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컨디션

컨디션 박스 내에서 물결처럼 흘러가자.

by 지니페이지

하기 싫은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글자를 요리조리 돌려쓰면 이런 어구들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범주에 있지만 밴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검정색으로 된 얇은 선을 경계로 전혀 다른 위치에 있게 된다. 우리가 글자를 읽었을 때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또는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기 싫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일 좋은 건 아무 생각없이 알맞은 시기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데, 한번 그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면 굉장히 힘들다. 지금도 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를 너머섰지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단순하다. 하고 싶어서.


아무리 힘들고 지친 시간을 보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그 순간 만큼은 내가 그 행위로부터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하루, 일주일, 한달을 보내다보면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북받치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쉼없는 레이스 중간에 나혼자만 떡하니 멈춰선 기분이 들 수도 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머나먼 길이 두려워 다시 출발선에 설 용기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까지 내가 한 일을 돌아보면 굉장히 멋지면서도 내가 앞으로 남은 일들을 잘 수행해낼 수 있을지,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와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즐기는 것.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이 세가지가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공교롭게도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못하고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 아주 잘. 때로는 나도 보고 배우는데 쉽지 않다.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앞서 언급한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해야 할 일을 플래너에 적고 계획하는 파워 J형 인간이다. 변수가 발생하는 것을 반기지 않고, 나의 미래, 또는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단순생각자 입장에서는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생각의 줄에 칭칭 감겨버릴 지도 모르겠다. 그런 성향 탓에 성실하다,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렇지만 나는 금방 식는 사람이다. 열정이 불타올랐다가 금방 식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더 버텨보겠다고 마치 장작에 남겨진 작은 불씨마냥 있다가 모든 것이 재로 변해버려 다시 불타오를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학기 중에 나는 매일 어딘가가 아팠다. 귀가 아프고 이가 아프고 속이 안좋거나 머리가 아프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거나 등등. 한 군데라도 안 아픈 날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친구들이 종합병원이라고, 입원해서 다 검사해보라고 했고, 웃어 넘겼다. 나는 이 모든 원인이 스트레스, 즉 신경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학이 되었을 때는 조금 나아진다 싶었지만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럴 때일수록 컨디션 관리 잘해야지. 축 쳐져서 힘 없는 날이 없도록 나의 컨디션 박스 내에서 고3을 보내야지, 다짐했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