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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맛집'은 메뉴가 늘어나는 순간 무너지는가

본질을 지키며 돈을 버는 '메뉴의 기술'에 대하여

by 잇쭌

100% 순메밀만 고집하는 막국수 전문점을 갓 오픈한 사장님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메뉴판은 지극히 단출합니다. '물 막국수 10,000원', '비빔 막국수 10,000원'.


손님들은 "아, 이 집은 '찐'이네"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점심시간,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와 막국수 두 그릇을 싹 비우고 나갑니다. "아, 잘 먹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20,000원을 결제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만족스러운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장님의 마음 한구석에는, '숫자'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객단가 10,000원. 여기서 원가 35% 빼고, 임대료 내고, 인건비 주고... 나에게 남는 건 도대체 얼마일까?'

이 불안, 이 '생존'의 공포. 저는 '전문가'의 길을 걷는 모든 사장님이 마주하는 이 실존적인 딜레마를 너무나 잘 압니다.



1. 불안이 누르게 되는 '플러스 버튼'의 유혹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고민합니다. 바로 '메뉴 추가'라는 '플러스 버튼'을 누르는 것이죠.


"아이들을 데려오는 손님을 위해 '돈가스'를 추가해 볼까?" "비 오는 날을 위해 '해물파전'도 괜찮겠지?" "겨울 장사를 위해 '어묵탕'이나 '만두전골'도..."


얼마나 합리적인 고민처럼 들리나요. 더 많은 손님의 니즈를 충족시켜 매출을 올리겠다는데, 누가 여기에 돌을 던지겠습니까.


하지만 바로 이 순간,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 '오컴의 윌리엄'이 환생한다면, 사장님의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사장님, '필요 없는 것들'을 쓸데없이 늘리지 마세요."


이것이 바로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 불리는, 지성의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원칙입니다. 쓸데없는 복잡성을 모두 베어내고, 가장 '단순한' 핵심만 남기라는 것이죠.


사장님이 '돈가스'와 '해물파전'을 메뉴판에 늘리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첫째, '막국수 전문점'이라는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 그 '정체성'이 흐려집니다. 고객은 "이 집, 막국수에 자신이 없나? 그냥 이것저것 다 파는 분식집이네"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신뢰'에 금이 가는 겁니다.


둘째, 주방은 지옥이 됩니다. 막국수 면 삶는 동선과 돈가스 튀기는 동선이 꼬이고, 파전용 해물 재고와 막국수용 육수 재고가 뒤엉킵니다. '운영의 복잡성'은 곧 '비용의 증가'와 '맛의 저하'라는 재앙으로 돌아옵니다.



2. 면도날의 가르침: '손님'이 아닌 '파트너'를 찾아라



그렇다면 오컴의 면도날은 그저 "아무것도 추가하지 말고 막국수만 팔다가 굶어 죽으라"는 잔인한 말일까요? 천만에요.


오컴의 면도날은 '추가'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추가'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이 딜레마의 가장 '단순한' 해법은 이것입니다.


"사이드 메뉴는 메인 메뉴를 '방해'하는 '손님(Guest)'이 아니라, 메인 메뉴를 '완성'시키는 '파트너(Partner)'여야 한다."


이 '파트너'의 자격 요건은 아주 까다롭습니다.


메인 메뉴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할 것.


메인 메뉴와 '운영 시너지'(예: 동일한 재료, 다른 조리 동선)가 날 것.


그리고 물론, '수익성(객단가)'을 높여줄 것.


이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고수'들의 사례를 한번 볼까요?




3. '파트너십'의 고수들



#1. 돼지국밥의 지혜: 버릴 것이 없다


부산의 유명한 돼지국밥집 메뉴판을 떠올려보세요. '돼지국밥 9,000원'. 이것만 팔면 막국수집과 똑같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 옆에 무엇이 있나요? '맛보기 수육 12,000원', '수육 백반 13,000원', '모둠 순대 20,000원'.


이것이 '오컴의 면도날'이 작동한 완벽한 사례입니다. '수육'과 '순대'는 '돈가스'와 같은 '손님'이 아닙니다. 국밥을 끓이기 위해 어차피 삶아야 하는 바로 그 '돼지고기'와 '내장'으로 만드는, 본질에서 파생된 '파트너'입니다.


고객은 "국밥집에서 웬 순대?"라고 묻지 않습니다. "국밥집이니까 순대도 맛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은 강화되고, 객단가는 2배로 뜁니다.



#2. 스테이크 하우스의 영리함: 조연의 반란


미국의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면 재미있는 경험을 합니다. 10만 원짜리 '립아이 스테이크'를 시키면, 정말 '스테이크 한 덩이'만 덩그러니 나옵니다.


그럼 사이드는요? '크림 스피나치(시금치)', '매시트 포테이토(감자)', '맥 앤 치즈'... 이 모든 '파트너'들을 1~2만 원씩 받고 '별도'로 판매합니다.


스테이크 하우스는 '파스타'나 '피자'를 팔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라는 '주연 배우'를 빛내줄 '명품 조연(사이드)'만을 팝니다. 그런데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10만 원짜리 스테이크의 원가율보다 1만 원짜리 감자와 시금치의 마진율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입니다.


고객은 '완벽한 스테이크 경험'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가게는 '본질'을 지키며 '수익'을 극대화합니다.




4. 우리의 막국수집을 위한 '단순한' 해법



자, 이제 이 고수들의 지혜를 들고, 우리의 막국수 가게로 돌아옵시다. 사장님의 '파트너'는 누구여야 할까요?


'돈가스'라는 복잡하고 이질적인 '존재'를 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컴의 면도날로 싹둑 잘라내세요.


그리고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파트너'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겁니다.


파트너 1: '수육' (따뜻한 단백질)


차가운 탄수화물(막국수)의 완벽한 짝꿍입니다. 미리 삶아두고 주문 시 썰거나 데워 내기만 하면 됩니다. 면 삶는 '심장부' 라인을 전혀 방해하지 않습니다. 고객은 "막국수엔 역시 수육이지"라며 정체성을 인정해 줍니다.


파트너 2: '메밀전' 또는 '메밀 만두' (본질의 확장)


가게의 핵심 식재료인 '메밀'을 활용한 확장입니다. "우리는 메밀에 이토록 진심이다"라는 '전문가'의 선언입니다. 원가율은 극도로 낮고, 조리(부치기/찌기)는 독립된 라인에서 가능합니다.




글을 마치며: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메뉴판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짜 '오컴의 면도날'은 '메뉴판'에서 마지막으로 빛나야 합니다.


고객이 '수육 (대) 30,000원'이라는 거대한 '가격' 앞에서 주문을 망설이게 두지 마세요. 그것 또한 불필요한 '장벽'입니다.


그 장벽을 면도날로 싹둑 잘라내고, 가장 단순한 해법을 제시하세요.


"맛보기 수육 15,000원" "[2인 세트] 막국수 2 + 맛보기 수육 = 33,000원"


이것이 고객의 '심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넛지(Nudge)'입니다. 고객은 '수육을 시킬까 말까' 고민하는 대신, '어떤 세트를 시킬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전문점의 딜레마는 '무엇을 더할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남길까'라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었고, '어떻게 묶을까'라는 '지혜'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늘리며 정체성을 잃어가는 '복잡함의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당신의 '본질'을 빛내줄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파트너'를 찾으세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사장님들에게 필요한, '생존'과 '존엄'에 대한 가장 현명한 조언일 것입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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