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수용인가, 수정인가?

나, 너 그리고 우리

by 진전노트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수용인가, 수정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간혹 올라오는, 부정적이라고 여겼던

감정과 생각을 억누르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던 나에게

누군가 말해준 적이 있다.


"너는 한 번도 너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구나."


"나를 사랑한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거야."


그전에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내게 전한 '나를 사랑하는 법'은

'수용'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라는 말이

많은 가르침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유전자키를 공부하며

내가 싫어하던 내 모습들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자, 조금씩 집착이 줄어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모습들은 언제든 다시 올라올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내가 배운 '수용'이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동양 사상에서는 '자기 자신을 닦는 것'과 같은

'수정'에 가까운 가르침이 전해져 왔다.


그렇다면,

이런 '수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걸까?


나는 20대 시절,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그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그 마음을 들여다본 끝에

매우 단순한 사실에 닿았다.


'사람은 다르구나.'

'나는 저 사람의 특정한 부분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저 사람의 전체는 어떤 모습일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하며

올라오는 감정을 바꾸려 애썼다.


질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의식적으로 상대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사랑한 것이었을까?


내 감정과 생각을 싫어하고 괴로워했던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넘어서려 했던 내 모습은

사랑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동양사상의 '수정' 역시

개인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닦아 사회에 이바지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조금씩 닦아나가는 것,

그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처럼 자기 억압의 경향이 강한 사람은

'수정'의 과정에서 죄책감이나 위축감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사람마다 자신에게 더 맞는 방법이 있으며,

수용도, 수정도, 그저 하나의 '방법'일뿐이고

누구에게나 같은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을 수정하려 할 때는

'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를 더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수용할 때는

'이 모습이 우리 안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방향인지' 살펴보면서.


'수용'도 '수정'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을 놓지 말고 스스로 실험하며

자신에게 더 자연스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를 사랑하는 길'에 가깝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질투가 생겼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점을 보려고 애썼던 건

내 나름대로 그 사람을 사랑해 보려는

시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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