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물러선다고 해서 생각마저 비워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양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도 아니다. 물러서 있더라도 끝까지 분명히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독립성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요'
'당신의 방식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나는 그럴 수 없어요'
이런 말들이 입 안에서 밖으로 나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자기 삶의 방향을 직접 선택하겠다는 건강한 표현이다. 상대가 나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나쁜 행동이나 부당한 요청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 말로 진짜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이다.
겸손과 자존감은 공존한다. 진짜 현명한 사람은 언제 말해야 할지, 언제 물러서야 할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가 가져다주는 기쁨은 은근히 크다. 나를 다 소모하지 않는 것, 과대포장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현실 가능한 목표 안에서 조용히 하나씩 해낼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도 그런 나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허공을 향해 외치지 않아도 나를 지키며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에너지를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 가능한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그것이 나를 보호해 주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된다. 내 모든 것을 증명하려 애쓸 필요는 없고, 강해 보이기 위해 지나치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의 속도로, 소리없이 조용히 가다보면 결국 드러나게 될테니까.
조용할 수 있지만 약하지 않다.
말하지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고, 소모되지 않지만 에너지는 살아 있으며, 똑똑해 보이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믿을 수 있다면 이미 조용히 강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