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게만 보지 마세요. 건물의 '수직 상권'이 진짜입니다."
새로운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는 흔히 '내 가게' 안의 네모난 공간에만 몰두합니다.
"어떤 메뉴를 팔까?"
"인테리어는 어떤 톤으로 할까?"
"키친 동선은 어떻게 짜야 효율적일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성공을 위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도 우리가 자주 놓치는, 어쩌면 더 결정적인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웃이란, 옆집 사장님과의 '관계'가 아닙니다. 내 가게가 입점한 건물, 그 위아래 층에 '어떤 업종'이 들어와 있느냐는 '물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상가 건물을 '고독한 가게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하나의 상가 건물은 그 자체로 촘촘하게 연결된 '하나의 수직 생태계'입니다.
당신의 가게 위, 아래, 옆에 포진한 '이웃'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의 매출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이자, 당신이 미처 몰랐던 '자원'입니다.
성공하는 경영자는 자신의 가게만 보지 않습니다. 건물 전체를 읽고, 그 안에서 흐르는 '고객의 동선'을 읽어냅니다. 오늘은 왜 윗집 '치과'나 8층 '학원'이, 당신의 '시그니처 메뉴'보다 중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떤 가게들은 스스로 고객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건물 내의 다른 '자석(Anchor Tenant)' 업종이 끌어모은 고객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며 번성합니다.
1) '메디컬 타워'의 공생 관계
신도시 상가나 오피스 밀집 지역에 가면, 한 건물의 3층부터 8층까지 치과, 내과, 피부과, 안과, 한의원이 빽빽하게 들어찬 '메디컬 타워'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 이곳 1층이나 2층에 식당을 연다고 상상해볼까요?
이 건물을 방문하는 고객은 누구일까요? 바로 '환자'와 '보호자'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명확합니다.
첫째, 진료나 시술을 위한 '대기 시간'이 깁니다.
둘째, '특정한 니즈'를 가집니다. (예: 내시경 후 공복, 치과 치료 후 부드러운 음식)
셋째, 아프거나 피곤하기에 '건물 밖으로 나가기'를 귀찮아합니다.
이때, 이 건물 1층의 '카페'는 어떤 의미일까요? 긴 대기 시간을 보내는 보호자들과 진료 후 잠시 쉬어가는 환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휴식처는 없습니다.
2층의 '죽 전문점'이나 '샤브샤브 전문점'은 어떨까요? 위내시경을 마친 환자, 혹은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환자에게 이 가게는 '우연히 발견한 식당'이 아니라, '지금 당장 꼭 필요한 식당'이 됩니다.
이 카페와 죽집의 매출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불특정 유동인구가 아니라 5층 내과와 7층 치과가 매일같이 '생산'해주는 '확보된 고객'으로부터 나옵니다. 병원들은 이 건물의 '고객 자석'이며, 식당은 그 자력(磁力)에 현명하게 붙어있는 파트너인 셈입니다.
2) '오피스/학원 빌딩'의 시간표
이번엔 여의도나 판교의 오피스 빌딩, 혹은 대치동의 학원가를 떠올려보세요.
이 건물들의 고층부는 수백, 수천 명의 직장인과 학생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고객 저수지'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특정 시간이 되면 일제히 쏟아져 나옵니다.
오전 8시~9시: 1층 카페는 '모닝커피'를 손에 쥐려는 직장인들로 전쟁을 치릅니다.
오후 12시~1시: 지하 1층 구내식당, 1~2층의 '백반집', '김치찌개집'은 '속도'와 '가성비'로 무장하고 이 '점심 전쟁'에 뛰어듭니다.
오후 6시 이후: 1층의 '삼겹살집'이나 2층의 '호프집'은 8층 'OO 개발팀'의 '저녁 회식' 수요를 기다립니다.
대치동 학원가 (밤 10시):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1층 '분식집'과 '패스트푸드점'은 가장 바쁜 시간을 맞이합니다.
이 식당들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윗집 'OO 생명' 직원들, 8층 'OO 학원' 학생들이라는 '특정 다수'를 상대합니다. 이들의 성공은 윗집 '자석'의 스케줄에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이웃이 '자석'이 아니라 '독'이 되는 최악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건물 전체의 MD 구성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이곳에 잘못 입점하는 것은 나의 소중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1) '소음'과 '진동'의 충돌
가슴 아픈 상상을 해봅시다. 당신이 수억 원을 들여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분위기의 '하이엔드 오마카세'나 '파인 다이닝'을 3층에 열었습니다. 고객은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고요한 식사 경험'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4층에 '피트니스 센터'가 입점해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천장에서 "쿵! 쿵!" 하는 역기 떨어지는 소리와 러닝머신 진동이 울려옵니다. 혹은, 옆집이 '실용음악학원'이라 드럼 비트가 벽을 뚫고 들어옵니다.
그 순간, 당신이 오늘 아침 공수한 최고급 성게알과 트러플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고객의 '경험'은 산산조각 났고, 불쾌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선 고객의 재방문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웃 업종의 '소음'이 당신의 '프리미엄' 컨셉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2) '냄새'와 '이미지'의 충돌
이번엔 당신이 '순백의 아름다움'을 파는 '웨딩드레스 샵'이나, '청결'이 생명인 '피부과 클리닉'을 2층에 열었습니다.
그런데 1층에 환기 시설이 엉망인 '돼지국밥집'이나 '감자탕집'이 있습니다. 고객이 우아한 기분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계단참에서부터 짙은 육수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 냄새는 당신의 가게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고객은 '청결함'과 '아름다움'을 기대했으나, '지저분함'과 '불쾌함'을 먼저 연상하게 됩니다. 이는 당신 비즈니스의 '본질 가치'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건물 전체가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강력한 '목적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쿄 신주쿠나 긴자에는 '라멘 빌딩', '야키니쿠 빌딩'처럼, 지하부터 꼭대기 층까지 온통 한 가지 메뉴의 식당들로만 채워진 건물들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건 '과당 경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전략은 다릅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손님'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녁은 라멘을 먹겠다"고 결심한 '목적 고객'을 아예 이 건물로 '흡수'해버립니다. 고객은 'A 가게'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라멘 빌딩'에 와서 그날의 기분 따라 6층의 미소라멘을 먹을지, 3층의 돈코츠라멘을 먹을지 '선택'합니다.
이때 이웃 가게들은 '경쟁자'인 동시에, "이 건물은 라멘의 성지"라는 공동의 브랜드를 만드는 '동료(Coopetitor)'가 됩니다.
레스토랑 경영자, 그리고 예비 창업자 여러분.
임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당신의 가게 도면만 보지 마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어떤 '이웃'들이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고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지 꼭 확인해보세요.
내 가게 윗집은 '자석'인가요, '독'인가요?
그 '자석'이 끌어오는 고객과 나의 '컨셉'은 조화를 이루나요?
그들의 '영업시간'과 나의 '피크타임'은 시너지가 있나요?
우리는 그저 '공간'에 월세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건물이 가진 '고객 동선'과 '이웃의 집객력'에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식당은 홀로 빛나지 않습니다. 현명한 사장님은 '이웃의 빛'을 영리하게 이용합니다. 어쩌면 당신의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파트너는 주방의 셰프가 아니라, 5층의 치과 원장님일지도 모릅니다.
골목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