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성 비즈니스의 치명적인 함정
쨍하게 내리쬐는 8월의 태양. 그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 위로 아른거립니다. 이름난 막국수집 앞, 사람들은 기꺼이 땀을 닦아내며 30분의 기다림을 감수합니다.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치는 홀과,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주방.
이 풍경을 바라보는 예비 창업가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찹니다.
'그래, 저거다. 1년에 딱 4개월, 저렇게 폭발적으로 손님을 모으고 나머지 시간은 좀 여유롭게... 얼마나 매력적인 아이템인가.'
그 화려한 여름의 신기루는 너무나 매혹적이라,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 꿈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그 많던 손님은 어디로 갔을까요. 텅 빈 홀을 지키던 사장님은 결국, 몇 개월 뒤 쓸쓸히 폐업 신고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말하죠.
"역시 겨울을 버티기가 힘들었나 보네."
정말 그 가게는 '겨울' 때문에 망한 걸까요?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레스토랑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저는 이 비극이 '겨울'이 오기 한참 전인 '8월의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목격하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가게는 11월의 '추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닙니다. 8월의 '착각'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여름 4개월간 통장에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온 그 돈. 하루 매출 200만 원, 300만 원... 그 짜릿한 숫자를 보며 사장님은 생각합니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하지만 그 돈은 '순수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곧 닥쳐올 비수기 8개월 치의 '임대료'와 '최소 인건비', 그리고 사장 자신의 '1년 치 생계비'가 모두 포함된 '가불(假拂)'이었습니다. 1년 치 농사를 한꺼번에 수확한 것일 뿐, 그중 진짜 '내 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돈이었죠.
하지만 이 무서운 회계적 진실을, '내 가게'라는 꿈에 부푼 사장님이 애써 외면합니다. 8월의 기록적인 매출에 취해 덜컥 차를 바꾸고, 9월엔 고생한 나를 위해 근사한 휴가를 떠납니다. '내년 여름엔 더 잘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과 함께 말이죠.
그리고 11월, 어김없이 날아온 임대료 고지서 앞에서 그는 깨닫습니다. 통장이 비어있다는 것을요.
이것은 겨울의 배신이 아닙니다. 여름에 벌어들인 돈의 '진짜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 사장 자신의 '재무적 착각'이 불러온 예고된 비극입니다.
이 잔인한 '계절의 숙명'은 비단 막국수집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세상에는 이 계절성에 영리하게 맞서거나, 혹은 그 본질을 비튼 멋진 사례들이 있습니다.
1. 겨울을 '지워버린' 자들: 스피릿 핼러윈 (Spirit Halloween)
미국에는 1년 중 딱 두 달(9-10월)만 문을 여는 '스피릿 핼러윈'이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11월 1일이 되면 유령처럼 사라지죠.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그들은 우리처럼 1년 내내 비싼 임대료를 내며 버티지 않습니다. 대신 망한 백화점, 비어있는 상가 건물주에게 "딱 3개월만 쓰고 나갈게"라며 아주 싼 값에 단기 계약을 맺습니다. 10개월의 고정비(겨울) 자체를 '0'으로 만들어버린, 무섭도록 현명한 전략입니다.
2. 겨울을 '여름'으로 바꾼 자들: 콜로라도 스키 리조트
반대로 콜로라도의 스키 리조트들은 겨울 4개월이 성수기입니다. 그럼 나머지 8개월의 '여름'을 손가락만 빨며 기다릴까요?
천만에요. 그들은 눈 녹은 슬로프를 '산악자전거(MTB) 다운힐 코스'로 바꾸고, 리프트는 자전거를 실어 나르는 운송수단이 됩니다. 텅 빈 광장에선 '재즈 페스티벌'을 열죠. '겨울 스포츠 성지'라는 본질을 '사계절 마운틴 리조트'로 확장해버린 겁니다.
자, 이제 다시 우리, 예비 창업가인 '당신'의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지금 책상 위에 놓인 당신의 '창업 견적서'를 한번 들여다볼까요. 보증금, 권리금, 인테리어, 주방 설비... 100만 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꼼꼼히 적어 내려간 그 숫자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항목 중에 혹시 이 항목이 있나요?
"첫 겨울을 버텨낼, 최소 6개월 치의 고정비"
만약 이 항목이 빠져있다면, 그 견적서는 미완성입니다. 이것은 '운영 자금'이 아닙니다. 인테리어 비용처럼, 가게를 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창업 자금'의 핵심입니다. '벌어서 메꾸겠다'는 희망 사항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야 할' 생존 자금이죠.
이 돈이 없으면, 당신은 여름 내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단 한 푼도 '내 돈'이 아닌, 그저 다음 달 고정비를 막기 위한 '적금'을 붓는 은행원이 될 뿐입니다.
8월의 줄 서는 맛집은 왜 11월에 폐업을 결심하는가.
그 답은 명확해졌습니다. 겨울은 혹독한 '원인'이 아니라, 지난 1년의 경영을 평가하는 냉철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 '본질(맛)'로 고객을 감동시켰는지, '객단가 전략(수익성)'은 치밀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재무 계획(현금 흐름)'은 냉정했는지를 '겨울'이라는 이름의 심판관이 묻는 것입니다.
수천 년간 이 땅을 지켜온 농부를 떠올려 봅니다. 그는 가을 수확의 기쁨에 취해 쌀가마니를 모두 내다 팔지 않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날 '양식(고정비)'을 반드시 곳간에 빼놓고, 내년 봄에 심을 '종잣돈(R&D)'을 지켜냅니다.
외식업은 '요리'라는 감성의 영역 이전에, '경영'이라는 이성의 영역입니다.
당신의 그 찬란했던 여름이, 8개월의 긴 추위를 견뎌낼 '따뜻한 곳간'을 미리 준비했는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