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찾아와

by 지니페이지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종합병원이라 불렸다. 그야말로 아픈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픈 곳 없냐고 물어봐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담임 선생님은 컨디션 관리 잘하라고 당부하셨다.


원래도 과호흡 초기 증상이 종종 나타났었는데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독 자주 발생했던 주가 있었다. 스트레스 안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는 한 주의 초반에는 좀 힘들지만 뒤로 갈수록 괜찮아지는 편이었고, 학기 초는 특히나 신경 쓸 것들이 많으니 많이 아팠다. 그래도 가지 않을 것 같은 3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조금 있으면 내신 시즌이라는 생각에 숨 돌릴 틈이 없지만,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흘러간다. 당장 내일은 수행평가부터 각종 과제 등을 해야 하기에 참 힘든 날들의 연속이지만 길게 보고 3년간 잘해봐야지,라고 다짐했었다. 분명 굉장히 힘들었는데 시간이 빨리 지나갈 때가 있었다. 수행평가에 각종 대회, 세특, 모의고사를 준비하고. 쉬는 시간도 잘 조정하며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꾸준히 공부해야지,라는 생각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때도 많이 아프다고 생각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가 가장 덜 아팠던 시기였다고 생각이 든다. 수능을 앞두고 준비를 하면서 굉장한 신경성으로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병이라고 할 만한 큰 증상들이 많이 있었다기보다는 작은 증상들이 군데군데 많았다. 아무리 검사를 해도 큰 병원을 가보아도 검사결과가 다 정상이었기에 원인을 알 방법이 없었다. 더 애가 타고 그랬는데, 원인은 신경성이었다. 원체 예민한 몸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님은 내가 공부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3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꾸준히 노력했었다.


내가 아팠던 건 주로 다리였다. 열람실에서 앉아서 자습을 하고 있으면 정말 못 견딜 정도로 다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아무리 주물러도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심해져 갔다. 그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건 마그네슘 영양제였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줘서 효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호흡처럼 헉헉거릴 정도로 숨이 가쁜 건 아닌데, 가슴이 답답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갑자기 이명이 삐---하고 들릴 때도 있었고, 귀가 찌릿찌릿 중이염처럼 아팠다.(병원 가서 검사를 해보면 중이염은 아니었다. 그러니 약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겨울이면 건조해서 그런지 특히나 눈이 충혈되는 일수가 많았다. 거의 매일 저녁마다 기숙사 옷장문을 열어두고 스킨케어를 하며 옷장에 부착된 거울로 나의 충혈된 눈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가끔씩 피부도 따가웠었다. 팔이나 허벅지 등 특정 부분에 통증 세포가 쏠린 느낌이랄까. 건들기만 해도 따가웠고, 스치기만 해도 아파서 따로 로션이나 진정오일을 바를 수도 없었다. 허벅지 안쪽에 그 증상이 발현되면 걸을 때마다 옷에 쓸려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증상은 치통이었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피곤하면 이가 아팠다. 말 그대로 이가 아팠는데, 나의 친구들은 아무도 이해를 못 하는 증상이었다. 충치가 있는 것처럼 아파서 혹여나 충치가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었다. 거울에 밀착하여 입을 벌리고 아츤 부위를 보면 검은색이 하나도 보이지는 않아서 치과에 가지는 않았지만 공부할 때마다 거슬리는 통증이었다. 치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었는데, 그때도 충치는 없었지만 이가 아팠었다. 역시나 이것도 신경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피곤한 날이면 학교에서 양치를 하다가 피맛이 났다. 뱉으니 실제로 잇몸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럴 때는 늘 잇몸이 부어 있어서 양치를 할 때마다 아팠다. 이마에 편두통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는데 저절로 이마를 감싸게 되었다. 피부에 발진처럼 빨갛게 올라와 간지럽기도 했고, 피부과에서 준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피곤하면 나타나는 증상이 정말이지 너무나 많아서 다 읊기도 벅차다. 신기하게도 나의 몸이 눈치가 있는지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다 발현하지는 않는다. 그건 감사한 부분이기도 한데, 한 번에 최대 3개의 증상까지 겪어봤던 것 같다. 그 대신 돌아가면서 나타나기 때문에 잊을 만하면, 요즘 여기가 안 아프다 싶으면 등장해서 나를 괴롭혔다. 한 가지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설사였다.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 배가 으슬으슬 아팠고, 설사를 했다. 다른 애들과 똑같이 급식을 먹어도 나만 유독 아팠다. 장이 약했고, 자주 체했다. 한번 체하면 회복하는데 적어도 2주는 걸렸다.


사실 말하지 않은 큰 것이 하나 남아 있다. 나는 고등학교 경시대회를 중3 때 치러 갔을 때 목발을 짚고 들어갔었다. 목발을 짚은 채로 상담도 받으러 갔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다리를 크게 다쳤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한데, 처음으로 한 클라이밍장에서 높은 곳에서 떨어졌었다. 바로 근처 대학병원으로 갔지만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의 고통은 잊을 수 없었다. 다리는 실시간으로 점점 더 붓고 있었고, 응급실에서는 환자들이 많다며 지금 바로 진료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서 3시간 4시간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아픈 것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입고 있던 레깅스를 잘라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엑스레이나 필요한 검사들을 몇 가지 했고, 수액을 맞았다. 마취를 잠깐 하고 뼈를 맞췄던 것 같은데, 너무 아파서 벌떡벌떡 일어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입원실로 갈 수 있었다. 정강이 뼈 두 개가 대각선으로 골절된 상황이었고, 자칫 잘못하면 뼈가 피부 밖으로 돌출될 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당장 나의 상황도 좋지 않았기에 침울했다. 내 생애 첫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긴장도 됐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것보다도 너무 아파서 뭐라도 해서 낫게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척추마취를 했는데, 정말 아프다고 했지만 다리가 훨씬 더 아팠기 때문에 그 아픔을 잘 느끼지 못했다. 수술이 잘 끝나고 무통주사를 달았는데, 상상 이상의 통증이 나를 찾아왔다. 너무 아파서 이 세상에서 잠시 사라지고 싶었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처부위에 살이 잘 차오르지 않기도 했고, 열이 계속 났어서 예상 입원기간보다 몇 주가 길어지고, 여름방학을 넘어서도 한참을 더 입원했다. 통깁스를 하러 휠체어에 앉아 내려갔었는데, 다리를 내리니 피가 쏠려서 너어무 아팠었다. 퇴원 후에도 자주 외래를 방문해야 했었고, 집에서도 상처부위를 소독해주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실밥을 뽑고 상처연고를 꾸준히 발라주었다. 통증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엑스레이 상으로 괜찮다고 하니 안심했다. 뼈가 붙기까지 6개월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목발을 짚고 돌아다니다가 어지러움을 경험하고 토를 하기도 했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면 보호대 자국이 다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다리가 심하게 부어 있었다. 어느 하나 쉬운 단계가 없었지만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감사했다.


1년 뒤인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는 철심제거 수술을 했다. 그때의 아픔이 조금 미화된 시점이었는데 다시 극강의 아픔을 경험했다. 그 시기에는 학교에서 성적 우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데, 나는 일본여행 멤버로 선정되었지만 이 수술로 인해 같이 가지 못하게 되어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나의 회복이 우선이었기에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다. 나 대신 한 명이 더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친구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좋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호흡이 계속 잘 되지 않고, 어지럽기도 해서 동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빈혈 진단을 받았다. 무더운 여름에 체육시간이 되어 체육관을 갔다가 걸어오는 길이면 정말 힘들게 걸어와야 했고, 체육관에서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가만히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었다. 큰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더니 철분 수치가 현저히 낮았다. 일반인 임산부보다 낮았고, 그때 이후로 철분제를 주기적으로 타서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걷는데 땅을 바라보기 힘들었고, 화장실에서도 이상하게 어지러웠다. 피곤하면 종종 어지럽고 두통이 있긴 했는데, 평소 어지러움과는 다름을 체감했다. 청소 시간에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기가 어려웠고, 고개를 돌리는 것도 어지러워 정면만 응시해야 했다. 큰 이비인후과에서 어지럼증 검사를 했더니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아 약을 몇 달 동안 한참을 먹었다. 편두통은 또 턱관절과 연관이 있는데, 하다 하다 턱관절까지 문제가 있어 근이완제를 일시적으로 진통제와 함께 먹으며 버텼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소화불량 이슈로 한의원과 내과를 내원하며 침을 맞았고,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약을 챙겨 먹는 루틴이 만들어졌다. 아침에는 유산균과 철분제와 효소, 저녁에는 질유산균과 철분제와 보약과 홍삼. 밤 11시에는 메니에르 약.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안 겪어본 신경성 증상이 없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던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졸업하면 다 낫는다고 했는데, 수능을 치고 난 지금, 그때보다는 훨씬 덜하다. 신기하게도 수능을 치고 나니 생리주기도 그렇게 바뀌지 않던 21일에서 28일 주기로 돌아왔다. 차츰차츰 몸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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