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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Sep 22. 2022

시선

지그시 바라보다

유월에     -나태주-

말없이 바라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때때로 옆에 와
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덩굴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합니다

그대 생각 가슴속에
안개 되어 피어오름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가득합니다.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시이다. 나태주 시인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시는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이라는 시 지그시 바라보는 모습으로 대상을 눈에 담았다면 '유월에' 풀꽃의 마음 담겨있다.

'지그시 바라보다', 느낌이 참 좋은 말이다. 보다, 쳐다보다, 응시하다, 내다보다 등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바라보다'는 품고 있다. 어쩐지 꿈꾸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바라보다에는 담겨있다. 지그시를 붙여보자면 느낌은 한결 더 따뜻해진다. 지그시라는 말에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조심스러움과 신중함이 담겨있다.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 적이 언제인지, 내가 누군가를 지그시 바라본 적은 언제인지.

지그시 바라보는 것은 함부로 결론짓거나 쉽사리 평가하지 않고, 조용히 머무르는 시간이지 않을까. 

그 시간 속에서 상대의 표정, 목소리, 눈빛, 낯빛, 동작, 떨림, 그리고 그의 역사를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게 될 것이다.

멈춘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의 속도를 늦추어 그 말의 의미, 그의 마음, 그라는 존재 자체를 기다리는 것.

누군가가 속도를 늦춘 시간 속에 가만히 머무르며, 나라는 존재를 바라봐준다는 것은 '유월에'에서 나타나는 마음처럼 행복하고 따뜻하고 황홀함으로 충만하게 할 것이다. 그 마음으로 존재는 자생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꽃 2     -나태주-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몇 번이고 듣고 싶고, 몇 번이고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내가 되기도 하고, 네가 되기도 한다. 내가 되어 온전한 마음을 전하고, 네가 되어 온전한 마음을 받을 수 있다면. 그런 내가, 네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최근에 신당역 살인 사건을 보며 참 당혹스러웠다. 존재와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살인 사건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학대, 폭행, 태움, 괴롭힘이 너무나도 많다.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본능이다. 가해자들 또한 어딘가에서 또는 자라는 환경 속에서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인 비참함에 노출되어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겠지. 가장 큰 고통은 존재로서의 가치를 훼손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고 현수막을 붙이고 캠페인을 해서라도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강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온전한 가치를 존중받는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스님이 쓴 책 제목을 본 적이 있다. 지그시 바라보는 마음으로 우리는 하늘에서 별을 찾고 구름모양을 뒤지고 숲길을 걷는다. 때때로 그런 마음으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은 삶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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