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행복

by 지니페이지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좋으면서도 싫었다. 그렇게 싫었던 건 아니지만 벚꽃이 피는 시기는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있는 신호이기도 했기에 이번에는 후회 없이 잘 해내야지, 학년 첫 시험인데 시작을 좋게 해야지, 등 나름의 다짐을 하며 벚꽃을 맞이했다.


“벚꽃이 피었다는 건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거죠.”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이 매년 하시던 말이었다.


우리 학교는 유독 벚꽃이 예쁜 학교였다. 학교 뒷길로 조금만 걸어가면 산책로가 있었는데, 하천과 함께 벚꽃나무가 줄지어 있어서 친구들과 거닐면서 이야기하고 예쁜 풍경을 보기도 했다. 1학년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낯설기만 했는데, 이 벚꽃길은 너무 예뻤다. 각반끼리 모여 사진을 찍는 것이 문화였다. 우리는 매년 그곳으로 벚꽃 나들이를 갔고, 3학년 때는 졸업사진도 그곳에서 찍었다. 예쁘게 꾸미고 사진을 찍으며 리프레시가 되기도 했다. 단풍은 별로 안 좋아해서 단풍놀이를 가지 않는데, 벚꽃만은 정신없는 학기 초임에도 매년 보러 갔다. 근처 대학교가 벚꽃 명소였다. 엄마랑 주말에 봄나들이를 갔는데, 맛있는 음료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나들이 가는 건 나에게 아름다운 행복이었다. 둘이서 웃으며 사진도 찍고 얘기도 하고 걸으며 봄을 누비었다. 시험기간이 힘들 것을 대비하여 미리 즐겨놓고 쌓아두는 행복이랄까. 그래도 좋았다. 벚꽃으로 에너지를 충전했기에 몰아치는 시험기간에도 꿋꿋하게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소한 행복 10번과 큰 행복 1번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을 고르게 될까? 얼마나 작고 큰지에 따라 횟수가 다르게 체감되겠으니 조금 더 추상적으로 바꿔보면, 잔잔한 것 여러 번, 또는 큰 것 한 방 중에서 뭐가 더 좋을지 고민되지만 나는 사소한 것 여러 번을 선택할 것 같다. 학교에 있다 보면 1, 2학년 때는 각종 이슈도 많고 행사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기에 좋게 말하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일이 많다 보니 잡생각이 들 틈도 없었고, 하루하루, 일주일을 살아내느라 바빴다. 그러다 3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도파민이 부족했다. 친구들도 너무 익숙하고 별 일 없이 각자 수능 준비만 하다 보니 재미있는 일들이 없기도 했고, 하루하루가 잔잔한 삶의 연속이었다. 호수에서 수영하는 느낌이었다. 바람이나 물살에 의해 뒤로 갈 때도, 앞으로 갈 때도 있었다. 그런 나날들을 살아가는 와중인 나에게 사소한 행복이 크게 다가왔다. 친구들이 자신의 간식창고에서 꺼내주는 약과 하나, 신상 과자 하나, 이런 간식들이 힘이 되었고, 기분 좋았다. 갑자기 얻게 되는 초콜릿 하나가 기분 좋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간식 외에는 애정이 가득한 사람들과의 연락에 에너지를 얻기도 했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끼리 모여 떠드는 것도 재밌었고, 복도를 걸으며 다른 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너무 반가웠고, 잠이 깨기도 했다. 너무너무 피곤할 때면 쉬는 시간 10분 동안 자는 잠이 얼마나 꿀 같은지 모른다. 다음 교시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그만큼 더 잘 수 있으니 그마저도 사소한 행복이었다.


별 거 없지만 별 거 있는 것들이다. 별 거 아닌 것들이 모여 별 거 있게 되고, 하루를 또 살게 한다. 한 달이 끝나가는 날이거나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날에는 괜히 설렌다. 한 달을 돌아보고 다음 달을 계획하는 계기가 된달까. 해를 시작할 때마다 매년 사는 게 있다. 바로 달력인데, 큰 달력 말고 감성 있는 작은 종이 달력이다. 달이 바뀔 때면 새로운 달의 종이를 꺼내 갈아 끼운다. 감성 가득한 예쁜 그림이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풍경 사진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책이랑 같이 내 책상에 놓고 찍으면 감성 공간이 따로 없다. 내년에는 어떤 종이 달력을 구매할지 연말에 찾아봐야겠다. 이것도 일종의 사소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에 한 번쯤은 하늘을 올려다보려고 노력한다. 괜히 힘들었던 마음도 정화가 되는 것 같고, 여유를 되찾은 느낌이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하늘을 보면 마음도 맑아진다. 가을 하늘의 경우 구름 한 점 없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런 날이 있었다. 원래는 구름이 하나 두 개씩 뭉치로 있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풀어져 있기도 해서 구름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하늘을 봤더니 구름이 아무것도 없고 파아란 하늘이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하늘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니 나와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친구도 저절로 하늘을 보게 된다고 했다. 저녁 먹으러 가는 시간에 하늘을 보면 진짜 예뻤다. 야자시간에 쳐다보면 여름이면 보랏빛 하늘이 창문에 보이기도 하고, 겨울이면 달이 예쁘게 떠 있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달이 차오르는 과정이 아름답게 보였고, 달이 차오른다는 표현도 너무 귀여웠다.


우리 학교가 노을 맛집, 하늘 맛집이라 우리 학교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를 지나는 그쯤 저녁 하늘이 핑크빛으로 굉장히 아름답다. 기숙사를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는 너무 예쁘다며 사진도 찍고 힐링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는 못했다. 기숙사를 들어와야 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탓에 완전히 즐기지는 못했었다. 졸업하고 그 길을 노을 지는 시간대에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다만 지나가게 된다면 꼭 마음껏 온전히 걱정 없이 누려보고 힐링해보고 싶다.


여유가 없을 때는 하늘을 바라볼 틈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봤으면 좋겠다는 나의 마음이다. 시간도 길게 걸리지 않으니까. 야외에 있다면 단 1초면 충분하다. 적고 보니 시간대비 행복 효율이 높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흐린 날이면 하늘을 볼 맛이 좀 떨어지긴 한다. 축 처지는 것 같고, 기운이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맑은 날이 좋다. 날씨는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처음에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면, 이제 돌아가서 야자를 해야 하고, 내일모레 수업이 끝나야 집에 갈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우울해지고, 하늘은 예쁜데 기분이 씁쓸하고 안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즐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인지 특정할 수 없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던 것 같다.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건 어렵기도 하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 조금의 시간만 투자하면 인생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길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 친구 중에서도 여러 부류가 있는데, 금방 에너지가 빼앗겨 축 쳐져 있는 친구가 있고, 항상 마주칠 때면 예쁘게 웃으며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는 친구가 있었다. 당연히 후자가 더 좋았다. 인사를 하고 몇 마디를 나누는 순간에 나도 에너지를 받았고, 전자의 경우 보기만 해도 같이 힘든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나도 후자와 같은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밝고 잘 웃는 친구가 되면 나도 행복해질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지만 별 계기도 없이 그 친구가 너무 행복해 보이고 부러워서 따라 해보기 시작했다. 누구든 마주치면 밝게 미소 지으려고 했고, 점점 행복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웃어서 행복해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 많이 웃자. 힘들어도 웃어보자.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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