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음 D-1] 한대음이 선택한 — 2025년의 음악

시상식은 마침표가 아니다. 부스터다.

by 이예진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공식 로고. (c) KMA

드럼이 트레몰로로 울린다. 혹은 잠깐의 정적. 그리고 호명되는 이름. 이번 그래미에서 셰어(cher)가 켄드릭 라마의 'Luther'를 'Luther Vandross'로 잘못 읽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 순간의 긴장만큼은 매년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무슨 감정을 느낄까. 아마도 '인정'이다.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시간들을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작은 녹음실에서, 미디 학원에서, 사운드클라우드에 트랙을 올리며 쌓아온 시간들. 그 시간들이 공신력 있는 무대 위에서 호명되는 순간, 무언가가 완성되는 느낌이 있다. 특히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오래 좋아해온 사람이라면 그 감정은 더 뭉클하다. "드디어… 저 아티스트가… 상을 받는구나…" 그런 느낌. 그 인정의 방식에는 멜론 차트도 있고, 유튜브 알고리즘도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시상식인가.


알고리즘과 차트는 대중의 선택, 혹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내가 좋아할 것을 찾아준다. 그런데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지, 그 오디오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기계는 아직 온전히 판단하지 못한다. 그것을 판단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평론가, 에디터, 음악 산업 관계자들로 구성된 비평 집단. 그 사람들이 선택했다는 것이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의미를 갖는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사람의 선택'은 공신력이 된다.


그 인정이 부스터가 된다. 한대음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역대 수상작을 보면 패턴이 보인다. 이날치, 실리카겔, 단편선 순간들. 이 셋은 사실 각각 다른 케이스다.

이날치, ‘범 내려온다’ (c) Youtube

이날치는 2021년 올해의 음악인을 수상했지만, 한대음 이전에 이미 '범 내려온다'로 터진 상태였다. 한국관광공사 영상이 글로벌 바이럴이 됐고, 수상은 그 위에 올라탄 것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대음이 이날치를 키운 게 아니라, 이날치가 한대음의 위상을 올린 케이스다.

실리카겔의 시작. (c) Youtube

실리카겔은 반대다. 수상 전까지는 씬 안의 언더독에 가까웠다. 2024년 올해의 음악인 수상 이후, '이제 공연을 보려면 어려워지겠구나'라는 말이 나왔다.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올라서도 된다는 인증마크.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될 기회가 생겼고, 지금의 밴드 붐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대음이 진짜 부스터로 작동한 케이스다.

다시 보는 단편선 순간들 수상소감. (c) Youtube

단편선 순간들은 또 다르다. 2025년 올해의 음반 수상 직후 "싱글은 앨범이 아닙니다"라는 수상 소감 한 마디가 화제가 됐다. 상이 담론을 만들고, 담론이 이름을 알렸다.


세 케이스의 공통점은 하나다. 한대음은 마침표가 아니었다. 문을 열었을 뿐이고, 그 문을 통과한 건 결국 음악 그 자체였다. 그 문이 내일 밤 또 열린다.


음악은 혼자 듣는다. 파편화된 플레이리스트가 보편화된 지금은 더 그렇다. 알고리즘이 각자의 취향을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시대에,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티스트의 이름이 공식 후보 명단에 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다. 혼자 듣던 음악이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 그래서 시상식은 축제다. 누가 탔네, 안 탔네. 그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


그러면 내일 밤 얘기할 음악들은 어떤 것들인가.


종합 부문에서는 신인 우희준이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 세 부문 모두에 이름을 올렸다. 데뷔 첫 해에 장르를 넘어 주요 부문까지 호명된 싱어송라이터. 엔믹스(NMIXX)는 한대음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부문에 두 장의 앨범을 동시에 올리며, 걸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올해의 음악인과 올해의 노래 모두에 이름을 올렸다. 최다 노미네이트 에피는 소속사도, 전국 단위 마케팅도 없이 EP 두 장으로 여섯 개 부문에 올랐다.


장르 부문도 풍성하다. 헤비니스 부문의 baan은 숨 막히는 속력과 소음이 몸의 각 부위를 재조립하는 것 같은 압도적인 사운드로 후보에 올랐고, 팝 부문의 주혜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할 만한 따뜻하고 대중적인 팝을 들고 왔다. 스테레오포닉스가 떠오르는 그 온기. 포크 부문의 산만한시선은 남성 듀오와 기타의 조합으로 삶을 담담하고 편안하게 노래한다. 관조적이고 덤덤한데, 그 덤덤함이 오래된 향수처럼 남는다. 힙합 부문에서는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를 차트에 역주행시킬 만큼의 파급력을 보인 식케이, 릴모쉬핏(Sik-K·Lil Moshpit)의 'LOV3'가, 일렉트로닉 부문에서는 몇 년째 노미네이트만 되고 있다는 키라라(KIRARA)의 긴장감이 전해진다. 올해는 그 긴장이 해소되길 바란다. 재즈의 마리아 킴(Maria Kim), 글로벌 컨템퍼러리의 박지하전진희까지. 이 명단을 훑는 것만으로도 2025년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도가 어느 정도 그려진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두 아티스트를 먼저 소개했다. YG라는 대형 자본과 혈연으로 묶인 파트너십을 배경으로, 가스펠에 가까운 화성과 코러스로 사랑이라는 보편을 정면으로 다룬 이찬혁. 그리고 소속사도 없이 혼자 미디 학원에서 시작해, 하이퍼팝과 K팝과 힙합을 뒤섞은 전자음악으로 씬을 뒤흔든 에피(Effie). 자본력도, 사운드도, 성별도 다른 두 솔로 아티스트가 내일 밤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그것이 한대음이라는 공간의 의미다. 이렇게 다른 음악들이 같은 자리에서 호명될 수 있다는 것.


솔직히 말하면, 에피와 우희준의 수상이 가장 선명한 그림이 될 것 같다. 이찬혁도 훌륭하고 NMIXX도 이견이 없지만 — 에피가 수상한다면 하이퍼팝이라는 장르가 처음으로 공식 인정을 받는 순간이 된다. 그것도 DIY로. 우희준이 신인상을 받는다면, 데뷔 첫 해에 장르를 넘어 주요 부문까지 호명된 싱어송라이터로 기록된다. 둘 다 음악만으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시상의 의미가 가장 선명해지는 경우다.


시상식이 끝나도 음악은 남는다. 내일 밤은 그 음악들이 처음으로 큰 소리로 불리는 날이다.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2월 26일(목) 저녁 8시, 멜론 앱과 유튜브 한국대중음악상(KMA) 채널에서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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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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