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지닌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by 지니페이지

‘꿈을 지닌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실시된 6월 모의고사의 필적 확인란 문구다. 모의고사를 계속 치고 있으면 다음 모의고사에는 필적확인란 문구가 무엇이라고 되어 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보통 시나 문학작품에서 발췌하는 문장이기에 감성이 가득하다. 매시간 이 문구를 필적확인란에 쓰면서 시험 본령을 기다린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을 놓지 못하는 성격인데, 책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빴던 때가 있었다. 정말이지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독서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첫째는 여유로운 시간, 둘째는 차분한 마음, 마지막으로 꽤 많은 집중력이다. 왜인지 모르게 책을 읽지 않고 있을 때도 있었다. 시험기간이 끝난 직후, 오래도록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쳤지만 주변이 시끄러워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유독 정신없고 길었던 한 주였는데, 서울로 대학탐방을 다녀왔고 축제도 했었는데 중간중간 수행평가와 보고서 제출이 있었으며 모의고사 준비도 병행해야 했다. 자연스레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일종의 핑계라는 것을 인정하는 바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책이라는 것, 특히 나에게 소설책은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했다.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는 사회과학책과는 달리 소설책은 또 다른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기에 나에겐 그것을 받아들이고 즐길 차분한 마음 준비가 필수였다. 안 그래도 학교에 있으면 감정소모가 많은데, 소설을 읽으며 또 감정이입을 하며 감정의 요동을 경험해야 하니까. 물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측면에서는 힐링이 될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중학교와 달라지는 점은 모의고사라는 것인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시험을 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 수능시험 시간표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릴 때, 초등학생 때 재미로 수능이 어떻게 나오나 싶어서 집에서 쳐보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내가 수능을 준비해야 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났었다. 생애 첫 모의고사는 고1 3월 모의고사이다. 아직까지 완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다행히도 어느 정도의 적응은 된 것 같았다. 학교 프로그램인 8교시 보충수업도 실시되고, 동아리도 참가했다.


우리 학교는 비평준화 고등학교로 인근에 살고 있는 학생들 말고도 타 지역에서 공부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성적순대로 기숙사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잘하는 친구들이 모인 학교인 만큼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중학교 때도 남녀 공학이긴 했지만 분반이라서 접점이 없었고, 어쩌다 도서관에서 만나 도서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면, 우리 고등학교는 남녀합반으로 5반까지 있어서 마주칠 일이 굉장히 많았다. 첫날부터 나에게 말을 걸었던 친구가 남자였으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남녀 공학이라 재밌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오랜만에 남자애들과 같이 노니 즐거웠다. 살짝 어색함이 있을 줄 알았지만 다른 중학교에서 온 친구들이 전혀 거리낌 없이 대화해서 나도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들은 중학교 때도 남녀합반이라 전혀 달라지는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일상은 피곤하지만 견딜만한 정도였다. 반에 재밌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나에게 여유로움을 가져다준 친구도 있었고, 선물처럼 웃음을 한 보따리 건네준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사소한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중학교와는 다른 재미에 한껏 기분이 좋았고 이 학교를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초반에는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나 공부 관련해서 물어보거나 할 때도 과학을 잘하는 남자애들 덕분에 많이 배우며 성장했다. 여기에 있으면 별다른 생각 없이 공부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


나에게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생활은 되게 괜찮았다. 학기 초에는 적응을 못해 많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서로 물어보고 성장하는 느낌이 좋았다. 머리 좋은 친구들도 많았지만 모두 대체로 착하고 개성이 뚜렷해서 보고 있으면 재밌었고, 얻는 것도 많았다. 그때는 정말 학교를 만족하며 다녔던 유일한 시기였다.


고2, 고3이 될수록 현실을 직시하고 나의 내신등급을 보며 내신을 더 따기 좋은 내 집 근처 학교로 갔어야 했다며 후회하고, 후회했다. 내신 따기가 굉장히 힘든 학교였다. 1.0이 없을 정도로 최상위권층에서도 일명 등급 갈라먹기가 심했다. 집 근처 고등학교를 갔으면 1점대를 받고 있었을 텐데 여기서는 2점대를 받고 있으니 분하기도 했고,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도통 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입시설명회 시즌이 오면(11월쯤) 많은 학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함께 우리 학교로 찾아왔다. 기숙사도 구경하고 우리는 기숙사를 안내해 주는데, 우리 학교를 찾아온 학생들에게 다른 고등학교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쯤이면 우리끼리도 우리가 여기 왜 왔다며, 우리 학교의 장점은 무엇이냐며 토론을 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최대한 편하게 살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1회 고사 끝나고 수행평가 치고 정신없이 힘겹게 보내니 다시 돌아오는 모의고사 시즌이다. 학교에서는 중요하다며 굉장한 압박을 한다. 열심히 준비하긴 했으니 잘 치면 좋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려 하는데, 모의고사 2주 전은 항상 나의 컨디션이 바닥을 찍었다. 각 과목별 모의고사 3개년을 분석하여 제출하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신경 쓸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의고사를 치는 날도 하루 종일 머리가 띵— 아팠고 어지러웠다. 편두통에 시달릴 때도 있었고 설사를 모의고사 친 날 밤까지 계속하기도 했다.


모의고사 날은 야자를 하지 않고 비기숙사생들은 집으로 가거나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 너무 부러운 순간들인데, 그걸 위로해 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숙사생들만 먹는 모의고사 저녁 메뉴는 주로 맛있는 것으로 구성된다. 한 번씩 맛이 덜한 메뉴가 나올 때면 실망을 하기도 하지만, 그 주 주말에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며 행복한 상상을 한다.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고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 도움이 되었던 건 책 속 문장이었다. 글이 주는 힘은 엄청나다. 특히 나 같은 사람들에겐 말이다. 에세이는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 글자들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지치고 힘들 때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털어버리고 위로받는 것도 좋지만 에세이 한 권을 조금씩 보는 것도 좋다. 나에겐 후자가 더 큰 위안이 되고 이를 통해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에 나도 그러한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었다. 또는 소설 속에 따듯한 위로가 되는 문장들을 띠지로 붙여두고 많이 봤었다. 그런 책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


밤 11시 50분쯤 심야를 하지 않는 기숙사 방 친구 두 명이랑 불 끄고 누워서 자기 전에 책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행복한 마음을 안고 잤던 날이었다. 그런 일상 속 팡팡 터지는 행복함들이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게 해 준다. 고맙고 소중했던 순간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