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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Sep 06. 2022

생선뼈 발라먹기

삶은 변수가 있고, 생선뼈 바르기는 원리가 있다.

  나는 먹는걸 참 좋아한다. 먹는데 진심인 만큼 먹는 방법도 잘 알고있다. 특히 감자탕의 뼈나 생선가시를 발라먹을 때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원리를 알면 길이 보인다"라는 것이다.

  어제 해놓은 갈치조림을 데워 접시에 정갈하게 모시고 해부를 시작한다. 운좋게도 도톰하고 사각모양의 토막이라 해부가 용이하다. 토막 가운데 갈치 척추부위에 젓가락을 넣어 일자로 싹 가른다. 가른선을  중심으로 양쪽 살을 발라낸다. 이제는 양날개쪽 가시를 젓가락 사이에  넣고 한 젓가락질로 쏙 빼낸다. 마지막으로 非자 모양의 중심뼈대를 제거하면 온전히 살만 남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생각한다. 우리네 삶도 생선뼈 바르기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원리를 알면 길이 보인다면. 지금껏 원리에서 보이는 길이 정답으로 이끌어진 것은 공부할 때나 그랬던 것 같다. 생은 늘 변수발생의 연속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닦을 때는 마른 걸레보다 젖은 걸레로 해야하며, 네이버 대중교통 길찾기로 거리가 50분인 장소는 70분을 잡고 길을 나서야 한다는 것, 자동차 연료부족 경고등이 켜도 가까운 거리 하루는 꼬박 다녀도 괜찮다는 것, 남편의 눈꼬리가 살짝 평평해질 때는 잔소리를 멈춰야 한다는 것, 중3 아들이 말수가 적어지고 방문을 닫았을 땐 조용히 노크하고 들어가 달고 맛있는 간식을 한 켠에 조용히 놔두고 나오면 된다는 것, 중1딸의 여드름 패치가 떨어지면 사단이 난다는 것 등 얼마나 많은 경험치의 산물을 뇌 속에 저장하고 있지만(여기에도 변수는 있다. 예단은 변수를 배제한 오류가 될 수도), 때때로 탁탁 제동이 걸리는 순간들이 있다. 특시 사람의 마음은 참 어렵다. 복잡다난하고 깊고도 깊고 그 마음밭이 가지각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함 속에도 공통분모가 있으니, 사랑받고 인정받고 공감받고 위로받고 격려받고 싶어한다는 것. 그 친절한 방향성으로 사람들을 대하려 노력하면서도, 내 존귀하고자 하는 욕구도 침해되지 않으려 줄타기의 균형을 맞춘다. 20대에는 그 균형맞추기가 쉽지 않아 갈등과 조율의 연속이었는데, 40대 중반에 이르니 꽤 훈련이 된 듯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어 갈등의 빈도보다 조율과 수용의 빈도가 높아졌다. 경험치가 쌓여 안정권으로 접어든다는 것은 나이듦이 주는 커다란 선물 중 하나이다.

  열심히 발라놓은 생선살 양념에 조려진 쪼롬하고 여린 부추를 한 젓가락 올려 입안에 넣는다. 담백함과 부드러움, 쪼롬이 입 안에 퍼진다. 변수 없이 원리가 바로 길로 이어지는 간단명료한 갈치의 몸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아침의 허기진 배를 채운다.


#생선뼈발라먹기 #원리 #변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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