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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Sep 26. 2022

아이는 사춘기, 부모는 성춘기

사춘기(思春期)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뜻인데, 참으로 혹독하다. 봄으로 진입하기 전 1, 2월이 그렇게나 추운 것처럼. 봄이 꽃샘추위로 신고식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사춘기가 늦게 찾아오면 대학입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여, 부모들은 자녀가 사춘기를 차라리 일찍 보내길 바랄 정도이다.

"우리 집에 사춘기가 온 아이가 있어서요."라고 말하면 "아~"하고 많은 말이 필요 없어도 이심전심이 될 만큼 많은 집들이 사춘기 자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죽하면 북한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우리 집에도 몇 해 전, 여지없이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중2보다 훨씬 빠른 시기인 초6인 첫째 아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네이버에 사춘기를 검색하니, 관련 검색어로 사춘기 아들, 사춘기 딸, 사춘기 증상, 사춘기 테스트 등 사춘기 관련 검색어들이 쭉 열거된다.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 검색어만 봐도 느껴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아들의 사춘기 증상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눈빛이 달라진다. 동글동글하던 눈이 쪽 찢어진다. 나는 이 눈을 살쾡이 눈이라고 묘사하곤 했다.

엄마가 말을 걸면 화를 낸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다. 좋은 말을 해도, 웃는 말을 건네어도, 간단한 질문일지라도 무조건 짜증을 낸다. 말 그대로 '무無조건'이다.

방문을 닫기 시작한다. 늘 열려있던 방이 어느 순간부터 닫혀있다. 나중에는 출입금지라고 써서 방에 붙여 놓기도 한다. 친구들과는 신나게 놀면서 집에만 오면 혼자 있으려 한다.

말이 안 통한다. 일단 말을 안 하려고 하니 통할 리가 없다. 말을 한다 해도 응대를 할 수가 없다. 이유인즉슨, '어이가 없어서'. 뭔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고,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이때 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주의사항은 올라가려는 손을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붙들어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절대 아이를 이기려 해서는 안된다. 이길 수가 없는 철옹성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항을 망각하는 순간, 전쟁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순한 양 같던 아이가 조폭 같은 제스처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 부모들을 위한 주의사항은 지금의 이 모습이 영원할 거라는 생각에 휘말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생각에 빠지는 순간, 온갖 부정적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자신이 아이를 잘못 키웠나 하는 자책에 빠져들어 우울감에 허덕일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갈 거야. 지나갈 거다.'를 염불처럼 외워야 한다.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이 시기를 잘 지내면 봄은 온다. '잘~'이라는 전제조건을 넣었다. 분명 지나가는 혹한기가 맞고 봄은 온다. 혹한기를 단축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잘~'이다. 전쟁이 잦아지면 혹한기는 점점 길어진다.


사춘기가 되면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불만이나 억압들이 활화산처럼 솟구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사춘기를 겪는 동안, 부모는 자기 점검을 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자기 점검 결과를 반성하되 거기서 발견되는 자신의 과오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그것은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오히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책과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라는 노래 가사처럼 과오를 딛고 개선하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오늘은 과오를 딛고 개선하는 방법 중 한 가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Q> 잘못을 했을 때는 OO 한다.

답은? APPLE이다. 사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어려워 수많은 사족이 달린다. 그 사족은 잔소리의 형태, 가르치려는 형태, 예의나 도리를 운운하는 형태, 때로는 부모가 자학을 하며 아이에게 죄책감을 강화시키는 형태 등 모습은 다양하다. 하지만 가지가 많으면 줄기를 가리게 되는 격으로,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

사족은 거두고 진심의 사과를 하면, 오히려 아이는 부모의 태도를 통해 물러서는 자세나 반성하는 자세를 배울 수도 있다.

'노크 안 해서 미안해. 엄마 생각을 강요해서 미안해. 너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해.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거고 엄마도 실수를 하는데 너의 실수를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해........'

사과를 할 때는 아이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된다. 사실 그래야 진심을 전하며 사과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버르장머리가 없어질까? 나의 경험을 보자면, 아이는 이해심을 키울 수 있었고, 어느 순간 마음을 열었고, 오히려 미안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권위자로 군림하는 부모가 아닌 소통의 부모로 다가설 수 있었고, 서로의 입장에 대한 배려를 배워나갔다. 그리고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이의 키가 자라난 만큼 정신도 마음도 자라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논리에 맞지 않은 생각들, 혼란스러운 마음들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나름의 논리가 분명 있기는 하다. 즉 부모가 납득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본인에게는 하나의 논리라는 것이다. 키 작은 아이로만 보던 눈높이 내 눈높이만큼 커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연스레 존중의 마음이 생겨나게 되니까.

손님 대하듯 할 말 다하지 않고, '아, 그러시구나.' 하는 편이 상황에 도움이 된다. 나는 이 시기를 '손님 모시기'라고 이름 붙였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 입에서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생각하면 좀 창피해.'라고 말하는 순간이 온다.

부모는 아이의 사춘기 동안 자신을 점검하고, 아이를 더욱 존중하는 태도를 키워가길 당부하고 싶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 키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를 친한 친구 대하듯이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 손님같이 어려운 아이의 단계를 지났다면, 친구 같은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기도 하고 속내를 얘기하기도 하고 서로의 감정을 얘기하기도 하고.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친구 대하듯 관계를 해나가면 된다. 이전의 '손님 모시기' 단계를 지나 '친구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부모는 부모'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는 안내자의 역할을 해야 하고, 아무리 친구 같다 해도 의존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부모가 약하지 않다는 것 아이가 인식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이가 힘든 상황이나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부모에게 의논하고 의지할 수 있다. 친구 같은 부모이되, 약하고 의존적인 부모가 아니라 괜찮은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의 사춘기는 부모에게는 제2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다. 아이와 부모는 한 인격체로서 함께 성장해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늘 어려운 '사랑'이다. 부모는 열심히 공부하고 사유해야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건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를. 위의 모든 과정의 배후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아이의 사춘기는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시기이면서, 부모가 공부하고 사유를 키워가는 시기인 것이다.

즉, 아이는 사춘기, 부모도 사춘기라고 할 수 있겠다. 부모도 아이도 도래할 봄을 기다리는 시기이기에...



p.s. 순전히 나의 생각과 나의 경험이니 참고가 된다면 참고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이렇게 글로 쓰자니 드는 생각은, 사랑에도 사과에도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경험들이 반영되기에 왜곡된 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왜곡된 지점을 발견하는 것부터가 자기 점검이라 할 수 있는데, 무지 힘든 과정인 것이 사실이다. 모난 나를 깎고 깎아 둥글게 만들어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부모이기에 하게 된다. 부모이기에 할 수 있다.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니, 힘들다고 크게 억울할 일도 아니다. 아이가 사춘기라면 부모에게는 성춘기(成春期)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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