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년에도 이 노래는 불릴까

보헤미안 랩소디가 50년을 건너온 방식

by 이예진

트렌드의 주기가 분 단위로 갱신되는 지금의 음악 시장에서 50년은 거의 영원에 가깝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 여행 기회를 줄 테니 어디로 갈지 선택해 보라’라고 한다면 나는 퀸의 LIVE AID 콘서트장으로 향할 것이다.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개봉으로 국내에도 한 차례 퀸 열풍이 불었을 때 에너지를 받았던 경험은 ‘음악이 시간을 관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프레디 머큐리. (C) Live Aid 1985.

명반 <A Night at the Opera>(1975)가 발매된 지 5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퀸의 음악은 오늘날 친구 간의 우정을 다룬 쇼츠 속 ‘You’re My Best Friend’처럼 각종 미디어에 여전히 녹아 들어 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이 곡을 들으면 세대를 막론하고 감정이 동화되는 이유, 그리고 발매 연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세련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트랙 ‘Death on Two Legs’는 귀를 사로잡는 피아노 연주와 매니저를 디스하는 파격적인 가사로 앨범의 포문을 연다. 존 디콘이 아내 베로니카에게 헌정한 ‘You’re My Best Friend’, 프레디 특유의 명랑함이 돋보이는 ‘Lazing on a Sunday Afternoon’ 등 개성적인 트랙들이 포진했지만, 그럼에도 타이틀곡 ‘Bohemian Rhapsody’의 영향력은 압도적이었다. 이로 인해 당대에도 이 앨범은 앨범 단위보다 싱글 단위의 파급력이 더 컸다. 퀸은 밴드 편성의 한계를 기술력보다도 의지로 돌파하려 했다. ‘Is this the real life?’로 운을 떼는 아카펠라 보컬에는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3명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여 있다. 이들은 당시 24개 트랙뿐인 아날로그 테이프의 녹음 환경을 극복하고, 하루 10~12시간씩, 180회에 달하는 오버 더빙을 반복했다.

퀸(Queen), A Night At The Opera, 1975. 앨범 커버. (c) EMI

1935년 영화 <오페라의 밤>(A Night at the Opera)의 제목을 차용한 이 앨범의 ‘오페라’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록 오페라’라기보다, 클래식의 오페라 개념에 가깝다. 이 앨범은 고전 형식을 밴드 음악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 반복적인 오버 더빙 역시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선택이었다. 전통적인 풀 오케스트라의 경우 보통 현악, 목관, 금관, 타악까지 70~80명에 이른다. 그러나 머큐리가 택한 ‘오페라’를 구현하는 데 동원된 것은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의 밴드 편성과 세 명의 목소리뿐이었다. 이 목소리들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며, 곡 전반에 코러스와 입체적인 파트들을 배치해 하나의 ‘풍성한 소리’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1960년대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구현한 ‘월 오브 사운드’와도 결이 다르다. 비틀즈의 앨범 <Let it be> 수록곡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더해진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물량으로 사운드를 밀어붙였다면, 퀸은 세 명의 목소리로 80인조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인간의 집요함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대중음악이 3분 내외의 디스코와 소프트 록 중심으로 소비되던 흐름을 감안하면 6분에 달하는 퀸의 오페라 록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앨범 작업 중인 퀸(Queen). (c) the man from manhattan

한국에서는 이 곡이 어떻게 들렸을까? 1975년 한국은 이른바 ‘가요 정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3분 플레이 규정과 트로트 중심의 차트 질서가 유지되던 환경에서, 이 곡은 검열과 규범 속에 억눌린 감정을 대신 표출하는 통로로 작용했다. 혁명적인 사운드가 곧 대리 반항의 언어가 된 셈이다.


또한 이 곡은 한국적 ‘신파’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아카펠라, 피아노 록, 오페라, 하드 록을 거쳐 다시 피아노 록으로의 회귀하는 다섯 개의 장르를 오가는 구성은 극적인 감정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자유’를 갈망하는 보헤미안과 히피적 정서는 이러한 극적 구조 위에서 더욱 낭만적으로 증폭되며, 이 곡을 한국 청자들에게 유독 오래 사랑받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 앨범에서 눈여겨 볼 트랙은 ‘‘39’ 다. 광활한 대지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타 반주 위에 얹힌 익숙한 리프는 ‘Bohemian Rhapsody’의 주제적 정서를 은근히 환기한다. 물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브라이언 메이는 이 곡에 이른바 ‘우라시마 효과’를 서사로 끌어들였다. 빛의 속도로 항해할 경우, 우주선 안의 1년이 지구의 100년에 해당한다는 시간 왜곡의 비극을 컨트리 포크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지구가 오염된 39년을 배경으로, 인류의 지원자들이 우주 탐사에 나서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지만, 귀환했을 때 지구에는 이미 100년이 흘러 가족과 연인은 모두 사라지고 후손만 남아 있다는 설정은 깊은 허무를 남긴다. 이러한 SF적 상상력은 2014년 영화 <인터스텔라>의 ‘밀러 행성’ 시퀀스를 연상시키며, 퀸이 이미 50년 전 시간의 왜곡과 상실을 노래하고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1975년, ‘Bohemian Rhapsody’는 발매 당시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9주 간 차지했다. 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싱글은 라디오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규칙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며 펑크와 뉴웨이브가 부상하자, 퀸은 한동안 시대의 전면에서 물러난다. 전환점은 1992년 영화 <Wayne’s World>였다. 자동차 안에서의 헤드뱅잉 장면에 이 곡이 삽입되며, ‘Bohemian Rhapsody’는 빌보드 차트에 재진입한다. 이때 곡은 처음으로 ‘엄숙한 명곡’의 이미지를 벗고, 유희와 집단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재인식되기 시작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라이브 에이드 스틸 컷. (c) 20th Century Fox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이 곡은 혼자 감상하는 음악을 넘어 ‘떼창’과 퍼포먼스를 동반한 집단적 경험의 음악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정점은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이 곡은 다시 동시대의 음악처럼 호명되며 전 세계 스트리밍 수가 급증했고, Z세대까지 청취층을 넓혔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이라는 밴드의 서사까지 함께 소비되는 국면이 열렸다.


이 앨범이 반세기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는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 반세기 동안 어떤 음악이 2076년까지 남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음악을 같은 시간대의 청자로서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시대에 주어진 축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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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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