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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Jan 31. 2023

더 시즌즈에 거는 기대

KBS <더 시즌즈-박재범의 드라이브>에 부쳐

요즘 음악 소비 방식 먼저 짚어보자.


유튜버 '때껄룩' #외힙 #릴스 #플레이리스트 | 인스타 릴스에 나오는 트렌디하고 힙한 노래 찾아? 여기 다있어


유튜브를 켠다. 때껄룩을 검색한다. 플레이리스트 목록을 훑어본다. 기분과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플레이리스트 제목을 클릭한다. 첫 곡이 꽤 괜찮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플레이리스트를 반복재생으로 틀어놓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속한 곡들의 제목은 점점 보지 않게 된다. 과거에는 낱개의 곡들을 검색해 플레이리스트에 직접 추가해야 했기에 곡 제목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20년대 리스너는 분위기를 소비한다. 때껄룩의 플레이리스트 속 Steelix, Jeremih, Lil Uzi Vert의 한 곡이 주는 임팩트가 예전만큼 크지 않다. 각 곡의 유튜브 파일을 일일이 검색하여 추가해놓기보다는, 분위기와 맥락에 맞춰 편집해놓은 때껄룩의 플레이리스트를 저장하는 게 간편하다. (그리고 잘 만들었다.)


음악은 이제 한 곡의 의미보다 어떤 맥락에 속하느냐로 성패가 결정된다. 1) 대형 기획사에 속한 아이돌 그룹이거나 2) 밈(meme) 혹은 알고리즘이라는 맥락에 탑승했을 경우 3) 프로그램에서 서사를 부여받았을 경우 (쇼미더머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플레이리스트로 소비된다. 그 이유는 ‘분위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핀셋처럼 집어내어 플레이리스트로 엮어 내는 능력이 리스너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좀 더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니즈 충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음악프로그램은 어떻게 해?


그렇다면 스케치북으로 대표되는 기존 음악 프로그램은 어떠했는가. ‘단순한 무대의 나열’이었다. 프로그램 초반까지만 해도 진행자 유희열에게서 기대되는 ‘90년대 감성’이 있었다. 윤상, 윤종신 등의 아티스트들이 빈번하게 출연하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진행자의 색깔이 여실히 묻어나는 라인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에 가까워질수록, 심야 프로그램의 특성상 인지도 낮은 신인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프로그램 초반까지만 해도 인디씬의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출연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퇴색됐다. 회차별 기획의도를 알 수 없고 이름도 모르는 아이돌이 출연하는 일이 늘었다. 뮤직뱅크 앞부분과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저조한 시청률은 악화되어갔다.

2009년부터 2022년까지. 600회에 걸쳐 진행된 장수 음악 프로그램. 그래도 많이 애정했다.


결국 큐레이팅이 부재한 ‘단순 나열’만으로 음악프로그램 제작이 반복되면 외면 받는다. 박재범이어도 예외는 없다. 대중이 박재범에게 거는 기대는 힙합과 알앤비에 대한 숨은 명곡의 추천일 가능성이 크다. 그에게서 ‘진행능력’ 혹은 ‘토크’를 기대하기 어렵고, 힙합이나 알앤비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인맥 혹은 선곡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미디어에서 보인 과거 ‘AOMG’의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다. 또, 플랫폼 측면에서 장르에 대한 기대감도 적다. 힙합과 알앤비는 심의에 구애받지 않아야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공영방송의 한계 때문에 기대감이 덜하다. 유튜브에서 박재범이 엄선하여 선곡한 플레이리스트 열두 개를 라이브 공연을 곁들여 듣는 것과, KBS에서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 선한 웃음을 넣어가며 심의에 걸리는 곡을 제외한 상태로 열두 시간(1시간X세 달 기준)에 걸쳐 감상하는 것. 둘 중 어떤 콘텐츠를 대중이 선호할지 묻고 싶다.



공영방송에서 <쇼 미 더 머니>를 기대할 수는 없다. 과거 <탑 밴드>같이 한 장르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KBS에서 진행하긴 했지만 특유의 ‘선한 분위기’ 때문에 오디션 경쟁의 느낌이 잘 살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 <더 시즌즈>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아니고, 스케치북의 뒤를 잇는 ‘음악 프로그램’인데 얼마나 박재범의 색깔이 잘 살지 의문이다. 힙합과 알앤비를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힙합과 알앤비를 벗어난 장르의 소개라면 색깔이 옅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박재범은 토크보다는 뮤직에 방점을 두고 택한 섭외이다. 제작진은 이 부분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기대가 된다. 제작발표회 인터뷰 기사를 통해 ‘박재범이 발로 뛴다’는 구성을 밝혔는데 ‘리포터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프로그램 설명과 관련해 ‘KBS의 돌아이 음악쇼’라는 표현에서는 의아해졌다. 어쭙잖은 예능 양념치기로 모범생이 노는 척하는 느낌을 자아내기보다는, 공영방송의 자본을 투자하여 만든 ‘정통 힙합 알앤비 프로그램’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소심한 반항보다는 차라리 정석을 택했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제발 재밌어 주시길. 2023년 2월 5일 저녁 10시 55분 첫방송. KBS.
프로그램의 시즌 제목이기도 한 '박재범의 드라이브'. 박재범 Jay Park - 'DRIVE (Feat. GRAY)' Official Music Video

음악평론가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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