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3월 첫 주 금요일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첫 번째로 집에 온 날이었는데, 집에 와서 학원을 가기도 전이었나, 학원을 갔다 와서였나, 그 시점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눈물샘이 폭발했다. 어떤 이유였는지 딱 짚기는 어려웠다. 단지 너무 힘들어서였다. 대성통곡을 했었다. 내신 따기는 너무나 힘들고, 공부를 잘하는 애들도 너무 많은데, 정시는 하루 만에 결정 나니까 나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높은 나의 목표에 달성할 수 있을지 두려웠고, 나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어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냥 막막했다. 한 주를 버티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내가 앞으로 고1, 고2, 고3을 어떻게 살아갈지 그려지지 않았고 상상조차 힘들었다. 내가 그냥 근처 학교를 갔으면 어땠을까, 전학을 가면 어떨까.
이 학교에 진학하기로 했을 때, 아빠가 했던 말이 있다. 3년 그냥 버티기만 해도 잘한 거라고, 그냥 3년간 버티기만 하라고. 그러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그랬다. 3년은커녕 일주일을 버티기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찼다. 눈물이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거실에 앉아 울부짖으며 부모님께 얘기했다. 정신없이 두서없이 말을 한 것 같은데 엄마도 안쓰러웠는지 해결책을 내놓았다. 기숙사에서 나오고 싶으면 나오라고, 통학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기숙사가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기숙사가 처음이니까 그게 울음의 큰 요인이기도 했다.
한참을 울고 진정을 하고 난 뒤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이 다가왔다. 주중은 길—었고, 주말은 짧았다. 기숙사에 올라가 짐을 풀고 내려와 일요일 자습이 시작되었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울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온 힘껏 참았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양 옆에는 선배들이 있었고,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울먹거리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꾹 참고 되지도 않은 공부를 했었다.
신학기가 시작한 지 며칠 뒤에 내 책상 위에 쪽지와 함께 초코송이가 놓여 있었다. 옆자리 선배가 적응 잘하라는 응원이 담긴 쪽지를 주셨다. 어린 후배를 챙겨주는 선배의 마음에 감동을 받고 나도 간식을 드렸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따듯한 선후배 관계라니. 의지할 만한 선배가 생긴 것 같아 든든했다. 기숙사에서는 멘토멘티 활동을 했는데, 선배와 후배가 짝이 되어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내 열람실 자리 바로 오른쪽 선배와 짝이 되었는데, 국어를 잘 알려주셔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왼쪽 옆자리 선배는 나와 같은 동아리였다. 동아리 신청하는 날, 많고 많은 동아리 홍보를 다 듣고 나는 그 선배가 있는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과학동아리가 되게 많아서 다른 인기 있는 동아리로 몰렸고, 우리 동아리는 희망한 사람이 많이 없어서 선배들로부터 많은 챙김을 받았다. 나도 후배가 생기면 따듯한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숙사에서는 휴대폰을 입소와 동시에 제출하기에 방송실에 있는 전화만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바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1학년 때는 전화를 한 적이 없다. 다른 애들은 전화하고 오겠다며 쉬는 시간에 내려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전화를 했지만 나는 방에 있었다. 전화를 처음 한 것은 완벽히 적응을 한 2학년 때였다. 그때부터 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를 이용했다. 학교에서 카톡으로 연락을 하니까 전화를 할 일은 딱히 없었기도 했다.
1학년 3월에는 가족들의 카톡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나~~ 저녁 먹었나? 밥 잘 챙겨 먹어~~”
“아침도 먹었어?^^ 잘 지내고 내일 봐~~”
“지나~~ 오늘 너무 춥제? 잘 있나?^^”
“우리 공주 보고 싶어~~”
별 내용 없이 늘 평소에 하던 말에 자주 주고받던 카톡상 분위기였는데 나의 눈물 버튼이었다. 그래서 카톡을 애들 있을 때 못 보고 나 혼자 나중에 보고 그랬다.
나는 생일이 3월 초인데, 학기 초라 애들과도 친해지기 전이라 어색한 사이라 생일 축하를 잘 못 받는 편이었다. 나의 생일 전날 밤이었다. 누워서 12시 점호를 듣고, 내가 오늘 생일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와 옆 침대를 쓰던 친구가 자기도 오늘이라고 하길래 너무 놀랐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신기했다. 그 뒤로 우리는 생일이 되면 서로 매년 작은 선물과 함께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다. 편의점에서 작은 롤케이크를 사 와 친구들과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한입 먹기도 했다. 중학생 때도 나와 친한 친구 중에서 생일이 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학교가 바뀌어도 나와 생일이 같은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처음으로 기숙사에서 맞이하는 생일이라 기분이 이상했는데, 그런 기분도 잠시, 나와 생일이 같은 친구 덕분에 신기함과 행복함을 느끼며 따듯하게 잠에 들었다. 기숙사에 있지 않았으면 이런 날들도 없었겠지. 소중한 추억 하나 만들었다.
생일날 아침이 밝았다. 분명 우리 가족 단톡방에 나의 생일을 축하하러 톡이 올 것인데, 그 메시지를 받으면 바로 울 것 같았다. 가족과 떨어져 맞이하는 첫 생일인 만큼 마음이 쓰일 것 같았다.
“우리 예삐 밥 먹었어? 엄마 이제 퇴근했어~~”
“생일인데 못 봐서 아쉽네”
나는 아쉽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상황이 슬펐다. 생일은 늦게 축하하는 게 아니라 당일에 못하면 미리 하는 거라는 신념 하에 입소하기 전에 미리 팥밥에 미역국을 먹고 왔지만 더욱 엄마의 따듯한 집밥이 생각나는 저녁이었다.
감기에 걸려 있던 생일이었는데, 야자 쉬는 시간에 나에게 따듯한 썬키스트 유자맛 두 병을 나에게 건넸다. 내가 한때 밀가루를 끊었었는데, 그걸 알고 과자 대신 따듯한 음료를 준비한 것이다. 너무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간식인 뻥튀기도 받았다. 센스에 감탄했던 날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축하해 주는 생일은 처음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았다.
생일이 있는 주는 늘 첫째 주이다. 더더욱 집에 가고 싶을 법도 했다. 주변 친구들 덕분에 에너지를 많이 얻기도 했지만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오면 많이 울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도 아니고 F도 아니라서 학교에서도 묵묵히 공부만 했는데, 그게 쌓이고 쌓이다가 집에만 오면 터졌다. 가족과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서 울기도 했고, 학원 시간이 다가와 급히 눈물을 닦고 학원을 갔다.
울 것 같은 느낌이 난다. 눈물샘에도 깊이가 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눈물샘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조금 있으면 터지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학교에서 울 수는 없으니 집에서 울고 가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한바탕 울고 나면 요동치던 마음이 잔잔해지고 한결 편해진다. 1학년 때만큼 많이 울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3월에는 거의 매 주말마다 울었다. 기숙사 룸메들은 너무 잘 지내는데, 나만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게 더 힘들었고, 왜 빨리 적응을 못 할까,라는 생각에 자신이 밉기도 했다. 도저히 적응을 못 할 것 같았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이라 많이 부딪히고, 어린 마음에 눈물이 많이 났던 것 같다. 나만 학기 초에 힘든 줄 알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나 외에도 학기 초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힘들었다던 친구의 말을 듣고 격하게 공감을 해줬다. 사람마다 적응하는 속도가 다른 것이니까.(내가 이렇게 느릴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