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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Sep 18. 2022

언감생심 글린이가

살면서 꾸준히 글을 써오지는 않았다. 그동안 펜을 들었던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출구를 찾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울음 같은, 혼잣말 같은, 하소연같은 글들을 써왔을 뿐이다.

우연히 문예지 신인상 공모전을 보게 됐고, 노트에 있던 시 몇 편을 골라 보내봤는데 당선이 됐단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그곳에 전화를 건 것이다. 말그대로 그냥 한 번 보내 본 것인데 막상 신인상에 뽑혔다는 소식을 들으니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공모전에서 신인상에 뽑혔다는데요. 제가 왜 뽑힌건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제 시는 너무 부족한데요........."

"신인상은 말 그대로 신인을 뽑는 겁니다. 가능성을 본다는 것이지 완벽한 작품을 찾는게 아니예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기쁘다기 보다는 의아한 마음이 계속 일었다. 나는 시집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저 마음가는 대로 끄적이는 글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택도 없는 말이다 싶었다. 그 후 나는 시를 쓸 수 없었다. 쓰기는 썼으나 내 마음을 소롯이 담아내지 못 했다. 흉내를 내고 멋을 부리고 그럴싸해 보이 요령을 부려 기 시작한 것이다. 읽은 꺼리가 적어 발상도 어휘도 표현도 풍부하지 못했지만, 마음을 담았던 글은 순수성을 잃어갔고 혼자의 세계에 힌 짝퉁 글이 되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고 12일이 지났다. 산문 또한 수준 미달이지만 어찌어찌 통과가 되었다. 이번에는 눈에 보이는 수치와 결과에 반응하는 나를 본다. 시간대별로 인기글이 올라오고, 브런치 나우에서는 몇몇 글들을 소개한다. 초보 브린이고 글의 수준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연연하게 된다. 마치 잘 뛰건 못 뛰건 스타트라인에서 출발총성이 울리면 무조건 달리고 보는 것처럼, 철학도 없고 중심도 없이 좋은 결과치를 얻어보려 그저 남들의 글을 흉내내려하는 섣부른 마음이 생겼다.


그런 조급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그 뒤에 밀려오는 마음은 나의 한계였다. 여러 작가들의 좋은 글들을 읽다보니 중학생이 대학생을 바라보며 느끼는 한계감을 느꼈고, 나의 글이 누추하게 느껴졌다. 잘 하는게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단계를 잊고 섣부르게 끓어올랐던 마음만큼이나 절망감도 빠르게 번져갔다. 그리고는 며칠 또 쓰기를 멈췄다. 양은냄비 같은 얄팍한 마음에 근성 없는 투정이 올라왔다. 의기소침해있는 나를 일으켜 남편은 산책을 청한다. 영문도 모른채, 다운되어있는 내 기운을 환기시켜 주고 싶었던가 보다.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오르락 내리락이라는 인생의 얄궂은 기복원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상황이 짠 하고 나타날까 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나, 얄궂게 하늘엔 별도 몇 개 보이지 않는다. 까만 머리에 듬성듬성 인공위성 헤어핀을 꽂은 듯, 떠있는 몇 개 안되는 별마저도 인공적이다. 하늘의 낭만이라도 기대했건만. 오늘은 하늘도 내 편인 아닌 것인가. 쭈그러진 모습은 점점 못난 생각으로 이끌려가기만 한다. 긍정의 에너지가 확장의 기운을 띤다면, 부정의 에너지는 축소와 응축의 기운으로 점점 쪼그라들게 된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을 내려 그저 걷기로 한다. 길 모퉁이 넘어에서 일정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조깅 중인 한 여성이다. 늘 해온 일상인냥 뛰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힘겨워보이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늘에서 별을 찾으려 했건만, 하늘은 '그건 니 생각이고!!'를 우렁차게 외치고 있는가보다.

'의도와 계획대로만 되는 줄 아느냐, 별은 하늘에만 있는게 아니라 땅을 밟고 뛰고 있는 저 노력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남편과 속얘기도 나누면서 길을 걸어 가는데, 요즘은 확실히 조깅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저만치서 한 명의 여성이 또 운동 중이다. 이번에 오는 여성분은 조깅을 이제 막 시작해보려 하는 달린이인가 보다. 뛰는 자세도 엉거주춤하고, 뛰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면 메뉴얼이 어딘가 잘 못 된 듯 힘겨워 보인다.


누구나 처음이 있는 것이다. 바로잡을 부분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도 시작을 할 때 가능한 것이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없어 아는 것이 없을 때 과감하고 무뎃포가 된다. 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길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듯이 경험치 만큼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만큼 대비와 마음의 준비를 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이 쌓이자 태풍을 대하는 국민과 정부의 자세도 상당히 진화한 것과 같이.(다음주 또다른, 이름도 이상한 태풍, 아이돌도 아닌 난마돌이 온다고 한다ㅠㅠ)

나는 경험이 적고 공부도 덜 된 말 그대로 글린이.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초보운전일 때 고속도로를 나가면 위험천만하다. 위험한 상황은 모면할지라도, 긴장으로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어깨가 결리고 정신건강에도 해로울 것만은 분명하다.

작심3일은 뭐 내 특기이다. 작심3일 뒤에 오는 좌절3일도 자연스레 동반되는 특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앞으로도 좌절3일을 반복할 지언정 작심3일이 멈추지는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글쓰기에서만은.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힘이 들 때 일으켜 세우고, 외로울 때 가슴 한 켠 빈 공간에 절절히 공감해주고, 복잡할 때 머리 속 정리정돈을 도와주기도 하며, 화가 날 때 속 상할 때 내 푸념을 조건없이 받아주는 친구인데, 이런 친구를 어떻게 떠날 수가 있을까. 무덤에 들기 전에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최소한 한 명은 찾은 것인가.

여하튼 기본기를 다지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보는 거다. 스포츠는 잘 모르지만 손흥민의 예부터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성급하고 조급하고 섣불렀던 마음을 잠재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들꽃처럼 조용히, 천천히, 단단히, 내 글의 방향과 정체성, 생명력을 찾아나가야겠다.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순간, 또 좌절3일 후 작심3일을 하겠다.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글을 갈무리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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