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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샐러드 가게가 마라탕 가게에 지는 이유

'이성'이 아닌 '본능'에게 말을 거는 가게들의 비밀

by 잇쭌

금요일 저녁 8시.


고된 일주일을 마친 당신의 머릿속에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한쪽에서는 '이성적인 나'가 속삭입니다.


"이번 주 정말 고생했어. 그래도 건강 챙겨야지. 오늘은 가볍게 샐러드에 닭가슴살 어때? 내일 아침이 가뿐할 거야."


다른 한쪽에서는 '본능적인 나'가 외칩니다.


"지금 장난해? 이 스트레스를 안고 잠이 오겠어? 당장 혀가 얼얼한 마라탕에 꿔바로우, 아니면 기름 '좔좔' 흐르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자, 우리 솔직해져 볼까요.


이 싸움의 승자는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열에 아홉, '본능적인 나'의 손을 잡고 맙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어제의 나를 원망하며 '이성적인' 후회를 하죠.


이게 정말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우리가 그저 게으르고 나약한 존재라서 그런 걸까요?


저는 외식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사람과 공간을 관찰하며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니"라고요.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의 '설계'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설계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멋진 인테리어의 샐러드 가게도 결국 문밖에서 서성이는 고객의 발길을 잡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는 두 명의 '동업자'가 산다


우리의 뇌는 하나의 팀이 아닙니다. 차라리 아슬아슬하게 동업 중인 두 명의 '대표'에 가깝습니다.


한 명은 '미래를 계획하는 CEO(전전두엽 피질)'입니다.


아주 논리적이고 깐깐하죠. 장기 계획을 세우고, "내일의 건강", "여름휴가", "체지방률" 같은 고상한 목표를 추구합니다. "참아라", "절제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완벽주의자'입니다.


다른 한 명은 '현재를 살아가는 생존자(변연계)'입니다.


충동적이고 원시적이죠. 오직 '지금 당장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배고프다!", "스트레스 받는다!", "지금 당장 쾌락을 원한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이 '생존자'에게 '내일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 없습니다.


평소에는 '미래의 CEO'가 그럭저럭 회사를 경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피곤할 때,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혹은 술이라도 한잔 들어갔을 때는 어떨까요?


'미래의 CEO'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아, 모르겠다. 퇴근!"을 외치며 사무실 불을 꺼버립니다. 그 순간, '현재의 생존자'가 건물의 모든 전력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하게 '보상(도파민)'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맵니다.


자, 이제 금요일 밤의 우리가 왜 샐러드가 아닌 마라탕을 선택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나요? 의지가 약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미래의 CEO'가 지쳐서 퇴근했을 뿐입니다.


'본능의 메뉴'는 어떻게 우리를 유혹하는가


외식 시장에서 '대박'이 나는 아이템들은 한결같이 이 '현재의 생존자'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합니다.


맥도날드는 단순히 햄버거를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뇌가 '행복'이라고 기억하는 그 조합, 즉 '블리스 포인트(Bliss Point)'를 과학적으로 연구합니다. 인간의 뇌가 가장 강력한 쾌감을 느끼는 '지방, 당, 염분'의 완벽한 조합 비율 말입니다.


짭짤한 감자튀김(염분+지방)과 달콤한 콜라(당)가 만나는 순간, '미래의 CEO'가 "정크푸드야!"라고 외쳐봐야, "생존에 필수적인 고열량이다!"라고 외치는 '현재의 생존자'의 목소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엽기 떡볶이'는 어떻고요. 우리는 왜 돈을 내고 '고통'을 사 먹을까요?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니라 통증(痛覺)입니다. 혀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거죠.


여기서 뇌의 놀라운 마법이 시작됩니다. 뇌가 이 통증을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엔도르핀'이라는 자연 진통제를 분비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격렬한 고통 끝에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즉,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심리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매운맛'이라는 '물리적 고통'을 이용하고, 그 대가로 '짜릿한 쾌감'이라는 즉각적인 보상을 얻는 겁니다. 참으로 현명한, 그러나 몸에는 조금 미안한 자가 치유인 셈이죠.


'이성의 메뉴'가 실패하는 고귀한 이유


그렇다면 '건강한 샐러드 가게'는 왜 그토록 고전할까요?


그들은 한결같이 '미래의 CEO'에게만 말을 겁니다. "우리는 신선합니다", "유기농입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모두 옳고 고결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들은 지친 고객에게 '즐거움'이 아닌 '과제'를 부여합니다.


샐러드를 먹는 행위는 마치 '해야 할 숙제'나 '업무의 연장선'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마라탕을 먹는 것은 '일탈'이나 '보상'처럼 느껴지죠.


피곤에 지친 고객이 '미래의 CEO'가 퇴근한 저녁 8시에, 굳이 '숙제'를 하러 그 가게에 들어갈 이유가 있을까요? 샐러드 가게의 재방문율이 낮은 이유는 맛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갈망(Craving)'이 아닌 '필요(Need)'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친 하루의 끝에선 '필요'가 '갈망'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궁극의 승자: '이성'의 탈을 쓴 '본능'


그럼 해답은 명확합니다. 외식업은 '본능'을 거슬러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본능'에만 매달려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파는 것이 능사일까요? 그것은 고객의 '죄책감'을 관리하지 못해 결국 외면받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승자는 이 둘을 교묘하게 결합합니다.


'미래의 CEO'를 안심시키고, '현재의 생존자'를 유혹하는 것.


'쉐이크쉑(Shake Shack)'은 맥도날드와 무엇이 다를까요?


본질은 고지방, 고염분, 고당분입니다. '현재의 생존자'가 환호하는 조합이죠. 하지만 그들은 '미래의 CEO'를 위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합니다. "항생제를 쓰지 않은 앵거스 비프", "NON-GMO 감자". 즉, "나는 싸구려 정크푸드를 먹는 게 아니야. '가치 있는' 프리미엄 버거를 '경험'하는 중이야"라는 이성적 만족감을 줍니다.

요즘 유행하는 '포케(Poké)'는 어떻습니까?


포케는 사실상 '샐러드'입니다. '미래의 CEO'가 보기에 아주 만족스럽죠. 현미밥, 신선한 채소, 건강한 단백질. 완벽합니다.


하지만 포케의 진짜 매력은 그 위에 뿌려지는 '소스'에 있습니다. '스리라차 마요(매운맛+지방)', '짭짤한 소스(염분)', '아보카도(지방)', '크리스피 어니언(튀김)'. 이 모든 것은 '현재의 생존자'를 위한 장치입니다.


고객은 '건강한 샐러드(이성)'를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극적인 소스 맛(본능)'에 행복해합니다.

'미래의 CEO'와 '현재의 생존자'가 한 그릇 안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위로'를 파는 사람들입니다


컨설턴트로서 저는 수많은 사장님을 만납니다.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었는데 왜 손님이 없을까요?"라고 한탄하는 분들에게 저는 이 뇌 이야기를 해 드립니다.


우리가 파는 것은 단순히 '음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정'을 팝니다.


고객은 배가 고파서만 우리 가게에 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위로받기 위해, 혹은 누군가와 행복을 나누기 위해 옵니다.


그들의 지친 '미래의 CEO'를 쉬게 해주고, 그동안 억눌렸던 '현재의 생존자'를 따뜻하게 만족시켜주는 것. 그것이 외식업의 본질이 아닐까요.


고결한 '숙제' 같은 샐러드를 내밀며 고객을 가르치려 하지 마세요.


그들의 본능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맛있는 '위로'를 건네세요.

오늘 당신의 가게는,


고객에게 '숙제'를 내주고 있나요,


아니면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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