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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Feb 01. 2022

플레이그룹

공동육아는 이민생활에 필수

출산 후 멜버른 로열 우먼스 병원에서는 퇴원 직전 나에게 몇 가시 사항들을 안내해 주었다. 아이 설소대 시술 관련(아시안의 경우 미리 하는 게 나중에 영어 발음에 문제가 적을 것이라고 한다), 몇 가지의 예방접종 그리고 플레이 그룹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장 독박 육아가 시작되는데 플레이 그룹을 나갈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그냥 흘려들었고 그래서 기억할 만한 별 다른 정보는 없었다.


아이가 8~9개월이 될 때까지는 정말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하지만 아이가 11개월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다. 호주는 특히 아이들이 열이 나서 병원에 간다 하더라도 의사가 특별히 해 주는 건 없다. 그저 파나돌 혹은 뉴로판 때로는 교차 복용으로 열만 떨어뜨려줄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약이 잘 듣지를 않았다. 교차 복용을 계속해주는데도 아이의 열은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 가도 별 것 없다는 걸 알았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네이버 커뮤니티 카페에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멜버른 OO에 살고 있는 11개월 아기 엄마인데요, 파나돌 뉴로판 말고 다른 건 없을까요? 아이가 열이 안 떨어져서요."


이 짧은 글을 남기자마자 2~3분도 채 안 되어 답글이 생겼다. 어떤 아기 엄마가 한인 지피(의사)를 찾아가면 그래도 뭐라도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는 그 길로 집에서 길을 나섰다. 당시 우리는 멜버른 시티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잠시 비가 멈추기를 기다려보았다. 아기띠를 하고 있었고 우산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픈 아기에 비바람을 맞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 아기 엄마가 아파트 로비에 아이와 내려왔다. 로비에서 조금 바람을 쐬려는 듯 보였다. 그런데 딱 우리 아이 또래인 데다가 한국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한국분이냐고 얼른 물었다. 그 아기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 있는 약을 내어주고 약이 안 들으면 다음엔 지피에게 가서 어떻게 이야기하라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그 아기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여기 사시는 데 왜 플레이 그룹에 안 오세요?"


나는 잊고 지냈던 플레이 그룹이 그제야 생각났다.


"아, 그거 듣긴 했는데 그게 어디에 있어요? 가면 아기들이 자기들끼리 잘 놀고 하나요? 아직 아기가 어려서 그냥 집에서만 있었거든요."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시길, 아기들이 아직 어려서 서로 같이 놀지는 않아도, 엄마들끼리 서로 정보도 교환할 수 있고 같이 공동 육아하면서 고충도 나누면 한 결 육아가 쉬워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주 금요일에 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장난감도 많았고, 무엇보다 한국 아기들과 엄마들이 꽤나 많았다. 그 이후 나와 아이는 하루하루 스케줄이라는 게 처음으로 생기게 되었다. 다른 아기 엄마들로부터 들은 다양한 아기들 모임에 대한 정보를 듣고 모두 참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네 도서관마다 다른 날 같은 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노래와 율동을 함께하는 라임타임과 스토리타임만 다녀도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고 일주일이 금방 지났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한국 엄마들과 플레이 그룹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와 같이 가기 좋은 곳 들도 어깨 너머 들으면 그 주 주말에 남편을 데리고 가 보기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클수록 점점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서 서로 너무 잘 놀았고, 엄마들끼리도 친목도모가 잘 되면 밤에 따로 만나 자부 타임을 갖기도 하였다. 아빠들도 엄마들이 자부 타임을 갖는 동안 함께 공동육아를 하다가 결국 모두 다 친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멜버른에서 아이를 키우다가 지금은 다시 여차저차 선샤인코스트로 오게 되었지만, 호주 전 지역 도서관에는 라임타임과 스토리타임, 그리고 동네마다 지역 플레이 그룹이 있다. 때로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주최하는 플레이 그룹도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2불 정도의 도네이션만 하고 아이들이 다 같이 놀고 모닝티를 함께 한 후 집으로 오는 프로그램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메인리뮤직이라고 하고 종교 유무와는 관련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집 근처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다면 연회원권을 끊고 매주 가는 것도 추천한다. 보통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안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꼭 있다. 그래서 매주 한 번씩 가서 놀고 오면 연회원권은 뽕을 빼도록 갈 수 있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으로 자극을 주기에도 너무 좋은 곳이다. 특히 멜버른 시티에 있는 박물관 안에는 아이들 공간이 너무 잘 되어있어서 정말 연회원권은 필수이다. 수족관 또한 아이들이 갈 만한 좋은 곳 중 하나이다.


호주는 어떻게든 아이를 엄마 혼자 혹은 도와주는 사람 없는 경우에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것 같았다. 플레이 그룹 없이 독박 육아를 했다면 아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가족 없이 지낸다는 건 생각보다 여러 면에서 불편함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레이 그룹은 나에게 든든한 육아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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