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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Mar 28. 2023

키치란 무엇인가?

아이브(IVE)의 신곡 키치(Kitsch)를 중심으로


아이브(IVE)  앨범 자켓. 2023년 3월 27일 발매. @STARSHIP


키치(Kitsch)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허세다. 진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인 것. 의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의미한 것. 예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돈에 얽혀 있는 것. 그런 것이다. 따라서 키치는 어딘가 과장되어 있고, 군중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저항정신을 지니기도 하며, 진짜(무거운 것)를 비틀기에 가볍고(해학, 풍자), 즐거움을 추구하여 재밌기도 하다. 혹은 지나간 현실을 미화하여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재현하는 리메이크, 복고, 향수, 노스탤지어와도 맞닿아 있기도 하며,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자극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참고

밀란쿤데라, 198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기영, 2016, <대중음악 가사에 표현된 키치에 관한 연구 : 1990년대 이후 한국대중음악을 중심으로>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주제는 '키치'. @민음사 

아이브(IVE)는 키치(Kitsch)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2023년 3월 27일 자로 발매한 아이브의 신곡이 <Kitsch>다. 


IVE 아이브 'Kitsch' MV.  @Youtube


아이브는 <Kitsch> 노래 가사에서, ‘우린 달라 특별한 게 좋아’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우주라는 대자연에 태어난 한낱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자신을 ‘특별하다’며 의미부여 하는 것 자체가 키치다. 조중걸의 <키치, 달콤한 독약>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키치적 삶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서술했는데, 셀럽의 삶 자체가 키치 그 자체이기도 하고, 아이브(IVE)라는 스피커를 통해서 전면에 선언되는 느낌이다. 


우린 달라 특별한 게 좋아. 장원영 파트. IVE 아이브 'Kitsch' MV. @Youtube 'STARSHIP'


이어서 <Kitsch> 속 가사는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진다. 인스타그램은 키치의 온상이다. 가사에서, ‘네가 보낸 DM을 읽고 나서 답이 없는 게 내 답이야’라면서 인스타그램의 ‘DM’ 단어로 셀럽의 SNS라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OOTD 하나까지 완전 우리답지’ (해시태그 #OOTD. Outfit Of The Day의 약자.) 라는 가사를 통해 자연스레 ‘패션’ 이미지를 가져온다. ‘My favorite things 그런 것들엔 좀 점수를 매기지 마’라는 가사에서 취향 평가를 거절한다는 뉘앙스의 메시지가 나오는데, 군중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저항적인 가사가 나오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난 생겨 먹은 대로 사는 애야’라며 다소 저속한 표현으로 가볍고 당당하게 외치며 청자를 매료하는 부분 또한 키치다. 이제 본격적인 훅(Hook)이 나온다.


네가 보낸 DM을 읽고 나서 답이 없는 게 내 답이야. IVE 아이브 'Kitsch' MV. @Youtube 'STARSHIP'


‘우리만의 자유로운 nineteen’s kitsch / 지금까지 한적 없는 custom fit / 올려 대는 나의 feed엔 like it / 홀린 듯이 눌러 모두 다 like it / 내가 추는 춤을 다들 따라 춰 / 매일 너의 알고리즘에 난 떠 / 겉잡을 수 없이 올라 미친 score / 그 누구도 예상 못할 nineteen’s kitsch’


이 가사를 노래한 후 ‘우리만의 자유로운 nineteen’s kitsch’라는 가사를 낮게 반복적으로 읖조린다. 무의미한 반복의 유의미함, 곧 키치다. 인스타그램 속 패션, 그리고 셀럽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입하며 강조하는 건 키치의 정석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nineteen’s kitsch’다. 아이브 멤버의 평균 나이가 열아홉인 것을 감안하면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곡의 1분 2초부터 1분 19초까지 약 17초 동안 곡의 밝은 앞부분과는 전복된 분위기로 공허하게 ‘nineteen’s kitsch’만 반복하는데, 키치함을 열아홉이 구현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의 가벼움이 배가되면서, 동시에 분위기는 퇴폐적이다. 


우리만의 자유로운 nineteen’s kitsch. 레이. IVE 아이브 'Kitsch' MV. @Youtube 'STARSHIP'


난 생겨 먹은 대로 사는 애야. IVE 아이브 'Kitsch' MV. @Youtube 'STARSHIP'


이후에는 ‘달콤한 말, 뒤에 숨긴 너의 의도대로 따라가진 않을 거야 난 똑똑하니까’라며 ‘난 절대 끌리지 않는 것에 끌려가지 않아’, ‘답답한 이 세상 앞엔 멋대로 할래’ 등의 가사로 저항정신을 끝까지 내비친다. 주체적인 이미지에 매료될 수 있으나, 실상은 소속사에서 프로듀싱한 이미지대로 소화하여 소비되는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키치하다. 키치의 소비자들은 키치의 거짓말을 눈감고 받아들인다. 




아이브는 나르시시즘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노래를 발표하는 중이다. 자신과 사랑에 빠진 <러브 다이브>가 대표적이다. (Narcissistic, my god I love it.) 이번 신곡 <키치> 또한 같은 맥락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키치에 대해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이야기 하는데, 아름다운 것(‘아름답다’는 유의미함.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을 두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에서 흘리는 눈물 한 방울과,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아름다워 하는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흘리는 눈물 두 방울을 말한다. 키치는 눈물 두 방울을 필수 동반하며 이 과정에서 자기애가 전제가 된다. ‘남들과는 다르고 특별한 정서를 갖는다’에서부터 오늘날 힙스터 정서가 형성되고 인스타그램이 폭발하는 이유가 되었으며, 90년대 감성과 싸이월드발 특유의 허세 또한 나르시시즘과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표지에 수록된 작품인 프랑시스 피카비아의 <열대>. 유독 눈이 많다. @구글


아이브는 신곡 <키치>의 콘셉트로 반항적 기질이 다분한 대학생으로서 약간의 선정적이고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실제로 뮤직비디오의 3분 10초에 등장하는 아이브의 의상에는 ‘Books, not guns, Culture, not violence’라는 문구가 쓰여있는데, 영화 <몽상가들>의 대사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68혁명을 배경으로 지식인에 가까운 청년들이 문 밖(시위)으로 나가길 거부하고 욕망에 휩싸이는, 그야말로 현실에 눈 감고 아름다운 것만 추구하는 키치 그 자체의 영화이다. 반항적이면서 선정적인 콘셉트가 아이브의 신곡과 닮았다. 이로서 아이브가 3분 21초간 말하는 <키치>는 완성된다.


Books, not guns, Culture, not violence. IVE 아이브 'Kitsch' MV. @Youtube 'STARSHIP'
영화 <몽상가들> (The Dreamers, 2003)의 한 장면. 루브르 박물관 달리기. Books, not guns, Culture, not violence. @구글

<키치>만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건 없다. 니체의 말대로 인간은 의미부여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삶이 고통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브가 나르시시즘 세계관의 일환으로 ‘키치’를 택한 것은 영민한 선택이다.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고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으며 그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인스타그램발(發) 세상에, 너무 전면적이어서 그 어떤 아이돌도 곡 제목으로 선정하지 않은 ‘키치’를 타이틀로 내세운 아이브의 패기에 박수를 보낸다. 


IVE 아이브 'Kitsch' MV. @Youtube 'STARSHIP'


음악평론가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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