 '재생산'됩니다.


현대의 고객은 '음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SNS에 올릴 '경험'을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레스토랑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주인공'이 되는 멋진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솔트 배(Salt Bae)'라는 요리사를 기억하시나요?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소금을 뿌리는 그의 레스토랑이 왜 그토록 성공했을까요. 맛 하나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의 모든 동작은 '촬영'과 '공유'를 위해 완벽하게 설계되었습니다.


고객들은 스테이크가 아니라, 그 우스꽝스러운 '순간'을 촬영하고 공유할 '권리'를 사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했습니다. 내 SNS에 올릴 '화젯거리'를 산 것이죠.


국내의 디저트 카페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비주얼 쇼크' 메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빙수,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크림, 폭포처럼 쏟아지는 치즈.


이 메뉴들은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찍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고객은 이 극적인 비주얼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주인공이 됩니다. 이 순간의 감정적 보상은 매장에 대한 강력한 긍정적 기억을 만듭니다.


기술이 아닌, '따뜻한 환대'를 위하여


우리는 '중독', '설계', '전략' 같은 차가운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결국, 지독하게 '인간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곤하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의 차가운 스크린이 아닌, 현실의 따뜻한 공간에서 즉각적인 '즐거움'과 '위로'를 선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매장의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빵 냄새가 코를 감싸고 (즉각적 보상),


사장님의 유쾌한 농담에 웃음이 터지고 (감정 공명),


혹시나 오늘은 비밀 메뉴를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는 (변동 강화) 그런 공간.


우리의 공간은 더 이상 음식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설렘을 선사하며,


즐거운 추억을 '연출'해주는 한 편의 따뜻한 영화 세트장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당신의 공간을 고객의 눈으로 바라봐 주세요.


0.5초.


당신의 공간은, 고객의 발길을 붙잡을 그 '첫 번째 설렘'을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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